행정전산망 먹통 사태가 수습되자, 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가 꾸려졌다. 이번 일은 정부 전산 시스템의 한계를 또다시 여실히 드러낸 사례. 그 한계란 정부 스스로가 시스템의 주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는 산하기관에 일을 내려보내고, 산하기관은 다시 입찰을 통해 발주를 준다. 조직의 윗선으로 올라갈수록 프로젝트 일정만 챙길 뿐 구체적인 기술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닫고 배우려 들지 않는다. 기술적인 것은 아래에서나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니 조직 내에 지식은 쌓이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사람을 부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피라미드 구조의 관료 조직, 그 최하단에 시스템이 위치한다.
전통적인 조달방식이다. 납품받고 건물 짓는 거야 그렇게 해도 될지 모르지만 전산 시스템은 그렇게 해서는 그 끝이 좋지 못하다. 왜냐하면 오늘날 전산 시스템은 하부구조인 동시에 인터페이스라서다. 시스템이 곧 얼굴이기도 하고, 요즈음에는 그 조직의 존재 의미 그 자체를 대체할 정도로 살아 움직이는 대상이니 수시로 살피고 만져줘야 한다.
시스템을 속속들이 알고 있지 않으면 주인이 될 수 없다. 안타깝게도 그런 의미에서 수많은 정부 시스템의 주인은 정부가 아니다. 시스템을 ‘준공’한 하청은 계약이 끝나면 그저 남이니 조직 내 누구도 전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일을 해주고 떠나간 이들에게 책임을 씌워 봐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지만, 누구도 다치지 않는 해법이라 자주 쓰인다.
이번 전산망 사건도 그렇게 건드리기 힘든 상태로 굳어진 시스템 어딘가가 터진 일이었을 게다. 정치권에서는 대기업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참여 제한 규제 탓에 실력 없는 중소기업이 맡아서 이 지경이 된 것이라고 엉뚱한 주장을 하는데 대기업도 일이 끝나면 떠나버린다.
원인 규명 태스크포스는 보통 고위 관료와 교수가 리더를 맡고,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이 또한 문제다. 이렇게 당사자성이 결여된 구성은 감사의 성격을 띠고 비난 성토 대회로 끝나기 쉽다. 재발 방지 종합대책이 나온다고 해도 지적질로 점철된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민간에서는 웹사이트가 10분만 멈춰도 대형사고다. 초단위로 매출에 미친 영향이 계산되고, 그 여파가 주가에 반영되기도 한다. 추락한 이미지는 경쟁사에게 기회가 된다. 그럼에도 소프트웨어로 만들어진 시스템은 늘 멈춘다. 유능한 엔지니어들이 모인 집단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들 기업은 ‘포스트모템(postmortem)’을 한다. 부검이라는 무서운 번역 대신 회고라고 번역된다. 사고가 발생하거나 프로젝트가 끝난 후, 당사자들이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모여 배운 교훈을 추려내고 조직 프로세스를 변경해 전체 조직 역량을 개선하는 조치를 취한다. 꽤 자주 하는데 건설적이고 협력적인 학습의 기회가 돼서다.
포스트모템의 주체는 시스템을 만든 당사자들이어야 한다. 수시로 사건·사고가 터져도 정부 시스템에서는 포스트모템이 일어나지 않는다. 제3자를 비난할 뿐이다. 이러한 손가락질 감사가 치사하게 느껴지고 두려워지니 복지부동으로 점점 더 일을 벌이지 않고, 시스템은 다시 굳어져만 간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