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앞집 언니

양다솔 작가
2023.10.16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요즘 나는 앞집 언니가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은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한다. 저녁에 렌즈를 끼던 도중에 실수로 한쪽을 잃어버렸다. 분명 눈에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사라지고 없었다. 자리에서 꼼짝도 안 하고 그 작고 투명한 것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한참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 불현듯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건조하게 말한다. “언니, 나 또 불행한 일의 목전에 있어.” 순식간에 커다란 목소리가 수화기를 찢고 나온다. “뭐라고!” 잠시 후 창문 밖으로 눈 부신 빛이 보인다. 빛을 제외한 주변은 칠흑처럼 어둡다. 엄청난 빛이 성큼성큼 마당을 가로질러 온다. 작고 결연한 걸음걸이, 팔꿈치 아래까지 찰랑이는 검은 생머리. 그는 나의 앞집 언니다. 한 손에는 대마법사 간달프의 지팡이 같은 엄청난 조명 기구를 쥔 채다.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반딧불이 같다.

언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 집 문을 열어젖힌다. 바닥부터 살피기 시작한다. 그가 가까이 가는 곳마다 그곳의 훤한 민낯이 드러난다. 언니는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나는 한번 안경을 벗으면 다시 안경이 어디 있는지 찾지도 못할 정도로 눈이 나쁘지만, 언니는 움직이는 모기를 손으로 잡을 만큼 눈이 좋다. 그러니까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언니의 눈에는 보인다는 얘기다. 나는 사건에 착수한 언니를 뒤로하고 다시 안경을 쓴 채 예정돼 있던 온라인 회의에 참석한다. 언니는 말없이 허리를 굽히고 내 방의 점·선·면을 꼼꼼히 살핀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이건 정말 자존심이 달린 문제야.”

그것은 사실이었다. 렌즈가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곳에 있다면 그걸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이 마을을 통틀어 언니가 유일했다. 그것은 단순히 이 충청도의 작은 시골에서 나를 제외한 유일한 젊은이가 언니여서만은 아니다. 언니는 비건인 나를 위해 특별히 선인장 가죽으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의 지갑과 에어팟 케이스를 만들어 선물해준 인물이었고, 트위터의 구체관절인형 커뮤니티에서 인형의 손을 가장 완벽하게 채색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무슨 게임이든 시작했다 하면 누구보다 뛰어난 전략과 승부욕으로 언제나 전국 순위 상위권에 랭킹되고는 했다. 그러니까 렌즈가 아니라 지뢰라도 찾아낼 사람이 바로 그였다.

언니는 사뭇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이렇게 내 능력을 시험하다니.” 저쪽 방에 있던 엄마가 기척을 느끼고 나와서 언니에게 속삭인다. 너 뭐 찾니? 뭐 잃어버렸대? 그렇다. 나는 이 사안을 바로 옆방에 있는 엄마에게는 얘기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언니는 내 회의에 방해가 될까 속삭이며 상황을 전한다. 엄마가 작게 기함한다. 이제는 두 사람이 집안을 개미핥기처럼 돌아다닌다.

그러고 보니 언니는 내가 언니라 부르는 유일한 존재였다. 따로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이, 거의 그에게만 쓰는 단어라고 해도 무방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삶에는 대부분의 관계명사가 사라졌다. ‘오빠’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실종됐다. 친구 사이에서 위아래로 스무 살 정도는 그냥 이름을 부르고 평어를 썼다. 심지어 어머니도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아버지도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다. 아빠는 스님이어서 스님이라고 부르고, 어머니는 전화번호부에 ‘옆방 아주머니’라고 저장돼 있었다. 딸린 형제자매도 없었다. 앞집에 사는 언니는 나에게 유일하게 살아남은 관계명사였다. 마치 직함처럼 부여된 이름이었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제는 좋은 일이 있어서, 주로는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대부분은 아무 일도 없어서였다. 나에게는 심심찮게 사건들이 닥쳤고, 어느 순간부터 언니는 전화를 받으면 “여보세요” 대신 “또 무슨 일 있어?”하고 묻게 됐다.

마침 나는 내 삶에 될 대로 심드렁해진 참이었다. 이곳저곳을 뒤져봤지만 렌즈는 보이지 않았고, 열심히 찾는다고 해서 나올 것 같지도 않았기에 그냥 두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원래대로 돌려주곤 했던 마음의 고무줄이 한없이 너절해져 있었다. 나는 내 삶을 어딘가 버려두고 떠나가고 싶었다. 나에게서 깨끗이 씻겨지고 싶었다. 그때 나를 잡아당긴 것은 언니의 말이다. “절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아.” 언니는 여전히 방을 빙빙 돌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순간 웃음이 삐져나왔다. 한 통의 전화로 언니는 내 삶의 주인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그 자리를 비운 지 벌써 오래였다. 모든 일이 그렇듯 또 나의 실수였고,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었고 그뿐이었다. 나는 웃으며 “언니 미안, 미안해”라고 말했다. 언니는 대답 대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종내 그것을 찾지 못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언니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없어.” 한껏 풀이 죽어서 고개를 숙인다. “찾지 못했어. 어디에도.” 나는 말한다. “괜찮아. 정말 고마워.” 빙그레 웃는다. 내 입꼬리 무게를 언니가 나눠지고 있는 것 같다고 느끼며. “뭐가 고마워. 찾지 못했는데.” 나는 손사래 친다. “아냐, 아냐. 잊어버려.” 마치 무언가를 잃은 쪽은 언니인 것처럼 말한다. 삶에는 그런 일들이 흔하게 일어난다. 갑자기 말도 안 하고 사라져서는 돌아오지 않는 것들투성이다. 울기도 웃기도 애매한 불행과 실종으로 가득하다. 또 어딘가에 무책임하게 방류됐을 것이다. 나는 웃으며, 앞이 보이지 않은 채로 며칠을 지내고, 이 시골까지 렌즈가 오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나는 근래에 일어났던 가장 기쁜 일에 대해 쓰고 있으니까. 전화 한 통으로 30초 안에 엄청난 빛을 뿜으며 등장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유익하고 든든하고 그리고, 정말 웃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마을에는 정말로 반딧불이가 산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존재다. 밤이면 창문 너머로 별처럼 밝은 작은 빛이 깜빡깜빡 날아다닌다. 그러나 가장 거대한 반딧불이는 언니다. 언니는 커다란 빛을 가지고 온다. 그것도 아주 금방 온다. 사건은 계속해서 일어나지만, 그것은 지나간다. 그 모든 것은, 언니의 덕이다.

<양다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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