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꿀벌과 응애의 공진화

김우재 낯선 과학자
2023.08.1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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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인류의 사망원인 1위는 심장질환이다. 2위가 암, 3위는 고혈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근대과학과 현대의학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기 전까지 인류의 사망원인 1위는 전염병이었다. 얼마 전까지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의 늪에 빠져 있었으니 천연두, 페스트, 스페인독감 등 전염병이 인류의 역사를 바꾼 사실을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염병의 역사이기도 하다.

가축화된 다른 종들처럼 꿀벌 역시 전염병에 취약하다. 꿀벌을 위협하는 기생충은 다양하다. 이중 가장 흔한 기생충이 ‘꿀벌응애(Varroa destructor)’다. 꿀벌응애는 집먼지진드기와 가까운 곤충의 일종이다. 꿀벌응애는 꿀벌과 생활사를 공유하며, 애벌레와 일벌의 혈액을 빨아먹고, 꿀벌의 면역력을 떨어뜨리며, 바이러스를 전염시켜 꿀벌을 죽인다. 꿀벌응애는 서양종 꿀벌(Apis mellifera)의 봉군(집단)붕괴 현상과도 깊은 연관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꿀벌응애 혹은 파괴자 바로아

꿀벌응애는 양봉산업의 가장 큰 적으로 지목되고 있다. 대부분의 양봉업자는 꿀벌응애 퇴치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약물은 꿀벌에게도 독성을 가지므로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까다로운 과제다. 자주 벌통을 청소하고, 벌통의 온도를 조절하는 등의 방법이 도움이 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최근에는 꿀벌응애가 살충제 저항성을 보인다는 보고도 있어 살충제만으로 꿀벌응애에 대응하는 일차원적인 전술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꿀벌응애를 제대로 처치하지 못한 경우, 꿀벌 봉군은 2년 내에 반드시 붕괴된다고 한다. 그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꿀벌응애가 퍼뜨리는 바이러스다. 꿀벌 전문가들은 봉군에 꿀벌응애가 있다면, 반드시 바이러스가 있다고 말한다. 꿀벌에 감염하는 바이러스는 약 20종에 달한다. 사실상 꿀벌응애가 이 바이러스 대부분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꿀벌응애 개체 수 억제는 꿀벌감염 바이러스 억제를 의미하고, 봉군붕괴 현상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꿀벌응애에 감염된 일벌들은 다양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는다.

꿀벌응애에 감염된 일벌들은 다양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는다.

꿀벌응애는 애벌레방에 기생해 번식한다. / bee-health.extension.org/honey-bee-viruses-the-deadly-varroa-mite-associates

꿀벌응애는 애벌레방에 기생해 번식한다. / bee-health.extension.org/honey-bee-viruses-the-deadly-varroa-mite-associates

최근 한국에는 ‘중국가시응애(Tropila-elaps clareae)’에 의한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 중국가시응애 또한 꿀벌의 표피에 상처를 내 외부의 발병인자들이 꿀벌의 혈액으로 유입되게 만드는 것으로 보고됐다. 중국가시응애는 크기가 꿀벌응애에 비해 작고, 움직임이 빨라 한국양봉산업에 심각한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응애는 꿀벌 봉군의 가장 위협적인 파괴자다.

동양벌과 서양벌 그리고 공진화

꿀벌응애는 원래 동아시아에서 발견됐지만, 1970년대 초반에 유럽으로, 1980년대 초반에 북미로 전파됐다. 즉 꿀벌응애는 동양종 꿀벌(A. cerana)의 기생충이 서양종 꿀벌로 기주이전을 한 사례다. 신기하게도, 흔히 토종벌로 불리는 동양종 꿀벌은 꿀벌응애로 인한 피해가 거의 없다. 오직 서양종 꿀벌만 꿀벌응애에 취약하고, 심각한 봉군파괴현상을 보인다.

그 이유를 추측해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꿀벌응애와 동양종 꿀벌은 지난 수백만 년간 함께 진화해온 숙주와 기생체 관계이기 때문이다. 기생체와 숙주 사이의 진화적 군비경쟁은 ‘붉은여왕’이라는 비유로 잘 알려져 있다. 앨리스가 찾아간 붉은여왕의 나라에선, 가만히 있기 위해서라도 계속 전력을 다해 뛰어야 한다. 기생체와 숙주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군비경쟁을 벌이고 있고, 그 흔적은 두 종의 유전체에 각인된다.

서양종 꿀벌은 겨우 수십 년 전 꿀의 생산성 확대를 위해 동양에 수입됐고, 꿀벌응애에 노출됐다. 꿀벌응애에 저항성을 지닌 동양종 꿀벌에 비해 서양종 꿀벌은 꿀벌응애의 기생에 매우 취약했다. 지난 수백만 년의 공진화 속에서 동양종 꿀벌은 꿀벌응애 저항성을 획득했는데, 그 유전체에 각인된 그 저항성은 감염된 애벌레를 내다 버리는 위생행동, 몸에 붙은 응애를 털어내는 그루밍, 꿀벌집 크기의 조절 및 꿀벌 개체 수 조절 등으로 나타난다. 서양종 꿀벌은 여러모로 꿀벌응애에 최적의 숙주가 될 수밖에 없다.

비슷한 일이 말벌에 대한 방어에서도 나타난다. 장수말벌 등의 천적에 노출된 적이 없었던 서양종 꿀벌은 말벌이 접근하면 벌침으로 공격한다. 그러나 장수말벌은 꿀벌의 독침에 면역돼 있을 뿐 아니라 꿀벌의 독침은 말벌의 두꺼운 피부를 뚫지도 못한다. 동양종 꿀벌은 말벌이 접근하면 벌집 입구를 막고 일벌들이 말벌을 둘러싸 열을 올려 죽인다. 이를 ‘열공(heat ball)’이라고 부른다.

서양종 꿀벌이 양봉산업의 독점종이 되면서 생겨난 여러 문제는 어쩌면 자연이 만들어낸 공진화의 흔적과 이를 생태적으로 예측하지 못했던 인류의 무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진화생물학과 생태학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암생물학에 대한 지원만큼 필요한 이유다.

응애유전학과 꿀벌의 생존

꿀벌응애가 어떻게 수만마리의 일벌을 피해 벌집 안에서 살아가는지는 미스터리다. 과학자들에 의해 알려진 바에 의하면, 꿀벌응애는 꿀벌 벌집 안에 숨겨져 있는 화학적 생태계에 매우 의존적이고, 화학적 위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꿀벌에 의해 감지되지 않는다. 꿀벌응애가 꿀벌의 표피에 직접 접촉하면 3시간에서 9시간 안에 자신의 표피를 위장할 수 있다. 즉 꿀벌응애는 침입한 벌집에 맞춰 표피 위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셈이다.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응애가 마치 카멜레온처럼 그런 작업을 수행하는지는 거의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꿀벌응애가 서양종 꿀벌의 생존에 큰 위협이 되자, 서양국가들은 꿀벌응애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꿀벌응애 연구비는 미국과 유럽 그리고 호주 등에서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꿀벌연구비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에서는 꿀벌응애에 저항성을 보이는 서양종 꿀벌 계대를 선별해 국가적으로 보급하고 있다. 호주 정부는 최근 보고된 꿀벌응애 감염을 막기 위해 엄청난 연구비와 보조금을 투입하는 실정이다. 응애 연구는 꿀벌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응애 연구를 통해 꿀벌이 응애로부터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꿀벌의 면역력을 강화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응애 연구를 통해 꿀벌의 생태계적 가치를 이해하고, 꿀벌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할 수 있다. 응애유전학이 필요한 이유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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