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미국의 기술패권, 어디까지 갈까

서중해 경제학자
2023.07.24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25일(현지시간) 워싱턴의 힐튼호텔에서 열린 제조업 일자리 창출 관련 행사에서 청중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고 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내년 대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25일(현지시간) 워싱턴의 힐튼호텔에서 열린 제조업 일자리 창출 관련 행사에서 청중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고 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내년 대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 AFP|연합뉴스

지난 6월 8일 미국 백악관은 ‘성적표: 더 강한 공급망과 더 회복력 있는 경제 건설의 2년’이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제목 그대로 지난 2년간 바이든 행정부가 실행한 공급망 관련 정책의 성과를 점검하고 홍보하는 자료다. 백악관 홈페이지는 지난 2년간 이뤄진 민간투자와 연방정부의 투자를 미국 지도에 표기해 보여준다.

여기에 표기된 민간기업의 투자는 모두 5030억달러로, 그중에서 반도체와 전자 부문이 2310억달러, 전기차 및 배터리 1340억달러, 청정에너지 1040억달러 등이다. 민간투자에는 미국기업뿐 아니라 많은 해외기업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SK이노베이션, 한화큐셀 등 한국기업의 대규모 투자도 포함돼 있다. 민간투자에 더해 미국 전역에서 225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가 이뤄졌다. 민간투자와 인프라 투자를 통해 1310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고 백악관은 홍보한다. 지도에 나타난 민간기업 투자의 상당수는 이른바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지역에 집중돼 있다. 미국에서 전통 제조업이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해외로 나갔던 기업 활동을 이 지역에서 새로운 형태로 복원하고자 하는 미국 정부의 산업정책이 읽힌다.

자국 중심 산업정책과 한계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투자 전략’을 바라보는 한국 경제학자의 심정은 착잡하다. 세계화 시대에 미국 경제는 한국 경제와 기업에 기회를 제공하는 열린 시장이었는데, 미국의 산업정책은 이제 한국의 대외·경제정책과 기업 전략에서 중요한 제약조건이 됐다. 트럼프 정부에 이어 바이든 정부에서도 산업 관련 대외정책은 일관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경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제조업에서 일자리가 없어진 배경엔 디지털 기술의 확산보다는 중국 제조업의 급부상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 감소와 미국 내 정치 지형의 변화가 함께 작용하면서 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세계화·개방화를 통한 상호발전에서 기술적 우위 확보와 핵심 제조업 기반을 미국 내에 구축하는 것이 목표인 자국 중심 산업정책으로 전환됐다. 다음 미국 대선에서 정부가 바뀐다 하더라도 미국의 자국 산업 우선 정책기조는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기술패권 전략은 어디까지 갈까. 지난 6월 발표된 백악관의 ‘성적표’는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고 홍보한다. 장기적으로는 어떨까. 과연 미국은 궁극적으로 중국을 제어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성공할 수 있을까. 이는 짧은 칼럼에서 제대로 다루기에는 너무 방대한 주제다. 또한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기에 단적인 대답은 큰 무리가 따른다. 다만 이번 칼럼에서는 미국 과학기술체제의 특성을 살펴보면서, 큰 질문에 대한 작은 대답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미국의 과학기술 활동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따라서 막강한 힘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기술패권을 추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의 강점인 미국의 과학기술체제 그 자체에 있다. 미국의 과학기술체제는 기초과학 연구-기술개발-산업 및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형 모델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분야에 따라서는 (예를 들어 바이오테크에서는) 이들 셋이 융합돼 작동하지만, 장기적 발전 과정을 조망하는 데는 선형 모델이 여전히 유용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정상회담을 열기 전 기념촬영을 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정상회담을 열기 전 기념촬영을 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현재까지 이어지는 선형 모델은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태동했다. 1941년 6월 미국의 프랭클린 대통령은 전쟁 수행에 필요한 연구개발 활동을 담당할 ‘과학연구개발실(OSRD)’을 설립하고 배너바 부시(Vannevar Bush)를 실장으로 임명했다. OSRD는 예산과 자원을 무제한으로 활용할 권한이 주어졌고, 실장은 대통령에게만 직접 보고하는 체제였다. OSRD는 약 2500개의 과제를 수행했는데, 원자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4년 11월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 이후 평화 시기에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정부의 역할에 대한 자문을 부시에게 요청했다. 부시는 1945년 7월에 회신을 보냈다.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방정부가 대학과 국립연구소에 국방 관련 연구로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보고서를 담았다. 이 보고서가 ‘과학, 끝없는 프론티어’(Science, The Endless Frontier)다. 여기에서 부시는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초연구는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세 축의, 즉 국가방위와 경제발전과 국민보건의 초석이 된다고 역설했다. 기초연구를 수행하는 대학을 연방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이후에 미국과학재단의 창설로 이어진다.

기술혁신 비용과 미국의 딜레마

미국 기술패권 전략의 강점이자 한계는 개방된 기초과학 연구 체제에 있다. 현재 미국의 과학기술체제는 대학, 민간기업, 연방연구소의 3개 축으로 구성돼 있다. 연방정부가 지원하고 대학이 수행하는 기초과학 연구는 대학의 방대한 인적 자원을 활용하고 기반을 넓게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학문의 프런티어를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나라들에 비해서도 규모와 깊이에서 우위에 있다. 하지만 개방된 과학연구의 특성상 아이디어의 전유는 불가능(1980년 제정된 바이-돌 법에 따라 연방정부가 지원한 연구개발 과제라 하더라도 대학 등 수행기관이 특허를 통해 성과를 전유할 수 있다)하다. 인적 교류를 통한 지식의 교류는 국경을 넘나들며 이뤄진다. 오늘날에는 기초과학 연구가 기술적 성과로 이어져서 특허와 제품 개발로 이어지는 것이 장려되고 있지만, 과학연구는 본질적으로 개방돼 있고, 과학자들도 개방된 연구를 지향한다.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연방정부는 기초과학 연구를 지원하고 있지만, 기초과학 연구는 본질적으로 개방체제를 지향한다. 선형 모델의 첫 단계인 기초과학 연구가 개방돼 있다면, 다음 단계인 기술개발-산업발전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가 어려워진다. 특허 도용은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아이디어 차용은 제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연구개발에 투입해 기술혁신을 도모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술혁신에 소요되는 비용은 더 커지게 된다. 현재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경제가 처한 상황이다. 미국의 기술패권 전략이 세계 연구개발 체제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과연 중국은 미국의 의도대로 제어될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다음 칼럼에서 이어간다.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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