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글쓰기 강연 요청을 받고

양다솔 작가
2023.06.12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서울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강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주제는 무려 글쓰기와 독서의 중요성이었다. 학교는 소위 강남 8학군이라고 불리는 곳에 있었고, 청중은 남자 고등학교 2학년생 400명이었으며, 대부분이 이과를 지망한다고 했다. 들을수록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점차 확신으로 변했다. 당장 다음날 강연을 앞두고 화면과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어도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막막한 마음에 학생들이 독서모임에서 읽는다는 도서를 살펴봤다. 전부 AI와 과학 기술에 관한 책이었다. 학생들이 직접 발행한다는 교내 신문을 읽어보기도 했다. 서울대 경영학과와 치의과에 합격한 선배들을 직접 찾아가 입시 관련 인터뷰를 하거나, 의대 모집 정원을 늘릴 조짐이 보인다는 기사를 전달하고 있었다. 다리미로 다린 것처럼 각 잡힌 글들이었다. 선생님께 요즘 국어 시간에는 무얼 배우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챗GPT를 사용해 작문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문제가 나에게 있었음을 알게 됐다. 내가 신인 수필작가가 아니라 AI 개발자나 구글 임원, 병원장이나 의학 교수여야 했다. 절대 풀 수 없는 문제를 받은 것 같았다.

글쓰기와 독서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강남 8학군에서 이과를 지망하는 남자 고등학생 400명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게임과 성적 말고는 없을 것이었다. 어쩌면 글쓰기와 독서는 이제 누구에게도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걸 업으로 삼은 나도 마냥 즐겁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흔쾌히 권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그것이 중요하다고 설득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나는 2시간 정도 겨우 눈을 붙인 후 마치 편집증 환자가 만든 것 같은, 문장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뿌려진 발표 파일을 들고 학교로 향했다.

선생님은 친절한 미소로 나를 안내하며 학생들이 별로 집중하지 않더라도 개의치 말라고 일러주었다. 나 또한 웃으며, 그것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답했다. 강단에 서자마자 그대로 말했다. 나는 목소리가 꽤 좋은 편이니 그 김에 한숨 자는 게 어떻겠냐고. 실로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추가 수면 시간이었다. 결국 나는 내가 이상하다는 얘기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 교복을 입어본 적이 없고, 당신들과 같은 나이엔 절에서 행자로 살았으며, 스무 살 때는 겁도 없이 무전여행을 떠났다고 말했다. ‘좋았어, 지금까지 잘 왔어. 앞으로 한 걸음도 삐끗하면 안 돼’라고 생각하고 있을 당신이 그 모든 길에서 삐끗했을 때 마주칠 사람, 당신이 두려워할 만한 선택의 총합체가 나일지도 모른다고 웃었다.

나는 별난 사람이었다. 사는 내내 그렇게 느꼈다. 그 어떤 곳에서도 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늘 시선을 샀고, 이상한 별명을 얻었고, 선생님에게 불려갔다. 아주 못하거나 아주 잘했고, 언제나 겉돌았다. 사람들은 나에게 질문을 쏟아내든지 화를 냈다. 나는 나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려고 애쓰거나, 혼자 있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대뜸 학생들 앞에서 내가 썼던 가장 이상한 글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딱 그들과 비슷한 나잇대에 썼던 글이었다. 중고나라에서 치마를 샀다가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경찰서에 찾아가 판매자를 신고하는 내용이었다. 그 글 속에서 나는 미친 듯이 화가 나 있다. 마구 욕을 하고 누군가를 향해 삿대질하며, 겁도 없이 정의를 외친다. 긴 낭독이 끝나자 갑자기 학생들이 박수와 환호를 했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이걸 듣고 있었어요?

이어서 나는 이상한 작가들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세계에서도 가장 이상한 사람들. 너무 이상해 내 얘기를 꺼내놓게 만든 별종들. 그들이 이상한 정도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어서, 이런 나를 ‘이상함 주니어’ 정도로 전락시켜버린 사람들에 대해 말했다. J. D. 샐린저의 냉소,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 로베르트 발저의 고독에 대해 신나게 설명했다. 그들의 그 지독한 이상함이 어느 순간 얼마나 멋진지, 그 말도 안 되는 이상함이 나를 얼마나 자유롭게 해주었는지, 얼마나 큰 통쾌함과 위안을 주었는지 말했다. 그 순간 글쓰기와 독서가 전혀 중요하지 않을 400명의 학생 앞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하고 싶은 강연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모범적이고 아름다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제 삶과 마찬가지로요. 저는 배움이나 교훈을 읽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 것이 글이라면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아주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글들이 저를 쓰게 만들었습니다. 아주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었던, 나의 가장 이상한 점을 세 줄만 써주세요. 아직 깨어 있다면, 5분 동안 아무거나 써보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도 쓰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을 것이었다. 놀랍게도 곧 글들이 도착했다. 한 학생은 이렇게 썼다. “나의 가장 이상한 점은 나태함이다. 분명 한 시간 전에 숙제를 끝내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느새 유튜브 쇼츠를 보고 있다.” 마이크를 들고 그 글을 낭독하자 강당이 아수라장이 된다. 웃고 소리치는 소리가 공간 가득 울린다. 나는 말한다. “하나도 안 이상한데요. 안 이런 사람이 있어요?” 어떤 학생은 이렇게 썼다. “나는 원래 공부에 별 흥미가 없는데 요즘은 수학 문제 푸는 게 재밌다.” 학생들의 야유와 웃음소리가 또 한 번 파도처럼 강당을 채우고 지나간다. 나는 대답한다. “이건 자랑이잖아요. 다들 이상한 게 뭔지 몰라요?” 어떤 학생은 손을 들고 번쩍 일어나서, 방금 지은 구름에 대한 시를 낭독하기도 한다. 또 어떤 학생은 이렇게 쓴다. “그냥 나라는 존재가 가장 이상하다. 나 같은 사람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학생들은 웅성거리고 웃음을 터뜨린다. 이상함이 계속해서 도착한다.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도착한다. 그 안에서 세 줄만 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도 세 줄만으로 설명되는 이상함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 공간에 있는 모두가 잠시, 스스로의 이상함에 대해 생각한다.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적어도 세 줄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 그 무언가에 대해서.

<양다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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