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달 착륙 순간 뺨치는 360만년 전 ‘첫발자국’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2023.05.22

경기도 연천 전곡리의 초창기 구석기 발굴을 맡은 학자들이 출토된 주먹도끼 등 각종 구석기를 설명하고 있다. 출토된 구석기 유물을 들고 설명하는 김원룡 서울대 교수(왼쪽)와 황용훈 경희대 교수 / 전곡선사박물관 제공

경기도 연천 전곡리의 초창기 구석기 발굴을 맡은 학자들이 출토된 주먹도끼 등 각종 구석기를 설명하고 있다. 출토된 구석기 유물을 들고 설명하는 김원룡 서울대 교수(왼쪽)와 황용훈 경희대 교수 / 전곡선사박물관 제공

2000년 11월 5일자 마이니치(每日)신문에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리는 사건이 보도됩니다.

‘구석기 유적 조작 사건’입니다. 고고학자인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가 미야기현(宮城縣) 쓰기다테초(築館町) 가미타카모리(上高森) 발굴 현장에서 가짜 석기를 파묻는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해 폭로한 겁니다.

후지무라는 1981년 미야기현 자자리기(座散亂木)에서 4만년 전 구석기 유적을 발굴한 인물입니다. 이후 잇단 발굴을 통해 일본 구석기 유적 연대를 ‘70만년 전’까지 올렸습니다. 덕분에 ‘신의 손(神の手)’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그러나 마이니치의 폭로 이후 후지무라가 조사한 162곳의 구석기 유적 전체가 ‘가짜’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후지무라는 “‘더 오래된 구석기 유적은 없느냐’는 주변의 성화에 초조감이 생겼다”고 토로했습니다. 후지무라의 자작극 이면에는 바로 한국의 ‘전곡리 구석기 유적’(27만년 전)이 있었습니다. ‘한반도에도 존재하는 전기 구석기 유적이 일본 열도에 없을 리 만무하다’는 일본의 강박관념이 반영된 지점입니다.

벽돌공장에서 확인한 아슐리안 주먹도끼 1978년 4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미 2사단 기후대 소속 그레그 보웬(1950~2009) 병사가 여자 친구(훗날 부인이 된 상미 보웬)와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한탄강변 유원지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애리조나주립대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보웬의 눈에 돌멩이 하나가 포착됐습니다. 사람이 가공한 인공석기가 분명했습니다. 보웬은 간단한 보고서를 작성해 당대 프랑스 세계적인 구석기 학자인 프랑수아 보르드(1919~1981)에게 보냅니다. 보르드는 김원룡 서울대 교수(1922~1993)에게 ‘심상치 않은 석기의 발견’ 사실을 알렸고요. 김 교수는 제자(정영화 당시 영남대 교수)와 함께 현장을 답사했는데요.

두 사람은 제일 먼저 당시 성업 중이던 전곡리 벽돌공장을 찾았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벽돌 제조에 필요한 점토 대부분은 구석기시대에 퇴적된 고토양이거든요. 그러나 벽돌공장에서는 점토에 들어 있는 돌멩이들을 불순물로 취급해 골라내죠. 그러니 구석기 학자들에게 ‘벽돌공장’은 ‘보물창고’인 셈이죠.

과연 김원룡·정영화 두 교수는 벽돌 더미에서 ‘구석기판 다이아몬드’를 캐냅니다. 세계고고학계를 놀라게 한 ‘아슐리안 주먹도끼’였습니다.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구석기판 맥가이버칼’입니다. 단순히 ‘찍개’의 수준에서 벗어나 찍고(송곳), 찌르고(창), 자르고(가위), 썰고(칼), 부수고(망치), 파기(곡괭이) 등의 기능을 겸비한 석기입니다.

프랑스 생따슐(St. Acheul) 유적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 붙여진 이름입니다. 150만~10만년 전까지 전기 구석기시대(250만~10만년 전)에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사용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탄강 곡류를 감싸 안은 전곡리 유적. 전체 24만평에서 구석기가 고루 출토됐다. 27만년 전 구석기 타운이 존재했다는 이야기다. / 전곡선사박물관 제공

한탄강 곡류를 감싸 안은 전곡리 유적. 전체 24만평에서 구석기가 고루 출토됐다. 27만년 전 구석기 타운이 존재했다는 이야기다. / 전곡선사박물관 제공

그런데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는 유행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동아시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었습니다. 이것을 ‘모비우스의 가설’이라 하는데요. 동아시아에서는 단순히 ‘찍개문화’만 유행했다는 거죠.

그런데 전곡리 덕분에 ‘모비우스의 가설’이 전면 수정된 겁니다. 1978년 이 같은 사실이 보고되자 세계 구석기 학계는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후속 발굴과 연구 끝에 ‘전곡리 주먹도끼의 연대는 대략 27만년 전’으로 정리됐습니다. 한탄강변 전곡리 유적 24만평 전체에서 구석기 유물이 고루 출토됐는데요. 구석기인들의 집단주거지, 즉 구석기마을이었던 겁니다.

1993년 이후 해마다 5월 이맘때면 전곡리에서 구석기 축제가 벌어졌는데요.

꼭 30년이 지났네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올해는 4년 만에 5월 축제로 열렸답니다.

2분 15초에 불과한 인류 역사 사실 ‘구석기’ 하면 ‘돌멩이’가 우선 떠오르죠. ‘돌멩이’ 발굴이 뭐 그리 의미가 있고, 재미가 있느냐고 심드렁해 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래서인가요. 최근 들어 구석기 연구자들이 구석기와 관련된 대중서를 잇달아 펴내고 있습니다.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의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채륜서·2020)가 스타트를 끊었고요. 최근에는 김상태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의 <단단한 고고학>(사계절·2023)이 뒤를 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벽돌공장’ 이야기는 이한용 관장의 책에 나온 거고요. 김상태 부장의 책 중에서는 첫머리부터 눈길을 끄네요.

만일 ‘지구의 역사(45억년)’가 단 하루에 벌어졌다면, 인류의 역사(700만년)는 마지막 2분 15초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인간사,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연구자의 책과 리차드 포츠 등의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배기동 옮김·주류성·2013) 등을 토대로 구석기시대 여행에 나서볼까요.

1969년 7월 20일 에드윈 올드린(1930~ )·마이클 콜린스(1930~2021)와 함께 아폴로 11호를 탔던 닐 암스트롱(1930~2012)이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디디며 역사적인 한마디를 던졌죠.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우주 시대의 개막을 알린 겁니다. 1978년 탄자니아의 라에톨리에서 또 다른 의미의 ‘인류의 첫발’이 발견됩니다.

영국 인류학자 매리 리키(1913~1996)가 360만년 전 화산재에 쌓인 땅을 지나던 고인류 3명의 발자국을 확인했습니다.

발뒤꿈치를 땅에 대고 깊게 누른 다음 발바닥을 뒤에서부터 차례로 댔다가 마지막으로 엄지발가락을 힘차게 누르면서 균형을 잡고 일직선으로 걸어간 직립 인간 특유의 보행방식이었습니다. 인류 직립보행의 서막을 연 ‘위대한 발자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3명의 고인류는 360만 년 전의 ‘암스트롱’, ‘올드린’, ‘콜린스’라 할 수 있죠.

3만2000년 전 프랑스 쇼베 동굴벽화는 벽면을 사자 무리에게 쫓기는 코뿔소 떼로 채웠다(왼쪽). 1만7000년 전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는 동물 한마리 한마리가 살아서 튀어나올 것 같다(가운데). 1만7000년 전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은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시스타나 성당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에 견줘 ‘구석기판 시스타나 성당’으로 일컬어진다. / 김상태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 제공

3만2000년 전 프랑스 쇼베 동굴벽화는 벽면을 사자 무리에게 쫓기는 코뿔소 떼로 채웠다(왼쪽). 1만7000년 전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는 동물 한마리 한마리가 살아서 튀어나올 것 같다(가운데). 1만7000년 전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은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시스타나 성당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에 견줘 ‘구석기판 시스타나 성당’으로 일컬어진다. / 김상태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 제공

두개골에 난 표범의 송곳니 자국 인류는 다른 동물에 견줘 신체조건이 열악하기 이를 데 없는 나약한 존재였죠.

1948년 남아프리카 스와르트크란스 동굴유적에서 180만년 전 젊은 고인류의 화석이 발견됐습니다.

이 고인돌의 두개골에서 두 개의 작은 둥근 구멍이 포착됐습니다. 이 두 개의 구멍은 동굴에서 발견된 표범의 송곳니와 동일한 간격으로 나 있었습니다. 옆에서는 당시 주요 단백질원이던 개미집을 파헤쳤던 뼈 도구가 확인됐습니다.

과학자들이 퍼즐을 맞췄죠. 표범이 개미집을 파던 고인류를 공격해 두개골에 치명상을 입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280만년 전 어린아이 두개골의 눈 주변에 맹금류의 부리 자국이 선명합니다. 주변을 날던 독수리가 이 아이를 먹잇감으로 채갔을 겁니다. 시시각각 불안에 떨다가 비명에 간 초기인류의 최후가 이들 화석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직립보행’은 나약한 인류가 끈질기게 살아남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두 다리로 곧추서서 걷게 됨에 따라 손이 자유로워져 도구를 제작할 수 있게 됩니다. 서서 먼 곳을 보고, 생각하게 된 인류의 두뇌가 점점 커지고, 상징과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답니다.

지금도 수백만년 전 네 발로 걸었던 흔적이 인간에게 남아 있는데. 바로 꼬리뼈의 흔적입니다.

‘두 발 보행’의 후유증도 남아 있죠. 두 발 걷기에 동원된 다리, 허리, 무릎, 엉덩이, 발바닥 등이 통증에 시달리게 됐죠. 대표적으로 디스크 질환이 나타나잖습니까. 직립에 따라 골반이 좁아지면서 출산의 고통 역시 어쩔 수 없는 숙명이 됐습니다.

구석기인의 패션 왜 사람에게는 털이 없을까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어요.

침팬지 같은 영장류가 서로 털을 골라 이를 잡아주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보이죠. 이겁니다.

영국 인류학자 매리 리키가 탄자니아 라에톨리 유적에서 발견한 360만년 전 고인류의 발자국. 질척대던 화산재에 찍힌 직립보행의 증거로 분석된다. /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 주류성, 2013

영국 인류학자 매리 리키가 탄자니아 라에톨리 유적에서 발견한 360만년 전 고인류의 발자국. 질척대던 화산재에 찍힌 직립보행의 증거로 분석된다. /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 주류성, 2013

귀찮고 불결하며 전염병까지 옮기는 이와 진드기, 벼룩 같은 기생충을 원천 봉쇄하려고 털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그러다 빙하기가 찾아오는데 어찌합니까. 동물의 털가죽을 덮어써야 했겠죠. 그래서 인간의 옷 속에 기생하는 ‘몸니’가 부활한 겁니다. 옷을 입고 몸단장한 흔적이 구석기 조각상에 나타나 있는데요.

빌렌도르프 비너스와 브라상푸이 비너스, 몰타 비너스 등을 보면 머리단장의 흔적이 역력합니다.

러시아 부레트 출토 비너스상은 마치 롱패딩을 입은 것 같습니다. 다른 비너스는 굵은 물방울무늬가 온몸을 감싸고 있죠. 프랑스의 레스퓌그 비너스는 엉덩이 아래로 길고 두툼한 무언가가 내려와 있습니다. 치마 같습니다.

‘구석기판 시스티나 성당’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1939년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1만4000년 전)를 보고 장탄식했습니다.

“알타미라 이후 모든 예술이 퇴보됐다”고요. 괜한 호들갑이 아닙니다.
알타미라를 포함한 구석기시대 동굴벽화를 보면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옵니다.

그중 3만2000년 전 프랑스 쇼베 동굴벽화는 사자 무리에게 쫓기는 코뿔소 떼로 벽면 전체를 채웠는데요. 대지가 울리는 것 같은 생동감이 전해집니다. 1만7000년 전 라스코 벽화의 동물도 살아서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1만7000년 전 스페인 알타미라 벽화에서는 천장을 가득 메운 들소가 압권입니다. 미켈란젤로(1475~1564)의 ‘천지창조’에 견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프랑스 튀크 도두베르 동굴에는 진흙으로 빚은 1만4000년 전 들소가 있는데요. 작품 근처의 진흙 바닥에 어지러이 찍힌 사람 발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2만7000년 전 프랑스 코스케 벽화에는 손바닥 도장이 즐비합니다. 공동작업을 펼쳤다는 얘기죠.

구석기판 ‘엑스칼리버’ 스페인 아타푸에르카 유적에서는 30여 구의 인골과 함께 주먹도끼가 한 점 나왔습니다. 죽은 자를 위해 부장품으로 넣어준 겁니다. 그 주먹도끼에 영국 아서왕의 전설에 등장하는 ‘엑스칼리버’라는 이름을 붙였답니다.

프랑스 샤펠오생 동굴유적에서는 60세 전후의 노인 유골이 확인됐는데요. 출토된 유골 상태를 보니 치아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요. 뼈의 척추와 관절 마디 전체가 염증으로 손상돼 있었습니다. 스스로 걷지도, 음식을 먹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렇게 천수를 다한 노인을 정성껏 보살폈고, 사후 장례까지 치러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60만년 전 고인류의 발자국은 우주시대를 연 아폴로 11호 우주인인 암스트롱, 올드린, 콜린스 등의 ‘위대한 발자국’에 비견될 수 있다. / ‘humanorigins.si.edu’와 ‘미 우주항공국(NASA)’

360만년 전 고인류의 발자국은 우주시대를 연 아폴로 11호 우주인인 암스트롱, 올드린, 콜린스 등의 ‘위대한 발자국’에 비견될 수 있다. / ‘humanorigins.si.edu’와 ‘미 우주항공국(NASA)’

이탈리아 아렌 캉디드 유적에서 확인된 10대 초반 소년의 무덤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붉은색을 내는 산화철을 뿌렸고요. 조가비 장식 모자와 신발 등 각종 장신구로 몸을 둘렀습니다. 오른손은 돌날 한 점을 꼭 쥐고 있었습니다. 어린 자식을 가슴에 묻는 부모의 애끊는 심정이 담겨 있습니다.

이라크 샤니다르 동굴유적에서는 5만년 전 무렵 네안데르탈인의 뼈들이 보였는데요. 다치고 병든 흔적과 함께 장기 치료의 증거도 포착됐습니다. 시신 위에 형형색색의 꽃과 나뭇가지를 헌화하며 장례의식을 치렀던 자취가 역력합니다.

한반도 최초의 수출품 ‘슴베찌르개’라는 석기가 있는데요. 손잡이 혹은 자루와 연결할 수 있는 짧은 꼭지(슴베)가 달린 창끝을 가리킵니다.

이 석기는 4만년 전에서 3만5000년 사이 한반도 중남부에서 제작됐습니다. 어쩐 일인지 일본 규슈(九州)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1500㎞ 범위에 이 한반도 중남부산 슴베찌르개가 보급됐습니다. 최초의 한반도산 수출품이었던 셈입니다.

또 거친 규암이 많은 한반도에서는 정교한 주먹도끼를 제작하기 어려웠는데요.

그래도 구석기인들은 쓸 만한 석재를 골라 나름 정교한 석기를 만드느라 분투했습니다. 덕분에 남한 지역에서 확인된 것만 1000여 곳의 구석기 유적이 존재합니다. 강원 속초 청호동에서는 대규모 석기제작 공장이 확인됐는데요.

직경 30m 정도의 면적에 무수히 많은 석기 조각이 둥글게 흩어져 있었고요.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석기를 만든 흔적입니다. 대량생산, 분업, 전문화의 공정이 이뤄진 것 같아요.

어떻습니까. 나약하기만 한 인류가 마침내 만물의 영장이 된 게 경이롭죠. 하다못해 키가 1m가량의 단신에 뇌의 용적이 420㏄에 불과한 ‘호빗족’마저 장장 6만년 가까이(9만5000년 전~1만7000년 전) 생존했답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인류가 살아남았던 이유가 있죠. 인간과 비인간의 사이에서 인간의 길을 걸어온 덕분이죠.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인간이 자꾸 ‘비인간’의 길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인간의 장래가 염려됩니다.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Ikh07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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