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자취를 했던 곳은 상가 건물의 꼭대기 층으로, 매일 지상철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열면 기차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철로를 따라 걸으면 역사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게 낭만처럼 느껴졌다. 그 집에 살 때 처음으로 휴학계를 냈다. 아빠가 집을 떠나고, 엄마는 병원에 입원하고, 나는 등록금을 낼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직서를 내듯 교수님께 휴학을 선언했고 면담을 나와버렸다. 학비를 벌어 다시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본 생활용품 브랜드 매장에 풀타임 직원으로 취직했다. 그곳은 국내에 여러 지점을 두고 있는 큰 브랜드였는데, 내가 일하는 매장은 서울역 바로 옆에 있는 대형마트 내부에 입점해 있었다.
나는 그 브랜드를 좋아했다. 비싸서 살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시내에 나가면 줄곧 그 브랜드의 매장을 둘러보았다. 언젠가 돈을 모아 그곳의 잠옷을 아빠에게 선물한 적도 있었다. 고급스러운 색감,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 정갈한 디스플레이와 아늑한 분위기. 그야말로 매장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하기로 한 것이다. 시간을 보낸다는 점에서는 비슷했으니까. 그곳에 대해 몇 가지 들은 얘기가 있었다. 매장 직원은 무조건 그 브랜드의 옷을 입고 일해야 하고, 그 옷을 따로 제공해 주지는 않으며, 구매 시 직원 할인도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7만원인가 남은 잔고에서 그곳에서 파는 제일 싼 티셔츠를 2만원 주고 샀다. 다행히 바지는 언젠가 샀던 그 브랜드의 여름 바지가 있었기에 망정이었다. 영하 십몇 도를 밑도는 겨울에 티셔츠와 여름 바지는 필요 이상으로 산뜻했지만, 실내였기에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나는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출근했고, 매니저로부터 눈초리를 받았다.
봉급은 ‘포괄임금제도’와 ‘수습 직원’이라는 명목 아래 최저시급보다 낮아졌다. 사람들은 회사 사장이 구두쇠인 경향이 있다는 둥, 같은 층에 있는 일본 의류 브랜드 직원들은 우리보다 시간당 500원은 더 벌어간다는 둥 수군댔다. 식대는 당연하다는 듯이 불포함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직원들은 돌아가면서 서울역사로 걸어가 터미널 특유의 비싸고 부실한 1만원짜리 정식이나 햄버거집에서 파는 가장 싼 데리버거 같은 걸 먹었다. 그리고는 모여 앉아 요즘 뜨는 배우나 유행어 같은 시답잖은 화제를 떠들어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모두 혈기 왕성한 20대 청년들로, 그 시시콜콜한 대화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묘한 기류가 오갔던 것인지 나중에 알고 보니 대부분이 서로의 연애사에 이리저리 엉켜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에서 살짝 비껴간 채로 식탁 모서리에 앉아 조용히 밥을 먹었다.
열댓 명에 가까운 직원 사이에서 나는 유일하게 도시락을 싸오는 사람이었다. 정말 순수하게 밥을 사먹을 돈이 없던 것이 그 이유였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싫었는지 일하지 않는 모든 시간을 밑반찬을 만들며 보냈다. 교육열이 높은 중산층 주부처럼 유기농 재료만 사서 수능반 아이에게 보낼 도시락처럼 쌌다. 덕분에 안 그래도 적은 월급에 저금할 돈은 거의 남지 않았고, 그럼에도 어쩐지 나는 그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등록금을 모아야 하는 내가 주제에 안 맞는 도시락을 싸는 것과 구두쇠인 회사 사장이 우리의 임금을 낮게 주는 것이 어딘가 비슷한 방식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시금치나물을 씹었다. 내 도시락은 서울역사 어디에서 파는 것보다 푸짐하고 영양가 있었다. 그걸로 기분은 좀 나아졌다. 밥을 다 먹으면 나는 직원들 사이에서 소리없이 일어나 역사를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어딘가로 갈 것처럼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를 교차했다. 그러다 어딘가에 앉아서 일없이 역사를 구경하는 특혜를 누리기도 했다. 기차가 들어오는 플랫폼의 높은 천장, 짐을 들고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도착하고 출발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는 주로 의류 코너에서 옷을 접는 일을 했다. 그 매장을 구경할 때마다 나에게 만족감을 주던 옷가지의 완벽한 정렬은 1분에 한 번씩 옷을 다시 개는 직원들의 손에 비결이 있었다. 옷을 갤 장소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몸을 작업대처럼 쓰는 법을 익혔다. 옷을 펼쳐 몸 위에 겹친 뒤 턱으로 옷을 고정해 신속하게 각을 맞춰 개는 거였다. 그 행위는 곧 몸에 익었고, 곧 옷을 개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하지 않으면서 옷을 갤 수 있게 됐다. 나는 갰던 옷을 또 개고 또 개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떤 이유에선지 나는 그곳의 부지점장에게 미움을 샀다. 그는 줄곧 내 인사를 무시했다. 손님이 없을 때면 나만 매장을 지키게 두고 다른 직원들을 데리고 휴식시간을 다녀오곤 했다. 마감시간이 가까워지면 매장에서 사용한 모든 걸레를 마트 지하 직원 화장실에 가지고 가서 빨아야 했는데, 언제나 내 몫이었다. 시간이 되면 나는 매장 곳곳에 있는 걸레를 수거해 들통에 담아 대형마트의 직원 구역으로 갔다.
그곳은 어두침침했으며 뒷골목처럼 음침했다. 거대한 빛의 그림자 같았다. 물건이 아무 데나, 아무렇게나 쌓여 있고 오랜 시간 방치된 먼지와 때가 곳곳에 묻어 있었다. 딱 몇 사람이 지날 수 있는 길이 나 있었다. 유니폼을 입고 수레를 끈 직원들이 그사이를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그것은 달랑 문 하나로 구분 짓기에는 너무도 큰 차이여서 내가 방금까지 밝고 깨끗한 마트 안에 있었다는 것이 환상처럼 느껴지곤 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어도 직원 화장실에는 온수가 나오는 법이 없었다.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한 번씩 입김을 불어가며 손으로 걸레를 빨아야 했다. 그때 내 관심사는 때늦은 여인네의 유치한 따돌림보다는 다른 것에 있었는데, 어느 날 매장에서 일하는 나를 매장 본사 사장이 우연히 발견하고 그 참한 모습에 반해 나를 구출하는 상상에 몰두하는 일이었다. 그 참한 모습에 걸맞기 위해 매일 나의 매무새를 단장하는 일에 심취해 있었다. 청초하고 근면하면서도 숨길 수 없는 우아함이 뿜어져 나오는 언뜻 범상치 않은 여자 직원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걸레를 빨면서 거울을 보며 귀한 집 규수가 될 만한 상인지 살폈다. 일본어로 건네는 첫 마디는 무엇이 좋을지 고민했다.
“쿄노 오뎅끼와 이이데스네”(오늘 날씨가 좋네요) 같은 평범한 인사말을 떠올렸지만, 곧 말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곳에는 바깥을 볼 수 있는 창문이 없었다. 오늘 날씨는 어떤지, 지금이 몇 시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두침침한 화장실에서 그 생각을 하다가, 곧 고개를 몇 번 흔들어 버렸다.
<양다솔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