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풍채!

최미랑 뉴스레터팀 기자
2023.05.15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은 한참 전 개봉했는데 지금까지도 종종 생각나는 작품이다. 열한 살 소녀 라일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유쾌하게 그렸다. ‘기쁨’, ‘슬픔’, ‘소심’, ‘까칠’, ‘버럭’이라는 다섯 가지 감정을 캐릭터로 만들었다. 기억과 심리에 대한 비유와 통찰이 재미나 가끔 다시 본다.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이(가운데)와 슬픔이(오른쪽 첫 번째) / 디즈니·픽사 제공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이(가운데)와 슬픔이(오른쪽 첫 번째) / 디즈니·픽사 제공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덩치’ 문제다. 라일리의 행복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문제 해결의 중심에 서는 ‘기쁨이’는 군살 없는 마른 몸을 가졌다. 라일리를 위기에 빠뜨리는 주범으로, 마지막에서야 꼭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는 ‘슬픔이’는 살집이 많은 통통한 몸이다. 활기차고 적극적인 캐릭터는 왜 늘 깡마르고 허리가 잘록하게 그려지는가. 반대로 통통함은 왜 우울의 상징으로 쓰인단 말인가.

덩치에 대한 편견에 기대 만든 캐릭터는 선입견을 계속 강화한다. 어느 미국 여성 운동선수의 말이 생각난다. 자신은 통통한 몸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몇 번이나 마라톤 풀코스를 탁월한 성적으로 완주했는데도 사람들은 자꾸 ‘살을 빼라’는 말만 한다고. 이런 세상에서 ‘뼈 말라’가 되고 싶어 먹는 일을 거부하는 청소년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부피를 덜 차지하는 게 미덕이라고 언제부터 확정된 건지 모르겠지만, 세대를 불문하고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특히 여성에게. 남성에게 키와 덩치가 큰 것은 여전히 미덕의 영역에 남아 있지만, 여성들은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내가 너무 크지 않나’ 검열한다.

일흔을 바라보는 엄마가 노년의 여성들이 모인 직장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갔더니 누가 그랬단다. “머리가 작으니 큰 덩치가 잘 보이네.” 등판이 넓다고 했다나? 이 문제로 엄마는 며칠을 씩씩거렸다.

비판하고 있으면서 나조차 떨치기 어려운 게 바로 편견의 무서움이다. 그래서 디즈니 같은 데가 좀 새로운 시도를 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주토피아>의 주인공 토끼도 허리가 얼마나 잘록하던지! 여성 코끼리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도 언젠가 나올까?

군살 없는 마른 몸이 나에게도 남에게도 무해할 거라는, 심지어 더 유능할 것이라는 잘못된 환상. 어떻게 보이는지 말고,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집중할 때만이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 같다. 살찌는 게 신경 쓰이던 사춘기 시절에도 피아노를 칠 때면 살 빠지는 게 싫었다. 힘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좋은 연주에 힘이 전부라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여린 몸이 낼 수 있는 소리와 폭이 다른 건 틀림없었다.

여든을 훌쩍 넘긴 피아노의 거장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사진을 보며 넋을 잃는다. 젊어서부터 워낙 출중한 외모지만 그의 팔뚝에 특히 눈길이 간다. 한국에서라면 덩치 크다고 핀잔깨나 받았을 것이다. 지금껏 내가 만난 가장 훌륭한 수영 교수자인, 지난해 우리 반의 키 큰 여자 선생님도 떠올린다. 풋살에 푹 빠진 여성 동료들의 튼튼한 다리도. 기능하는 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생각하면, 마르고자 무리하려는 생각이 달아날 것이다. 쓸데없는 체중 걱정이 든다면 팟캐스트 ‘여둘톡’이 남긴 명언을 외쳐보자. “여자는 풍채!”

<최미랑 뉴스레터팀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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