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동물학대’ 소싸움 대안 고민할 때다

권대선 정읍녹색당 위원장
2023.05.08

전북 정읍시청 앞에서는 매년 시의회 예산심의가 있는 11월과 12월 사이 1인 시위가 벌어진다. 2017년부터 6년 동안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눈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동물학대 소싸움대회 예산 삭감하라!”는 손팻말을 든 1인 시위는 멈출 줄 모른다(‘전통이란 이름의 학대 정읍 소싸움 폐지 목소리’ 경향신문(khan.co.kr) 2022년 12월 15일 기사 참고).

2023년 4월 2일 대구시 달성군 소싸움대회장 입구에서 손팻말 시위 중인 녹색당 당원들 / 권대선 제공

2023년 4월 2일 대구시 달성군 소싸움대회장 입구에서 손팻말 시위 중인 녹색당 당원들 / 권대선 제공

정읍시는 소싸움 반대 활동이 전국에서 가장 활발한 곳이다. 전국의 동물보호단체들도 주목하고 있다. 그만큼 소싸움협회를 편드는 시민과 이를 반대하는 시민 간 갈등도 크다. 이처럼 정읍시가 소싸움대회를 둘러싼 갈등의 중심지로 떠오른 계기는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정읍시가 축산테마파크사업으로 포장된 상설 소싸움장을 건설하려 했다. 녹색당과 정읍시민들은 ‘동물학대 소싸움도박장 건립반대 정읍시민행동’을 결성했다. 2년여 동안 330여 회에 걸친 1인 시위와 주민감사청구 등 끈질긴 반대 활동을 펼쳐 소싸움장 건립을 무산시켰다.

매년 한 차례 열리는 전국민속소싸움대회는 계속됐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지자체 예산도 계속 편성됐다. 녹색당과 시민단체들은 “소싸움대회에 시민 세금 지원이 웬말이냐”며 1인 시위를 전개했다. 정읍시의회가 시민들의 이런 의견을 일부 받아들였다. 그 결과 기존 지원 규모와 비교해 정읍시 예산의 상당 부분이 삭감되기도 했다.

소힘겨루기협회(구 소싸움협회) 측의 반발도 만만치는 않았다. ‘정읍 전국민속소싸움대회’는 1996년 첫 대회를 시작으로 2003년에는 문화관광축제로 지정된 바 있다. 구제역 등 축산전염병과 코로나19, 시민반발 등으로 열리지 않은 5회를 빼면 27년간 매년 개최됐다. 오는 6월에는 23회째 대회를 열 예정이다. 해마다 2억원 안팎의 예산을 지원받아 대회를 치른다. 임시 경기장 설치비용과 우승상금 및 트로피, 소 주인을 위한 급량비(사료비용)와 출전수당 등으로 지출된다.

배에 상처 입고 경기장서 내장 쏟기도

‘전통 소싸움경기에 관한 법률’과 각 지자체의 ‘소싸움경기에 관한 조례’에 의거해 소싸움대회를 개최하고 예산을 지원한다. 대회는 소의 체중에 따라 특갑종(810㎏ 이상)부터 병종(615㎏ 미만)까지 모두 6체급으로 나뉜다. 일정 규격의 경기장 안에서 두 마리의 소가 힘을 겨루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뿔치기, 옆치기, 들치기 등 뿔과 머리를 이용한 공격 과정에서 싸움소가 뿔에 받혀 상처가 나기도 한다. 배에 상처를 입은 소가 경기장에서 내장을 쏟아내는 일도 있었다.

경기장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주저앉아 있는 싸움소의 모습 /권대선 제공

경기장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주저앉아 있는 싸움소의 모습 /권대선 제공

동물보호법 제8조는 ‘도박·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동물학대’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소싸움은 명백한 동물학대다. 인간의 유희를 위해 동물인 소를 싸우게 해 상해를 입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법 조항 바로 뒤에 붙어 있는 예외 조항(“다만, 민속경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는 제외한다.”) 때문에 발생한다. 이로 인해 소싸움을 조장하고도 동물학대로 처벌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농림축산식품부 고시(제2013-47호)에 따라 전국 11개 지자체에서 ‘합법적인’ 소싸움대회가 열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구 달성군, 충북 보은군, 전북 정읍시·완주군, 경북 청도군(상설도박장), 경남 창원시·진주시(토요경기)·김해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 등이다.

합법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고 해서 소싸움대회가 동물학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동물학대 논란은 더 커지는 상황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싸워야 할 일이 거의 없는(짝짓기 경쟁을 위한 힘 대결은 있을 수 있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뿔치기 등 공격법을 훈련해 억지로 싸우도록 만드는 행위 자체가 동물학대다. 대회장 인근에서 싸움을 위해 대기 중인 소들 중에는 겁에 질려 울어대는 사례도 많다. 경기장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싸움소’를 주인이 억지로 끌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덩치와 힘을 키우기 위해 초식동물인 소에게 뱀탕이나 개소주 등을 먹인다. 지구력을 키우겠다며 시멘트를 채운 폐타이어를 끌게 하고, 산비탈에 매달리게 하는 등의 가혹한 훈련도 서슴지 않는다. 모두 동물학대에 해당한다.

또한 전국 11개 지자체에서 열리는 대회에 잇따라 출전하다 보니 ‘수송열’에 의한 소의 고통도 상당하다. 수송열은 동물을 수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 요인에 의해 발병한다. 운송 과정에서 폐쇄된 공간에 갇힌 채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반복되면 면역력이 낮아져 폐렴과 패혈증이 발생한다. 애초에 소는 태어난 곳에서 벗어나 멀리 이동할 일이 거의 없는 동물이다. 결국 수송열은 사람이 만든 질병인 셈이다.

정읍녹색당 권대선 위원장이 2022년 11월 23일 정읍시청 앞에서 소싸움 예산 전액삭감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대선 제공

정읍녹색당 권대선 위원장이 2022년 11월 23일 정읍시청 앞에서 소싸움 예산 전액삭감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대선 제공

그럼에도 소싸움대회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해당 지자체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소싸움대회를 관광자원으로 육성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손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으로 밤낮 구분 없이 게임이 가능한 세상이다. 첨단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로 즐길거리, 볼거리는 지금보다 더 무궁무진해질 전망이다. 피 흘리며 싸우는 소를 보겠다고 일부러 몇 시간씩 차를 타고 관광을 가는 사람들이 앞으로 얼마나 되겠는가.

청도군도 늘 적자인데 지역경제 운운

그 단적인 예가 경북 청도군의 소싸움도박장이다. 지방공기업 공시자료(2022년 기준 2021년까지 경영정보)에 따르면 소싸움도박장을 운영하는 청도공영사업공사는 매년 청도군으로부터 50억~60억원의 예산 지원을 받으면서도 2011년 소싸움장 개장 이래 단 한 번도 적자를 벗어난 적이 없다. 지난해 청도군의회로부터 혈세를 낭비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청도군은 2023년도 예산으로 청도공영사업공사 지원금 63억원과 기타 소싸움 관련 예산 2억7500만원을 확정했다. 이는 청도군 예산총액 6010억원의 1.1%에 해당한다. 청도군의 한 해 교육예산인 24억원의 2.5배가 넘을 뿐만 아니라 청도군 전체 2만3350세대(2022년 9월 30일 기준)에게 1세대당 난방비 28만원을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다. 이렇듯 해당 지자체의 예산 부담을 되레 가중시키는 소싸움이 어떻게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것인지 동의하기 어렵다.

소싸움협회 측은 민속소싸움이 전통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며, 지켜야 할 소중한 무형문화재라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전통문화로서 민속소싸움은 기계화 농업이 이뤄지기 전 한 해 농사가 끝난 뒤 벌어지는 마을축제에서 각 마을을 대표하는 제일 튼튼한 소들이 나와 서로 힘을 겨루는 행사였다. 이를 통해 마을 주민 간 화합을 다졌다. 상금을 타려고 뿔갈기, 시멘트로 채워진 폐타이어 끌기 같은 학대적 훈련과 동물성 보양식을 먹여대는 방식의 싸움소 육성으로 얼룩진 지금의 소싸움대회가 과연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더구나 싸우기 싫다는 소들을 억지로 싸우게 하고 거기에 돈을 베팅하는 도박장을 운영하면서 어떻게 이를 전통문화와 연결시킬 수 있는지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소힘겨루기대회 / 권대선 제공

소힘겨루기대회 / 권대선 제공

상설 소싸움도박장을 운영 중인 청도공영사업공사에 등록돼 공시된 싸움소 현황(2023년 4월 현재)을 보면 324명의 싸움소 주인이 857마리를 소유하고 있다. 미등록 상태로 싸움소로 육성 중인 소까지 포함하면 900마리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듯 현재 싸움소를 키우고 있는 농가와 업계 종사자들의 생계문제 등도 소싸움 폐지 논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관련 법률 일몰제 적용하고 대안 마련을

이에 녹색당은 단번에 없애기 어려운 소싸움의 현실을 감안해 동물보호법의 소싸움 예외조항과 전통소싸움경기에 관한 법률에 대해 일몰제를 적용하자고 제안한다. 그 기간에 찬성과 반대 양측이 함께 대안을 마련하면 된다. 소싸움 예외조항에 일몰제를 적용하지 않으면, 정읍시의 경우처럼 논란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시민갈등도 커질 뿐이다. 가령 3년의 일몰제를 적용한다면, 소싸움협회 등 당사자들 또한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므로 진지한 논의를 기대해봄 직하다.

지난 3월 전북 정읍시장은 녹색당과 동물보호단체와의 간담회에서 2024년도 예산 편성 시까지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싸움소 육성 농가가 폐업할 경우 보상하자는 녹색당의 제안에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부모나 선생님이 아이들을 훈육할 때 체벌을 당연시하는 풍토가 남아 있었다. 지금은 달나라 얘기가 됐다. 엄연한 아동학대로, 처벌받는 범죄임이 명확하다. 전통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 백번 양보해 소싸움이 전통문화라 할지라도 시대변화에 맞지 않다면 책과 박물관 속에 남겨두는 결정도 필요한 법이다.

녹색당은 사람과 동물 그리고 자연의 뭇 생명이 존중받고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동물의 생명을 존중할 때 사람의 생명도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동물학대 소싸움이 폐지되는 그날까지 행동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권대선 정읍녹색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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