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직장 내 ‘열 번 찍기’는 제 발등 찍기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2023.01.16

팀장(남·열 살 많음): “사귀자.”

팀원(여): “싫습니다.”

팀장: “그래? 그럼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2022년 5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 회원들이 직장 내 성희롱과 차별 행위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22년 5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 회원들이 직장 내 성희롱과 차별 행위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팀장은 그 뒤로도 석 달간 수시로 팀원에게 전화로 연락하고, 술 마시고 전화하고, 소문에 대해 추궁했습니다. 근무시간 중 38회(총 통화시간 3시간 46분), 근무시간 이외 52회(총 통화시간 3시간 25분) 전화를 했습니다. 인형, 비타민제, 홍삼, 비누, 구강청결제, 카시트, 블루투스 이어폰 등 선물 공세도 했습니다. 수시로 업무지시를 했고, 업무 중인 팀원의 뒷모습이 촬영된 CCTV 영상을 별다른 이유 없이 단톡방에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팀원을 면담한다는 이유로 영업을 50분 늦게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보다 못한 팀원은 회사에 신고했고, 회사는 팀장을 해고했습니다. 팀장이 해고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팀장의 개인적인 감정에 따라 피해자에게 한 합리적인 이유 없는 부당한 처우나 업무지시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피해자에 대한 업무방해행위이자, 회사 질서를 혼란하게 만드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직장 내 괴롭힘 인정→정당한 해고로 인정했습니다(대법원 2022다247583사건으로 확정).

팀장의 행위가 비난 가능성이 크고, 상대적으로 여성 노동자 비중이 높은 피고 회사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동종 행위의 반복 가능성과 그에 따른 추가 피해의 발생 가능성도 상당히 높아보인다고 봤습니다. 상사가 이성인 하급자에게 계속된 구애를 할 경우 해고가 정당할까? 의문점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내 고백은 한 번만 하라’는 교훈을 주는 판례입니다.

보통의 사내연애는 내밀한 자유영역

2022년 12월 ‘직장갑질119’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의 “상사-후임 간 사내연애 금지 사규 찬성”이 70%를 넘는다고 합니다. 상사로부터 원치 않는 구애를 받았을 경우, 상사의 우월적 지위 때문에 거절하기 어렵거나 거절하면 불이익을 입는 등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사내연애 금지’를 찬성했다고 합니다.

미국 회사들은 이러한 사내연애를 직접 통제하고 있습니다. 맥도널드의 경우 ‘인사운용 가이드라인’에 직·간접적인 보고 관계에 있는 사원들끼리는 데이트하거나 성관계 맺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를 어기면 해고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맥도널드 최고경영자가 해고되면서 1000억원에 가까운 퇴직금을 반납했습니다. 메타(페이스북)의 직원 핸드북은 데이트 신청을 했다 실패한 동료한테 다시 데이트를 신청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내연애를 바라보는 분위기는 회사마다 다릅니다. “사내연애하는 꼴은 못 봐주겠다”면서 사내연애를 공공연히 금지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사내연애를 금지하는 취업규칙이 있다면 헌법에서 규정하는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선량한 사회풍속에도 반하니, 그 규정은 무효일 것입니다. 취업규칙은 법령이나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해 적용되는 단체협약과 어긋나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근로기준법 제96조 제1항).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을 기록 중인 우리 현실에서, 보통의 사내연애를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목소리도 큽니다. 사내연애를 한다는 이유 그 자체만으로 부당한 해고나 징계, 인사발령이 인정된 판례를 찾기는 어렵습니다(실제로는 인사발령이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사내연애만으로는 사용자의 “정당한 이유”(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가 있을 리 없습니다.

다만 부하 직원과 사내연애, 혼전임신을 이유로 A씨가 23년째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당한 사례가 있습니다. 여성 직원 B씨가 임신 9개월째에 이른 것이 문제됐습니다. 사실을 알게 된 회사(금융기관)는 “대외 영업활동을 하는 회사의 명예 저하는 물론, 직원으로서의 위신과 체면을 손상했다”며 품위유지 의무 위반·사생활 문란·풍기문란·내부질서 위반으로 A씨를 징계해고했습니다. 회사는 23년 전, A씨가 다른 여성인 C씨와 혼전임신했다는 사실을 들어 이전 행위로 인해 더욱 행동에 유념해야 함을 지적했습니다.

A씨는 “C씨와 이혼 후, 같은 직장에서 만난 B씨가 혼전임신을 한 사실은 있지만, 이는 사회적 비행이 아닌 사내연애 중 일어난 사생활”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회사는 대외적 신뢰도나 사회적 평가 훼손을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미혼 상태에서 남녀 간의 자유로운 교제가 허용되는 현실에서 사내연애는 내밀한 자유영역에 속하는 것일 뿐, 그 결과로서 혼전임신을 했다고 하여 이를 사생활이 문란한 것이라 치부할 수 없으며, 결국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회사가 어떤 손해를 입은 것은 없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사내연애를 해 혼전임신을 시켰다는 등의 이유로 해고된 A씨에 대해 “해고는 무효이고, 해고일부터 복직할 때까지 매월 67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울산지법 2015가합25167). 결국 회사는 큰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위 사례는 특이한 케이스지만, 사내연애를 하고 혼전임신까지 하더라도 사생활 영역이므로 회사가 침범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채용담당자와 인턴이 사내연애를 하고 채용과정에 부당하게 영향을 끼친 경우 ▲사내연애 후 이별해 업무협조가 안 되는 경우에는 해고가 정당하다고 본 사례도 있습니다.

불륜과 해고, 엇갈리는 판례

그러면 불륜의 경우는 징계 해고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은 최근까지도 다수의 판례가 엇갈립니다. ▲계열사 간 직원들의 불륜을 ‘사내 불륜’으로 보고, “조직 내 건전한 근로질서와 업무 분위기를 저해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고 본 사례, ▲특정 직원들의 불륜, 부적절한 관계는 총 직원 13명인 회사 분위기를 저해시키므로 징계 해고사유로 삼을 수 있다는 사례 ▲부정행위(불륜)로 은행의 명예를 실추시킨 은행 간부(팀장급)에 대한 면직처분은 정당하다는 사례 ▲기혼남성 공무원과 미혼여성 공무원의 불륜 행위 관련, 기혼남성 공무원 파면조치는 적정하다는 사례가 발견됩니다.

한편으로는 공직자라고 하더라도, ‘사생활 자유’를 강조해 부당해고로 인정한 판결도 다수 있습니다. ▲군내 장교 간 불륜이 인정되더라도, 그 사유만으로 전역시키는 것은 비례의 원칙에 반한다는 판결 ▲공무원도 국민의 일원이자 ‘사생활 자유’의 주체로서 불륜행위만으로 해임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판결도 발견됩니다. 이 경우는 정직 등 다른 징계를 할 수 있습니다.

남녀 관계도, 노동 사건도 그 결론은 끝날 때까지 예측이 어렵습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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