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아프게 태어났어?” 아이의 물음에 엄마는 말문이 막힌다. 10여년 동안 일한 대가가 이런 것일 줄 꿈에도 몰랐다. 맡은 바 책임을 다하려고 힘들어도 꾹 참고 일했을 뿐이다. 그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럴 줄 알았다면 열심히 하지 말걸, 엄마는 자신을 탓한다. 열심히 살았을 뿐인 사람이 자신의 ‘열심’을 자책하는 건 이상한 일이다. 아이가 아픈 건 엄마의 탓이 아닌데, 아이의 잘못은 더더욱 아닌데. 그러면 뭐가 문제였을까.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 ‘반올림’이 기획해 지난 10월 나온 책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희정·오월의봄)은 반도체 산업 현장인 일명 ‘클린룸’에서 일했던 여성들과 그 자녀들의 직업병을 기록했다. 클린룸은 생식독성 물질로 가득했다. 생식독성이란 생물체의 생식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약물이나 화학물질의 독성을 뜻한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노동 현장을 꽉 채운 독성물질은 전장의 총알처럼 엄마의 몸과 태아에게 상흔을 남겼다. 이 책의 저자는 이 무고한 몸들을 관통한 ‘총알’의 궤적을 거꾸로 되짚어가며 바깥의 문제를 가리킨다. 피해자는 많아도 문제를 문제 삼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아마 길이 보이지 않아 그랬을 거예요. (…) 해결 방안이 잘 보이지 않는 문제는 들리지 않게 마련이거든요.” 그러나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이들은 누구보다 용감해지는 법이다. 엄마들이 하나둘 일어섰다. 두려움이 컸지만, 아이의 고통을 규명하려는 의지가 더 거대했다. 긴 투쟁 끝에 마침내 그들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이 한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산업 구조의 문제란 사실을 밝혀냈다. 아이들 또한 마침내 산업재해 피해자로 인정됐음은 물론이다. 이게 끝이 아니라고 책의 목소리들은 말한다. 이제야 발견했을 뿐,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를 둘러싼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피해는 얼마든지 다시 등장할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별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건, 어쩌다 운 좋게 총알이 비껴간 것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일하는 사람을 일회용품처럼 취급하지만, 유기적인 몸을 지닌 채 타인과 연결돼 살아가는 인간은 일회성 존재가 될 수 없었다. 피해마저 연결됐다.” 그렇다. 우리는 연결됐다. 기쁨과 슬픔도, 회복과 피해마저 연결돼 있다. 타인의 삶이 내 삶과 이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곳곳의 문제를 외면하면 안 될 이유는 충분하다. 책의 목소리들은 밖을 향한 일침에서 멈추지 않는다. 한발 더 나아가 우리의 시선을 조금 더 먼 미래로까지 확장시킨다. 우리의 현재가 아직 오지 않은 누군가의 미래로 연결된다는 걸 깨닫게 이끈다. 보이지 않던 문제가 보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요원하던 길이 펼쳐진다. 나의 ‘열심’을 자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로 향한 길 말이다. 문제 삼지 않아 여전히 닫혀 있는 수많은 길을 생각한다. 자기에 골몰해 혼자의 생존에 급급했던 내 좁은 세계를 뚫고 들려온 딴딴한 목소리 덕분이었다.
“대기업을 상대로 (산업재해 보상 신청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힘 약한 사람들이 원하는 게 쉽게 이뤄지는 세상은 아니니까요.” 어려운 줄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묻는 저자에게 ‘엄마’ 혜주씨는 이렇게 답한다. “저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계신 분들도 많을 텐데, 한 사람이라도 보태야죠.” 그리고 덧붙여 되묻는다. “여러 사람이 하면 좋지 않나요?” 혜주씨의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다.
<차성덕 영화감독·시나리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