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면서 아프리카 주민을 빈곤에서 탈출하게 돕는 방법이 있을까.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의 ‘플랜트빌리지(PlantVillage)’팀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전통적인 육림을 축으로 인공지능(AI)과 인공위성, 블록체인을 결합한 방대한 아이디어에서 비롯했다.
아프리카에 있는 육림 농가는 나무를 통해 이산화탄소를 포획하는 단위가 된다. 농가는 나무를 키우면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고, 몸에 탄소를 품은 다 큰 나무를 다시 바이오차로 만든 다음 땅에 묻어 이산화탄소를 완전히 격리하는 두 단계로 탄소를 없앤다. 플랜트빌리지팀은 이 과정에서 나무에 붙인 QR코드, 인공위성 이미지로 작성된 농장지도, AI가 접목된 휴대전화 앱, 블록체인 플랫폼 솔라나 등을 이용해 탄소화 과정을 추적하고 계상해 수익화 경로를 열어준다.
나무를 심고 바이오차를 만드는 각각의 과정은 인증을 거쳐 솔라나의 암호화폐로 연결된다. 장차 탄소배출권 거래에 참여하는 것과 암호화폐로 아프리카 농민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아프리카 농민은 공개적으로 검증된 탄소배출권 거래와 암호화폐라는 세계적 규모의 시장에서, 새로운 수입원을 통해 빈곤에서 벗어나게 된다.
바이오차(Biochar)는 바이오매스와 숯의 합성어다. 나무를 산소와 접촉하지 않은 채 열을 가해 만든 유기물과 숯의 중간 성질을 갖는 물질이다. 탄소처리 관점에서 보면 바이오차는 나무의 몸에 든 탄소가 다시 대기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밀봉한 상태다. 바이오차는 토양생물에 의해 쉽게 분해되지 않기 때문에 땅에 묻힘으로써 탄소를 반영구적으로 대기로부터 격리할 수 있다. 토양을 중화해 살려내는 부수적 효과를 거둔다.
‘플랜트빌리지’ 사업모델의 특징은 지속해서 나무를 심고 키울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성장해 탄소흡수 효율이 떨어진 나무를 바이오차로 전환해 땅에 묻게 해 두 단계를 모두 탄소배출권과 암호화폐로 연결해 금전화할 수 있게 한 데 있다. 검증과 수익화를 위해 AI, 휴대전화, QR코드 등 현대의 ICT 기술을 동원했다. 이 프로젝트는 최근 글로벌 비영리단체 엑스프라이즈(XPRIZE)가 머스크재단(Musk Foundation)과 함께 연 탄소제거대회에서 마일즈스톤상을 수상했다.
#2 탄소와의 전쟁에서 기존 방식은 간단히 간접제거라고 할 수 있다. 탄소가 든 물질이 산소와 결합하는, 즉 산화해 이산화탄소가 되는 걸 줄이거나 생성된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대기 중에서 기능하지 못하게 격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요즘엔 대기에 포함된 탄소를 곧바로 포획해 격리하는 직접공기포집(DAC·Direct Air Capture)이라는 단도직입의 방식 또한 각광받고 있다.
직원이 180명 정도인 스위스의 스타트업 클라임웍스는 DAC 분야의 선도 기업이다. 공동창업자 부르츠바허와 크리스토프 게발트는 취리히연방공대 재학 중 처음 만나 알파인 스키라는 취미를 공유한 친구 사이다. 알프스산맥에서 스키를 타면서 기후변화 문제를 몸소 체험한 두 사람은 공학도로서 대처 방안을 찾던 중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서 직접 제거하는 DAC 방식에 관심을 두게 돼 2009년 클라임웍스를 설립했다.
실험실 조건에서 몇g의 탄소를 포집하기 시작해 2011년 몇㎏ 수준을 거쳐 2014년 첫 번째 소규모 DAC 공장에서 t 단위의 탄소 포집에 성공했다. 탄소 포집의 상용화 연구 및 시연을 거친 결과 2017년에 스위스 힌윌에다 연간 수백t의 이산화탄소 포집 능력을 갖춘 산업용 1세대 DAC 시설 ‘카프리콘’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클라임웍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직접 대기 포집 및 저장(DAC+S)에 관한 교과서 수준의 원론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대기 중에서 이산화탄소를 없앴고, 이어 대규모로 제거하는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 기업이 이미 클라임웍스의 고객이다.
클라임웍스는 2021년 9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DAC 시설인 오르카를 아이슬란드에 설치해 가동에 들어갔다. 연간 이산화탄소 포집량은 총 4000t이며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광물화해 영구 저장할 수 있는 저장소를 보유 중이다. 포집에 필요한 전력을 인근에 있는 지열발전소에서 공급받는 RE100 플랜트여서 ‘탄소 네거티브’를 확실히 구현했다.
#3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는 많은 사람이 참가하거나 방문했다. 영국 왕실의 유지니 공주도 현장을 둘러보고 젊은 세대답게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렸다. 그중에는 텀블러를 멘 사진도 있다.
이 텀블러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오션보틀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보틀’로 불리는 오션보틀의 텀블러는 시쳇말로 예쁜 쓰레기가 아니라 실제 ‘환경템’으로 보틀 1개당 지구 해변의 플라스틱병 1000개를 실제로 수거하는 상품이다.
런던 비즈니스 스쿨에서 만난 닉 도만과 윌리엄 피어슨은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서도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구상하다가 오션보틀을 시작했다. 2018년에 제품을 디자인하고 이듬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사업 자금을 마련했다. 제품가격은 500㎖ 보틀 35파운드, 1ℓ 보틀 45파운드로 텀블러치곤 꽤 고가지만 운영 첫해에만 100만파운드의 매출을 달성하는 등 순항 중이다. 유지니 공주의 인스타그램 사진 게시는 초기 사업에 순풍 역할을 했다. 오션보틀은 2025년까지 70억개의 플라스틱병을 지구의 해안가에서 없애는 걸 목표로 삼았다.
탄소와의 전쟁에서 비관론이 우세한 듯하다. 과학자들은 2050년 전에 한 번은 북극에서 여름에 얼음이 완전히 녹으리라고 예상한다. 북극의 얼음이 21세기가 끝날 때까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간헐적으로 얼음 없는 북극해를 마주할 수는 있다는 분석이다.
북극곰은 어떻게 될까. 그린란드 인근의 북극곰들은 육지로 피신하겠지만 북극점 근처에 사는 곰들은 피신에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수영을 잘하지만, 어류가 아닌 이상 무한정으로 헤엄칠 수는 없으니 익사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 특히 새끼 곰의 희생이 클 수밖에 없다. 그해 여름, 우리는 북극곰이 익사하는 뉴스를 보거나 읽게 될 터이다. 많이 우울하지 싶다. 기후우울증으로 병원을 찾는 이들이 급증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지 않을까.
인류가 산업화 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기도하는 데 그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면, 앞의 사례에서 보듯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시장의 언어로 말해 위기는 항상 기회이기도 했다. 기회가 대부분 시장에서 찾아진다는 사실이 우울증을 배가시키지만, 시장이 만든 위기는 시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게 불편한 순리일지도 모르겠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말마따나 “희망하는 것, 그것은 금지돼 있지 않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게 어쩌면 최선일지도 모른다.
<안치용 ESG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