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기회의 불평등, 진짜 악화됐을까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
2022.11.21

몇년 전 유행한 수저계급론은 자신이 다이아몬드수저에서 흙수저까지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났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부모를 잘 만나야 성공하기 쉽고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한국이 ‘헬조선’이라는 슬픈 현실의 반영이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부모의 소득과 집안 배경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면 청년들의 불만이 커지게 마련이다. 문재인 정부 시기 청년들은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조국 장관의 자녀교육 문제에서 불공정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형식적인 공정만 주장하는 것은 한계가 크겠지만, 이러한 목소리를 그냥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이미 기회가 불평등한 상황에서 시험을 통한 공정마저 약화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20대 남성이 지난 대선에서 여당(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등을 돌린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자식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것이라 대답한 비율이 2009년 48.4%에서 2021년 30.3%로 하락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기회의 불평등 문제는 얼마나 심각할까. 과거에는 소득과 기회 모두 국제적으로 한국의 불평등이 매우 낮다고 이야기돼왔다. 하지만 2016년부터 변경된 공식소득분배 지표에 따르면 가처분소득기준 소득불평등은 선진국 중 높은 수준이다. 또한 이전에는 세대 간 소득탄력성으로 측정되는 기회의 불평등도 국제적으로 낮다고 보고됐지만, 더 나은 방법론을 사용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기회의 불평등도 낮지 않다. ‘고장난 사회적 엘리베이터’라는 제목의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하위 10% 가정 출신의 자녀가 평균소득을 벌려면 다섯 세대가 걸린다. 미국과 같은 수준이며 OECD 평균보다도 약간 높다.

“소득의 세습 강화”… 최근 연구결과는 ‘글쎄’

더욱 중요한 질문은 과연 기회의 불평등이 최근 악화됐는가 하는 점이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조귀동 작가의 <세습 중산층 사회>라는 책은 1990년대생 청년들에게 소득의 대물림 문제가 뚜렷해져 중상류층 부모의 지위가 자식에게 세습되는 사회가 됐다고 보고해 주목을 받았다. 한국은 노동시장에서 격차가 크고 최근 소수의 좋은 일자리가 감소해 부모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청년들은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감소했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몇몇 연구에 따르면 소득 세습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주병기 서울대 교수는 아버지의 직업이 좋은 자녀가 자라서 높은 소득을 얻을 확률로 측정한 기회불평등이 악화됐다고 보고한다. 특히 최하위 환경을 지닌 이들이 최상위소득을 얻을 확률로 따진 ‘개천용 불평등지수’가 2000년대 이후 높아졌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도 20여년 동안 부모의 소득계층이 자녀의 소득에 미치는 영향력이 1980년생보다 젊은이들에게 점점 더 커졌다고 보고한다.

최근 사회학자들의 연구는 한국에서 기회의 불평등이 악화됐다는 증거가 희박하다고 반박한다. 최성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1940년대 이전 출생자부터 1980년대 후반 출생자까지 포괄하는 서베이 자료들을 통합해 부모와 자녀의 교육성취도 상관관계에 변화가 없다고 말한다. 학력 수준 상위 20%의 부모와 하위 20%의 부모 사이에 자녀가 명문대를 졸업할 확률의 차이도 커지지 않았다. 박현준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수와 정인관 숭실대 교수의 연구도 부모와 자녀 세대 간 사회경제적 지위의 상대적 이동성이 악화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린다. 1950년에서 1984년까지의 출생자 집단 사이에 부모-자녀의 상대적 지위의 연관을 분석하면 소득증가와 직업구조 변화로 인한 절대적 이동을 통제한 후 ‘순수한 세대 간 사회이동성’이 오히려 높아졌다고 한다. 1998년과 2018년의 30~49세까지 동일연령집단을 비교한 다른 분석도 2018년의 상대적 사회이동성이 더 높다고 보고한다.

좋은 일자리 경쟁 심화… 20대 연구 ‘아직’

이러한 연구결과는 세간의 인식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에 비해 성장률이 둔화돼 부모 세대에 비해 잘살게 될 확률이 낮아진 현실이 청년들의 절망과 불만으로 이어졌을 수 있다. 특히 부모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커지지 않았다 해도 대학교육이 확대되고 성별 격차가 줄어들어 좋은 일자리 경쟁이 심화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가 청년들에게 기회의 불평등 문제를 피부로 느끼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대부분 연구는 현재 20대인 1990년대생의 자료는 포함하고 있지 않아 최근 변화를 더욱 정확히 분석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최근의 여러 언론기사는 한국장학재단의 국가장학금 자료를 통해 고소득층 자녀들의 명문대 입학 비중이 높아졌다고 보도한다. 이에 따르면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SKY’ 신입생 중 고소득층 자녀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2020년 부모의 월소득 인정금액이 9분위(949만원) 이상인 고소득 가정 출신이 2017년 41%에서 2018년 51%, 2020년에는 55%까지 높아졌고, 서울대는 2017년 43%에서 2020년 63%로 크게 높아졌다. 의과대학이나 로스쿨 신입생도 마찬가지였다. 장기적으로 보면 재학생 기준으로 SKY 대학은 9분위 이상 고소득층 장학금 신청자 비중이 2012년 약 47%에서 2017년 36%까지 감소했지만, 이후 증가해 2019년 44%로 높아졌다. 국가장학금 신청자 중 빈곤층인 기초/차상위계층의 비중은 매우 낮지만 2012년 이후 2019년까지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저소득층인 1~3분위 계층의 비중은 2017년 27%에서 2019년 19%로 급락했다.

국가장학금 신청의 기준인 가구소득은 소득분위가 아니라 소득과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금액을 기준중위소득과 비교한 것이다. 소득환산액이 기준중위소득의 200%가 넘으면 9분위 이상이 된다. 2017년 이후의 변화는 부동산가격의 상승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SKY 대학뿐 아니라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전체 학생의 경우에도 9분위 이상 고소득층 신청자 비중이 2017년 21%에서 2019년 27%로 높아졌다. 따라서 국가장학금 신청자료에 기초한 기회의 불평등 논의는 주의해야 한다. 더욱 세심한 분석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우려의 목소리는 높지만 최근 한국에서 세대 간 사회이동성이 약화됐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물론 앞으로 1990년대생을 대상으로, 그리고 자산을 고려한 기회의 불평등 문제에 관한 연구를 더 발전시켜야 한다. 문제는 결과의 불평등이 고착된 노동시장의 현실에서 전반적인 기회 축소와 경쟁 심화를 배경으로 청년들 삶의 불안이 악화되고 기회의 불평등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모두가 고민해야 할 때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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