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얼굴들

유선희 정책사회부 기자
2022.11.21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날 강남 신사동 쪽에 있었다. 그곳의 가로수길도 핼러윈 분위기가 물씬 났다. 상점에 꾸며놓은 호박 모양의 소품들, 사탕과 젤리를 나눠주는 점원들, 개성을 담아 분장한 시민들이 보였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음악이 길거리에 퍼졌다. 조금은 상기된 사람들의 들뜬 목소리가 즐거움을 더했다. “해피 핼러윈!” 누군가 외쳤다. 10월 29일 토요일 서울 강남의 밤 풍경이었다.

이태원 참사 정부 지정 애도기간 다음 날인 지난 11월 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과 추모 현장을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이태원 참사 정부 지정 애도기간 다음 날인 지난 11월 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과 추모 현장을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모두의 밤이 즐겁게 지나갈 줄 알았다. 집에 도착할 때쯤 ‘이태원 압사’ 소식이 속보로 떴다. 부상이 아닌 ‘압사’라는 단어가 믿기지 않았다. 이후 그 규모에 말을 잃었다. 신사동에서 불과 4㎞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새벽까지 속보를 봤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사고 당시 현장 사진과 동영상이 그대로 공유됐다. 처참했다. 통제·관리가 부재한 길거리에서 안전마저 무너진 현장이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서 ‘일그러진 얼굴들’을 마주한다. 그들은 참사 직후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경찰·소방 인력의 사전 배치로 사고를 막는 게 불가능했다”,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했다. 이태원 핼러윈 행사는 축제가 아니라 현상이다” 따위의 발언이 나왔다. “윗선이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 같다” 등의 언급에선 조직 내부의 분열상도 엿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는 뒤늦었다. 그마저도 모호해 비판이 일었다. 이번 참사에서 확인한 건 재난안전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겠다며 1조원이 넘는 돈을 들여 재난안전망을 구축했다.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소설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엄석대는 그를 방조한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주체적으로 마땅히 개입해야 할 선생님의 역할을 저버린 대가는 무질서였다. 책임 없는 자율은 게으름의 소산이다. 서로가 애써 모른 척하면서 ‘만들어진 영웅’ 엄석대가 탄생했다. 실상은 언제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가 바로 엄석대였다.

이번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서 무질서를 탓하는 일각의 목소리가 있다. 시민의식을 탓할 순 있어도 그것이 이 참사의 본질이 돼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무질서가 벌어진 이유를 따지는 과정에서 국가 재난안전시스템이 얼마나 무너졌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우리 모두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시 묻는다. 국가란, 정부란 왜 존재하는 것인가.

글을 쓰는 와중에도 참사가 난 그날 밤의 시간을 분단위로 계속 곱씹게 된다. 장소만 달랐을 뿐 우리는 같은 분위기의 공간에 서 있었다. 적어도 참사 직전까지는. 참사 이후 면피에 급급한 일그러진 얼굴들을 마주하면서 그저 구김없이 즐거웠던 그날, 우리들의 얼굴을 되뇌어 본다. 그렇게 나만의 애도를 한다.

<유선희 정책사회부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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