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지속가능경영이라는 말

안치용 ESG연구소장
2022.10.24

지속가능발전 개념의 최초 사용자는 ‘환경과 개발을 위한 국제연구소(IIED)’ 설립자인 영국의 경제학자 바바라 워드라는 게 정설이다. 1972년 6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UNCHE) 연설에서 워드는 “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환경과 개발에 관한 새롭고 공평한 파트너십”을 역설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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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듯 공식적인 지속가능성의 정의는 이후 1987년에 내려진다. 유엔 세계환경발전위원회에서 발표한 <우리 공동의 미래>는 보고서 작성 책임자인 전 노르웨이 수상 그로할렘 브룬틀란을 따서 <브룬틀란(Brundtland) 보고서>라고도 하는데,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전 세계적 합의를 최초로 도출한 문건이다. 지속가능발전이란 용어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처럼 유엔 등 국제사회나 개별 국가의 공공영역에서만 확산하고 발전한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도 지속가능성을 활용하려는 노력을 활발하게 보여주었다.

지속가능경영과 사회책임경영

한창 유행할 때만큼은 아니지만 지속가능경영은 여전히 시장에서 요긴하게 활용되는 개념이다. 지속가능경영은 당연하게도 지속가능발전의 틀을 경영에 접목한 것이다. 지속가능발전이든 지속가능경영이든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 환경오염에 대한 걱정을 바탕에 깔고 있다. 대다수 기업은 환경요인이 경영성과를 갉아먹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현실적 고려를 우선했을 것이다. <우리 공동의 미래>가 발표되기 전부터 산업계에 도입된 환경경영이 지속가능경영의 당당한 한 축으로 자리 잡은 것은 필연이다.

지속가능발전이 환경과 사회라는 두 축을 설정함에 따라 지속가능경영도 환경과 함께 사회책임을 포괄하게 된다.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 기업은 그동안 ‘재무성과 극대화’엔 알아서 최선을 다했다. 관행적으로 기업의 본령으로 간주한 이윤극대화에다 지속가능발전에서 제시한 환경과 사회의 두 축을 결합함으로써 지속가능경영이 탄생했다. 지속가능경영이 경제·환경·사회 성과를 종합한 트리플보텀라인(TBL·Triple-Bottom Line)으로 정리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TBL은 지속가능경영의 선구자라 할, 애초에 사회적 경제에 기반을 둔 존 엘킹턴이 제시한 개념으로 3P, 즉 이익(profit), 사람(people), 지구(planet)란 키워드로도 설명될 수 있다.

지속가능경영은 리스크 관리 측면의 경영방침이다. 단기 수익과 장기 수익 간에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전략이 지속가능경영의 핵심 개념이다. 바꿔 말하면 TBL은 환경적이고 사회적인 리스크를 잘 관리하지 못해 경제적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발상일 수 있다. 장기와 단기를 동시에 보면서 경제성과를 최대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리스크에 사전적으로 대처한다는 태도를 흔히 쓰는 말로 하면 ‘전방위적 리스크 관리’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속가능경영은 더 역사가 깊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즉 사회책임경영과 구분된다. 사회책임경영은 기업을 바라보는, 또 기업이 바라보는 관점의 변경을 의미하며, 근본적으로는 기업철학의 전환을 도모한다. 물론 그렇다고 이익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익과 철학의 병치가 단기 이익과 장기 이익의 병치와 같은 개념일 수는 없다.

지속가능경영에 비해 CSR의 역사는 훨씬 오래됐다. CSR과 사회책임경영 자체에 다양한 흐름이 있어 사실 지속가능경영과 직접 비교하는 건 무모한 측면이 있다.

[안치용의 까칠한 ESG 이야기](5)지속가능경영이라는 말

그럼에도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지속가능경영과 사회책임경영을 비교해본 이유는 사회책임경영과 달리 지속가능경영엔 일탈의 경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경영을 영어로 표기할 때 일반적으로 ‘서스테이너블 매니지먼트(sustainable management)’라고 쓴다. 정확한 표기는 ‘서스테이너빌리티 매니지먼트(sustainability management)’이다. 무엇의 지속가능함을 목적으로 하는지가 불분명한 전자와 달리 후자는 지속가능발전이나 지속가능성의 이념과 정책을 수용한 (기업) 경영임을 뚜렷이 한다. 기업이나 조직의 지속가능성이 인류나 사회, 전 지구의 지속가능성과 꼭 일치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므로 어떤 지속가능성에 정렬했는지를 확실히 밝혀야 한다. 서스테이너블 매니지먼트는 기업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경영이다. 즉 서스테이너블 매니지먼트가 서스테이너빌리티 매니지먼트가 아닐 수도 있게 된다. (사회)책임경영은 경영의 책임을 명확히 정의하고 책임의 내용 또한 구체화했기에 기업이 사회의 이익에 반하는 것을 경영의 목표로 삼기는 원론상 힘들다. 반면 지속가능경영에는 세계적 담론에 편승하여 적당히 묻어갈 여지가 상존한다.

ESG란 용어가 대세로 자리 잡기 전에 한국 기업들이 사회책임경영보다 지속가능경영이란 용어를 압도적으로 더 선호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까.

현존 기업회계는 잘못됐다

TBL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재무제표를 들여다봐야 한다. 재무제표 중에서 손익계산서(Income Statement)가 TBL과 직접 관련된다. 간단하게 개념을 중심으로 정리한 손익계산서의 구조는 <표>와 같다.

손익계산서상 매출은 맨 윗줄에 위치해 ‘톱-라인(Top-Line)’이라고 하고 순이익은 맨 아랫줄에 있어 ‘보텀-라인(Bottom-Line)’이라 한다. 기업을 평가할 때 매출과 이익이 모두 중요하지만, 요즘은 과거에 비해 보텀라인을 중시하는 추세다. 순이익을 많이 내면 일단 그 기업은 좋은 기업, 또는 애널리스트들이 말하는 ‘(주식)매수추천’할 만한 기업으로 간주된다.

순이익은, 정확히 표현하면 경제적 혹은 재무적 보텀라인이다. 환경을 오염시키고, 아동노동을 사용한 것이 관련 규제가 도입되기 전엔 기업의 실적에 오히려 긍정적이었다. 오염방지 비용에 투자하지 않고, 아동노동 사용으로 인건비를 줄이면 손익계산서상 보텀라인의 숫자가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지금이라고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회계의 철학이 동일한 까닭이다. 현재의 기업회계는 대체로 사회와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적대적이고 기업의 지속가능성에만 우호적이다.

TBL을 정확히 표현하면 ‘세가지 순이익’이다. 그동안 통용된, 혹은 자본주의가 인정한 보텀라인은 세가지 보텀라인 가운데 오직 하나였다. TBL 회계를 적용하면 기업이 세가지 보텀라인을 종합해 실적을 산출해야 하기에 현존하는 기업성적과 많이 달라진다. 예컨대 온실가스 배출 비용을 기업이 제대로 부담하게 한다면 어닝시즌의 순위표에 적잖은 변동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어느 기업이 지속가능경영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려면 TBL 방식을 수용한다는 전제(sustainable→sustainability)하에서만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워드는 <오직 하나인 지구(Only One Earth: The Care and Maintenance of a Small Planet)>(1972)라는 책에서 “인간 종이 지금뿐 아니라 미래세대에서 지구를 살기에 적합한 곳으로 유지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에 같은 말을 하고 싶다. 지금뿐 아니라 미래에 살아남고 싶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정의해야 한다고.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세계의 지속가능성 방향을 일치시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말에 만일 불편을 느끼는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은 지속가능경영이란 용어를 아예 쓰지 말아야 한다.

<안치용 ESG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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