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개발한 로봇으로 ‘노지 스마트팜’ 실험… 김보영 심바이오틱 대표
농촌에선 일손 부족이 심각하다. 외국인 노동자를 쓴다고 해도 하루 인건비가 20만원 가까이 들고, 그마저도 구하기 어렵다. 특히 수확기엔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이 많고, 시기도 제한되다 보니 경쟁이 치열하다. 인력을 쓸 돈이 없어 농작물을 수확도 못 하고 그대로 버리는 경우도 많다. 농업의 또 다른 문제는 산업재해다. 농업은 국제노동기구(ILO)가 꼽은 3대 위험 산업 중 하나다. 매년 평균 270명이 넘는 농업인이 산재로 목숨을 잃는다.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가격경쟁력은 떨어지는데 생산비는 올라가면서 보조금으로 농촌을 지원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농촌이 일손 부담을 덜고, 더 안전하고, 경제적 여유를 주는 일터가 되려면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다. 농업회사법인 심바이오틱이 찾은 해법은 로봇과 드론이다. 커다란 트랙터가 아니라 무인 로봇이 밭을 갈고 파종한다. 로봇 팔이 달린 인공지능을 이용해 필요한 곳에만 농약을 살포하고, 운반 로봇이 밭에서 무거운 수레를 사람 대신 나른다. 김보영 심바이오틱 대표는 지난 10월 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열린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강연에서 사람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 대신 로봇이 고되고 위험한 일을 대신하면서, 농업이 더 창의적이고, 재밌는 일터가 되도록 하는 것이 회사의 목표라고 밝혔다.
노지에서도 스마트팜 가능합니다
김 대표는 2020년 1월 강원도 평창에 심바이오틱을 설립했다.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에 산업용·농업용 로봇을 제조하고, 테스트하는 파일럿 공장을 갖추고, 여기서 생산한 로봇을 평창의 임야에서 적용하고 있다. “고추와 산양산삼, 산나물, 곰취 같은 작물을 재배하면서 직접 개발한 농업용 로봇을 현장에서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최종 소비자(농업인)가 돼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할지 점검하고, 동시에 농업인과 농업법인이 필요로 하는 로봇을 주문받아 시제품을 만드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심바이오틱은 농업용 로봇을 만들어 농촌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고민에서 로봇·인공지능 개발자인 남편 토스케티 지안 마리아(심바이오틱 최고기술책임자)와 함께 2018년 시작한 개인사업을 농업법인회사로 개편한 것이다. 김 대표는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들은 농사를 안정적으로 지을 수 있으니 소득을 창출할 수가 있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수확을 못 한다. 농촌의 부익부빈익빈은 바로 인력 확보 문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인력 부족 문제를 개선하자는 생각에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농업용 로봇은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 등 농업 문제 해결 방안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지난해 시장 조사업체 ID테크엑스는 글로벌 농업용 로봇 시장이 2032년까지 67억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로봇 기술에 인공지능과 센서 기술, 데이터 분석 능력을 결합하면서 스마트팜이라는 말도 유행하고 있다. 심바이오틱이 내세우는 차별점은 ‘노지 스마트팜’이다. 제어 가능한 실내 환경에서 스마트팜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 이용이 불가능하거나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곳, 시멘트 작업 등 공사가 어려운 곳에서도 생산을 제어할 수 있다. 심바이오틱은 강원 평창의 금당산 꼭대기에 100평 규모의 노지 스마트팜과 인근 약 2㏊ 규모의 노지농장을 운영하면서 노지에서도 스마트팜 기술을 이용해 예측가능한 농업 경영이 가능한지 시험하고 있다. 김 대표는 “태양광 발전으로 센서를 작동시켜 제어하고, 폐쇄회로(CC)TV도 달아 고라니·멧돼지 같은 야생동물 침입이나 농작물을 훔치는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면서 “휴대전화로 데이터를 받아 원격관리할 수도 있다”고 소개했다. 농장에 서버를 두는 방식이라 해킹과 바이러스 감염 걱정 없이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미래 농업은 인간과 기계의 공존
국내는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과 달리 개간지가 많다. 밭에 돌이 많고 경사가 져 기계화가 어렵다. 기계를 쓰더라도 산재 사고의 위험성이 크다. “고강도의 육체노동을 대신할 수 있는 대형화된 기계를 사용하는데 그러다 보니 한번 사고가 나면 크게 사고가 나게 됩니다. 트랙터가 전복된다든지 경운기 등에서 날아오는 돌을 맞아 크게 다치는 일이 많아요.” 심바이오틱이 비용은 최소화하면서도, 효율과 안전성을 높인 농업용 로봇 개발에 나선 배경이다. 보행 로봇의 지형적응형 발모델을 개발해 진흙탕이거나 돌이 많거나 경사도가 있는 등 예상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잘 걷고 작업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었다.
무게도 1t 미만으로 줄였다. “유인 트랙터는 가격도 비싸지만 무겁기 때문에 땅을 누르는 압력이 커지고, 경운을 해도 다시 그 무게 때문에 땅이 다시 다져지니 재경운을 해야 합니다. 환경적인 측면에서 큰 기계를 농업에 이용하는 건 생태적이지 않습니다.” 마력은 낮아도 더 효율적인 작업이 가능하다. 김 대표는 자사의 35마력 무인 트랙터가 52마력 유인 트랙터보다 땅을 더 깊게 간다고 설명했다.
로봇팔이 달린 델타로봇은 파종과 제초, 제품 선별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카메라로 이미지를 인식해 잡초만 골라 제초제를 뿌리거나 농약을 살포할 수 있어 환경친화적이다. 육묘장에서 쓸 수 있는데 기존의 고정형 시설과 달리 이동이 가능해 빌려쓰는 것도 가능하다. “로봇이나 인공지능은 비싸고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돌아가면서 쓰거나 공유해 쓴다면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운반차도 개발했다. 40㎏까지 운반할 수 있다. 경사진 땅도 잘 다니고, 카메라와 센서가 있어 스스로 장애물을 피해 이동이 가능하다. “저도 작업할 때 수레를 사용하다 다친 적이 많아요. 외발이나 두 발이면 잘 엎어져 허리나 발목을 삐고, 다시 주워 담는 것도 일이죠. 수확이 농업의 여러 작업 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힘든 일인 이유이죠. 농업기술센터에서 수요조사를 했을 때도 운반 로봇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로봇이 탄생했습니다.”
김 대표는 로봇과 인간의 공존·공생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해선 안 되고, 힘들고 다칠 수 있고 단순한 작업을 로봇이 하면 가치 있고 재밌는 작업을 농부가 하길 바란다고 했다. 회사 이름도 그 뜻을 품고 있는 영어단어를 택했다. “나이가 들수록 ‘순리대로’라는 말이 많이 와 닿더라고요. 누구도 혼자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상생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농장에 있으면 파종해 싹이 트고 열매를 맺고 수확하는 일련의 과정이 매 순간 신기합니다. ‘이게 바로 우주로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우리가 하이테크 기업이기는 하지만 환경과 지구 그리고 다음 세대를 생각해야 하죠. 그 철학대로 초심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