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글로벌 공급망 재편, 어디로 향하나

서중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2022.10.17

경제문제에 외교·안보문제가 덧붙여지면서 미중 갈등이 세계경제에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세계 산업 지형을 미국에 유리하게 재편하려는 미국 정부의 대외정책과 세계의 공장을 첨단기술로 고도화시키려는 중국의 산업정책은 두 나라 사이의 기술패권 경쟁으로 불붙었다. 반도체산업 공급망에서 대만기업 TSMC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대만과 중국 사이의 양안 관계에 미국이 개입하게 됐고, 외교적 편 가르기를 시도하고 있다.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한국산을 배제하면서 이 문제는 한국 대미외교의 시급한 현안이 됐다. 중국에 투자했던 우리 기업은 시장 다변화를 고심 중이다. 미중 갈등이 우리 경제에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EPA연합뉴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생산방식과 국제 분업구조의 변화를 초래했다. 기업은 한곳에 집적하던 생산 과정을 나눠 여러 지역에 배치해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선진국 기업의 경우 인건비 비중이 큰 제조 분야는 임금이 싼 지역에서 하고 디자인, 제품개발 등 부가가치가 높은 활동은 자국에서 하는 세계화 전략으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제품기획은 캘리포니아, 생산은 중국’을 표방하는 아이폰이 대표적이다. 기업의 세계화 전략으로 글로벌 공급망은 더 확장되고 국제 분업관계에서 상호의존도가 높아지게 됐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이런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최상의 가치였는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중의 첨예한 대립과 경제체제

중국은 2001년 11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WTO 가입을 계기로 중국은 막대한 해외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세계의 공장으로 탈바꿈한 중국은 값싼 제품을 전 세계 소비자에게 제공했다. 중국의 무역상대국들도 인플레이션(물가 오름세) 압력에서 해방됐고, 중국 제조업에 원재료, 부품, 중간재를 공급하면서 중국 특수를 누렸다.

2015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리커창 총리는 ‘중국제조 2025’ 정책을 발표했다. 정책의 핵심은 중국 제조업이 공장에 머물지 않고 기술혁신을 통해 질적 고도화를 이루겠다는 내용이었다. 구체적으로 차세대 정보기술, 로봇, 항공우주 장비, 신소재 등 10개 전략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최근에는 5G와 인공지능(AI) 등을 추가했다. 이들 전략산업 육성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이들 부문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국의 이해와 충돌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미국과 중국은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2017년 7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제조업과 방위산업의 기반 및 공급망 대응력을 평가하고 강화할 것”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고, 미 국방부는 2018년 9월 이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중국 제조업 의존이 커지면 미국 산업, 특히 국방산업 기반에 위험이 된다고 평가했다. 예를 들어 희토류, 영구 자석 등 미국 안보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물자의 중국 의존 현상이 과도하게 일어나면서 미국 안보에 위험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은 미국과 서방 선진국의 첨단기술을 획득하기 위해 합법적 방법뿐 아니라 기술의 강제 이전, 지식재산권 침해, 스파이 활동 등 수단을 동원해가면서까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대응 방안으로 공급망을 다원화하고 산업기반 강화를 위한 동맹국과의 공동대처를 제안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강경노선은 이 보고서에 기초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공급망 정책은 동맹국의 신뢰를 얻지 못했고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도 못했다. 2021년 1월에 출범한 바이든 정부는 글로벌 공급망 정책에서 트럼프 정부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보다 선별적인 전략을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반도체와 과학법’,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발효시키면서 글로벌 공급망에서 핵심가치가 있는 품목의 생산 거점을 미국 내에 두려고 한다.

글로벌 공급망을 두고 벌이는 미중 갈등은 세계경제의 패권을 두고 벌이는 자유주의 경제체제와 국가관리 경제체제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된 것이다. 두 체제는 각각 장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다. 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가 국가적 목표에 우선하는데, 경제력 집중과 불평등 심화라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국가관리 경제체제는 국가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자원 동원에는 효과적이지만, 과잉투자와 경제시스템의 비효율성이 발생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AP연합뉴스

‘대형 정치 이슈’와 불확실성

어디로 향하는가. 여러 요인이 얽혀 있어 미래 방향을 단언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하나의 흐름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 대외관계의 향방은 ‘내부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투영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미국은 심화되는 불평등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개방된 자유주의적 대외 전략을 추진하기 어렵게 된다. 정치적 지지 배경은 다르지만, 트럼프 정부와 바이든 정부가 대중 전략에서는 중국 억제라는 동일한 노선을 취한다. 이는 해결하지 못하는 내부 문제를 대외관계에 같은 방식으로 투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로 중국의 장기적 국가발전 목표를 실현할 수 있을까. 중국에 앞서 정부 주도 산업정책에 성공한 독일, 일본, 한국의 경험은 경제시스템 자체의 개혁이 수반되지 않으면 산업정책은 장기적으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중국은 방만한 국영기업과 지방정부의 무분별한 투자를 해소하는 데까지 국가가 관리해 성공하더라도 그 이후 국가의 개입을 지속한다면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원인치료가 될 수 없어서다. 글로벌 전략을 실행하는 또는 실행할 수 있는 민간 대기업과 국가 사이의 마찰에서 아직은 국가가 통제하고 있지만, 이는 시스템 모순을 초래한다. 글로벌 역량이 있는 기업을 내부에 가두고 있어 발전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추구하는 장기적 산업발전 목표를 보면 ‘토착형 혁신’과 ‘자급자족’을 강조하지만, 보다 공정하고 개방된 경제시스템에 대한 청사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는 10월 중순,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세 번째 연임 여부를 포함한 차기 중국 지도부가 결정된다. 11월 초에는 미국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분의 1을 뽑는 미국 중간선거가 예정돼 있다. 두 행사가 정치적으로 중요하지만, 경제정책 측면에서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담대한 비전과 전략이 두 나라의 현재 정책 프레임에는 부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외정책에서도 현재의 기조를 지속할 것이다. 당분간 세계경제의, 그리고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외환경의 불확실성은 걷히지 않을 전망이다.

<서중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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