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씨감자와 빅데이터 ‘기술’ 들어갑니다

주영재 기자
2022.10.10

계약재배로 유통 혁신하는 ‘농업 플랫폼’… 박영민 록야 대표

우리 농가는 여러 난제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농가 인구는 1998년 440만명에서 2020년 224만명으로 줄어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 상태에 있다. 고령화도 심해 65세 이상 농가 인구 비율이 57.6%에 달한다. 가격 변동이 심하고, 유통처가 없어서 버려지는 농산물도 많다. 모두 농가 스스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들이다.

박영민 록야 대표가 9월 2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열린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강연에서 록야의 사업 모델을 설명하고 있다. / 주영재 기자

박영민 록야 대표가 9월 2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열린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강연에서 록야의 사업 모델을 설명하고 있다. / 주영재 기자

농가의 구조적인 저생산성을 야기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미래 농업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됐다. 농식품 스타트업 록야가 주목한 우리 농업의 ‘약한 고리’다. 록야는 감자를 시작으로 종자 개발부터 혁신적 유통구조 확립까지 농업 전반의 구조 혁신을 목표로 한다. 지난 9월 2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열린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강연에서 박영민 록야 대표는 “농업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선두주자로서 미래 농업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책임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농업 플랫폼 기업이 되겠다”고 밝혔다.

농가와 기업을 잇는 플랫폼 지향

박영민·권민수 록야 공동대표는 2011년 창업을 하면서 하림과 제스프리, 선키스트 같은 동종 업계의 ‘선배’들을 눈여겨봤다. 모두 닭과 키위, 오렌지같이 하나의 품목에서 전문성을 갖고 성장한 기업이다. 록야는 전문성을 키울 수 있으면서도, 시장이 상당히 안정적인 감자를 택했다. 박 대표는 “한 품목을 정해 I자형으로 깊게 전문성을 갖고 성장을 한 후 T자형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감자는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중요한 식량작물이고, 그 안에서도 여러 세분화된 시장이 있다. 록야는 감자칩에 사용되는 가공용 감자로 첫 방향을 잡았다. 가공용 시장은 감자 중 거의 유일하게 계약재배가 안착한 특징이 있다. “자금이 없던 우리로선 기업이 내준 계약금이 마중물이 돼 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가능성을 붙잡고 20대의 마지막 해, 전국의 감자 농가를 찾아다녔다. “농가에선 ‘너희를 뭘 믿고 계약을 체결하겠냐’라고 하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진심을 보여주는 것밖엔 없었습니다.” 농부들과 똑같이 새벽 6시에 출근해 감자 포대를 나르고, 트랙터로 밭을 갈고, 창고에서 감자를 선별했다. 함께 밥을 먹고, 농가의 푸념을 들어주며 마음을 얻었다. “그때 밤새 푸념을 하시며 우릴 괴롭혔던 분들이 지금은 록야의 가장 큰 우군이 됐죠. 지금 감자 가격이 사상 최고치인데 어제도 한분이 연락을 해 ‘지금 여유분이 있는데 너희에게 주겠다’고 했어요. 이런 신뢰가 있으니 우스개로 농업 분야에 삼성전자가 들어와도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말하죠.”

감자는 감자칩 전용 품종인 ‘대서’나 카레나 닭볶음탕 등 요리용으로 쓰는 ‘수미’를 비롯해 수십가지의 품종이 있다. 무보증 종서(種薯·감자종자)를 쓰는 농가도 많다. 가격이 싸지만 병에 걸리기 쉬워 생산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록야는 좋은 씨감자를 보급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농심 등에 가공용 원료 감자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마트용 감자, 급식용 깐감자 시장까지 진출했다. 휴게소 등에서 파는 미니감자·꼬마감자 재배 기술도 연구했다.

박 대표는 록야가 “농업 분야에서 ‘바텀 업(Bottom-Up)’ 방식으로 성장한 거의 유일한 기업”이라고 말했다. 농가 문제의 해법을 현장에서 찾고 적용하기 때문이다. 록야는 농가와 기업 사이의 플랫폼 역할을 하면서 양쪽의 불만을 알 수 있었다. 농가는 대개 재배 후 계약을 하기 때문에 출하처 확보가 불안정하다. 전국 생산량이 어느 정도인지, 가격은 어느 선에서 형성되는지 정보가 없어 사가는 곳이 임의로 가격을 불러도 대항하기 어렵다. 농산물은 재배 후 유통단계가 불필요하게 늘면서 가격이 오른다. 중간 판매상이 이득을 가져가는 만큼 기업과 소비자 부담이 늘어난다. 기업 입장에선 안정적인 원료 확보가 어렵고, 농산물 품질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다.

박 대표는 록야의 역할을 “농가와 기업이 서로의 어려움을 알 수 있도록 ‘번역’해주고, 가치 있는 해결책을 제공해주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록야는 유통구조를 투명하고, 간결하게 바꿀 방안으로 파종 전 계약을 진행하는 방식의 계약재배를 택했다. 농가는 안정적인 출하처를 확보해 수익 걱정 없이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다. 기업은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하고, 기업 맞춤으로 작물을 생산할 수 있다. 중간에서 록야는 재배 데이터를 모아 분석한다. 이를 통해 최적의 종자와 재배법을 개발하고 농가에 제공해 생산성 향상을 꾀할 수 있다.

국경 없는 계약재배

성장을 위해 ‘대한민국 1등 감자기업’ 다음의 미래상을 그려야 했다. 그래서 2017년부터 농업에 정보통신기술(IT)을 접목한 ‘애그테크’ 기업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자회사로 농업 빅데이터 기업 ‘팜에어(FarmAir)’를 설립한 게 시작이었다. 체질 변화는 성공적이었다. 지난해 매출 265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월 기준 30억원을 돌파한 후 기록을 계속 경신 중이다. 팜에어의 농산물 가격 종합 분석 서비스인 ‘테란’이 한몫했다. 테란은 그날의 농축산물 경매 가격과 날씨, 수출입정보, 지역별 출하량 등 데이터를 수집해 실시간으로 가격 분석·예측 서비스를 제공한다. 데이터로 농가와 기업의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돕는다. 현재 감자를 포함해 시장에서 의미가 있는 22개 농축산 품목을 대상으로 하는데 최근 축산분야 서비스도 오픈했다.

기후변화는 왜 농업에 ‘테크’가 필요한지 절감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기후변화를 정말 몸으로 체득하고 있어요. 창업 후 5년까진 큰 변화가 없어보였죠. 하지만 이후부터 폭염과 가뭄, 폭우 등 수십년 만의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감자 농사를 망쳤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그래서 주식을 분산투자하듯, 계약재배도 전국단위로 해야 하죠. ‘하늘이랑 동업하는데 어쩔 수 없다’고 하고 ‘두 번 망해도 한 번 잘되면 된다’고 하지만 이렇게 가면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농산물 가격 예측으로 기후변화에 조금은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스마트팜 기술도 연구 중이다. 기후와 날씨의 영향을 줄이고, 일정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스마트팜이 미래 농업의 한축을 담당할 것이라고 본다. 록야는 천연물 소재 기술을 확보하는 연구 시설로 스마트팜을 활용한다. 고부가가치의 기능성 원료를 발굴하고, 생산공정을 최적화해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상처치료제 ‘마데카솔’의 원료인 병풀에서 유효 성분을 대량으로 추출하는 부문에 성과를 내고 있고, 새싹 인삼에서 추출한 유산균 등은 제품화됐다. 사업 외연을 확장 중이지만 박 대표는 여전히 업(業)의 본질은 현장에 있다고 강조했다. “전통 농업에 대한 노하우와 이해가 있어야 농업 관련 기술을 빠르게 녹여낼 수 있습니다. 농업에 인공지능(AI)이나 바이오테크가 들어오더라도 업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게 우리 회사의 기본 철학입니다.”

박 대표는 록야의 사업 모델이 전 세계 농업 현장에서 통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농업인은 구조적인 저생산성 문제와 유통망의 문제를 호소하고, 기업은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싶어합니다. 기술력의 차이만 있을 뿐 생각과 구조는 정말 똑같습니다.” 그래서 록야의 최종 목표는 ‘국경없는 계약재배’이다. 마치 반도체 설계 회사가 제조를 파운드리 업체에 맡기듯, 록야는 농가에 종자와 재배법을 보급하고, 계약재배로 생산을 맡긴다. “인구 증가의 대부분은 동남아·중앙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이뤄질 텐데 식량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기 어려운 국가가 많습니다. 글로벌에서도 록야의 전문성을 발휘해 계약재배를 확대하면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농업의 혈액이 순환되게끔 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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