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베트남 직원 40만명 일괄 해고’, ‘베트남 국가 파산 사태 선언’, ‘기재부, 한국기업 베트남 철수 권고.’
최근 유튜브에서 ‘베트남’을 검색하면 쏟아져 나오는 가짜뉴스의 제목들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주요 한국 기업이 앞다투어 철수하면서 베트남 경제가 부도 위기에 처했다는 등의 황당한 내용이 난무하고 있다. 조회수를 올려 돈을 벌려는 유튜버들의 장난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상황이 심각하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활동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 양국 간의 외교 갈등과 우호적인 국민감정마저 무너뜨릴 정도로 내용이 악의적이다.
대기업들이 베트남에서 철수한다고?
최근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베트남에 온 한국인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삼성전자가 베트남에서 철수한다는데 사실이냐?”라는 것이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베트남 상황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유튜브 영상에 현혹될 수는 있겠지만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에서조차 재확인할 정도로 베트남 관련 가짜뉴스의 영향력은 심각하다. 해당 동영상들의 조회수는 일반적으로 15만~70만회로 다양하며, 많게는 100만회를 훌쩍 넘기도 한다. 이들 영상은 허위 사실에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데 ‘[긴급]베트남 파산 선언 IMF에 긴급 지원 요청’(뉴스팩트럼), ‘베트남 총리 탄핵절차 시작’·‘삼성전자 특단의 조치 베트남 현지 직원 50만명 일괄 해고’(뉴스굿모닝), ‘삼성 철수에 분노한 베트남 근로자들, 결국 대규모 폭동 터졌다’(퍼펙트코리아) 등이다. 모두 허위 사실이다. 베트남 국민 입장에서는 매우 모욕적인 표현이 난무한다. 서로 다른 계정의 유튜버들인데 4~5곳이 일정한 시차를 두고 번갈아가며 동일한 주제의 영상을 올리는 패턴을 보인다. 또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전혀 무관한 베트남 현지 언론의 보도를 근거 자료로 활용하는데 베트남어를 읽을 수 없는 한국인들은 속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팩트는 무엇일까? 삼성전자 베트남 휴대전화 공장의 철수에 대해서는 삼성전자 인도 공장의 스마트폰 생산물량이 대폭 늘어나게 되면서 베트남 생산량이 일부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은 있다. 2018년 삼성전자는 인도 노이다 지역에 세계 최대 규모의 스마트폰 공장을 세우고, 2019년 9월 마지막 중국 공장의 문을 닫으면서 중국 생산량을 모두 인도로 돌렸다. 여기에 더해 삼성전자 스마트폰 전체 생산량의 50~60%를 차지하는 베트남 공장들이 코로나19로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되자 공급처 확대를 위해 인도로 물량을 분산한다는 관측이 베트남 철수로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베트남에는 고가 모델 중심으로, 인도에는 중저가 모델 중심으로 물량이 조정될 것으로 관측된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삼성과 더불어 베트남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LG그룹이 철수한다는 가짜 영상도 넘쳐난다. 최근에는 LG디스플레이가 베트남을 철수해 파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 퍼졌다. 이는 디스플레이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생긴 오해다. LCD는 중국의 저가 공세와 공급 과잉으로 적자 산업이 된 지 오래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20년 LCD 사업 자체에 대한 포기 선언을 했고, LG디스플레이는 2021년 고부가가치의 OLED에 집중하기로 했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 역시 금시초문의 가짜뉴스이자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라고 일축했다.
정작 글로벌 기업들은 베트남으로
베트남에서 도요타를 누르고 판매량 1위를 달성 중인 현대자동차가 베트남에서 철수를 결정하자 베트남 노동자들이 사장실을 점거하며 시위를 했다는 동영상이 73만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유튜브 계정 궁금해요-해외반응). 이 가짜뉴스가 황당한 건 현대차가 베트남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스팟’ 로봇을 투입했다는 대목에 등장하는 ‘스팟’이 실상은 생산제조로봇이 아닌 인공지능 ‘개 로봇’이기 때문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현대차가 인수한 회사로, 개 로봇인 스팟 4대를 현대자동차 판매 매장에 브랜드 이미지 재고와 홍보용으로 배치한 것을 그럴듯하게 날조했다. 이 가짜뉴스에 대해 현대자동차 관계자에게 문의해보니 역시나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현대차는 오히려 현재 연간 7만대 생산 규모인 1공장에 이어 연간 10만대 생산 능력의 제2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유튜브에는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을 철수한다는 가짜뉴스가 넘쳐나지만 정작 글로벌 기업들은 미중 갈등을 피해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고 있다. 지난 8월 20일 로이터 통신은 애플의 아이폰을 생산하는 폭스콘이 베트남 북부에 공장 설립을 위해 베트남 지방정부와 3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4000억원의 투자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베트남에서는 에어팟, 애플워치, 아이패드를 생산하고 있는데 이제 핵심 상품인 아이폰도 베트남에서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기는 2023년 7월부터 베트남에서 차세대 반도체 기판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조3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고, 지난 2월 추가로 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고부가가치의 차세대 패키지 기판(FCBGA)을 베트남에서 생산하게 되면서 기존 단순 조립 가공 생산기지에서 이제는 공정 기술 난이도가 높은 산업까지 앞다퉈 뛰어드는 첨단기지로서 베트남의 매력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일본은 오랜 기간 아세안 지역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붓는 인프라 투자와 개발원조 지원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그러다가 지난 20여년간 중국에 영향력을 빼앗기며 아세안은 일본과 중국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유독 베트남에서만 한국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가짜뉴스로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안 좋아지면 이득을 보는 세력은 일본과 중국이다.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한국-베트남 양국의 관계를 위협하는 유튜버들에 대한 민·형사상의 처벌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