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치킨의 대명사인 KFC가 영국과 베트남에서만 세계 최초로 ‘비건 치킨버거’를 한정 출시했다. 동물성 음식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채식하는 사람을 일컫는 ‘비건(vegan)’과 동물인 닭고기를 동시에 표현한 모순적인 ‘비건 치킨버거’라는 메뉴도 독특하지만, KFC는 왜 하필 베트남에서 세계 최초로 비건 치킨버거를 출시했을까?
베트남에는 1000만명의 불교도와 불교에서 파생된 베트남 자생 종교인들이 있다. 이중 매월 음력 1일과 15일 그리고 개인적인 애도일과 기도일에는 육식을 금하고 채식을 하는 이들이 많다. 베트남은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돌아가신 부모와 조상에 제를 올리는 것을 당연시한다. 유교문화와 살생을 금하는 불교문화가 생활 곳곳에 혼재돼 있어 살생으로 인한 업보와 윤회에 대한 믿음으로 조상들을 위해 한 달에 2~3번은 채식을 하기도 한다. 특히 KFC가 베트남에서 한정 출시한 8월은 베트남 사람들이 조상들을 기리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백중날(음력 7월 15일)이 있는 달이다. 딱히 불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이날만큼은 조상들을 위해 채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KFC가 이 시기에 맞춰 비건 치킨버거를 선보인 것이다. 비건이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고 있는 시점에 닭고기 메뉴가 브랜드의 상징인 KFC마저 고객 확보를 위해 대변신을 시도하면서 그 실험 무대로 베트남을 선택한 것이다.
베트남 비건 푸드, 세계적 인기
미국과 유럽의 채식주의자들 사이에서 베트남 음식은 비건 푸드로 각광받고 있다. 미국, 호주, 영국 등의 지역 일간지에서 선정하는 ‘맛있는 채식식당 리스트’에는 대체로 베트남 식당들이 들어가 있다. 서양 여행객들 사이에서도 베트남 비건 푸드의 인기가 많다. 글로벌 여행 사이트나 여행자들의 블로그를 보면 베트남 비건 푸드에 대한 각종 정보와 호평 일색이다. 베트남 최대 음식 주문 플랫폼인 ‘푸디(Foody)’에 등록된 채식식당은 2022년 현재 호찌민 1200여개, 하노이 200여개다. 호찌민 지역에 채식식당이 많은 이유는 불교 신자가 많기 때문이지만, 열대지방이면서 드넓은 남부 평야에서 생산하는 과일과 농산물이 풍부해 다양한 비건 메뉴를 개발할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슈퍼마켓에서는 채식 라면, 콩으로 만든 인조고기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2019년 글로벌 리서치 회사 스타티스타(Statista)가 발표한 ‘베트남 소비자 채식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 중 29.0%가 1주일에 3~6차례 채식을 한다고 했다. 일주일에 1~2차례 채식을 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26.2%로, 1주일에 1회 이상 채식을 하는 비율이 55.2%나 됐다. ‘채식을 하는 이유’(복수 응답 가능)에 ‘채식이 더 건강한 음식’이라서라는 응답이 61%로 1위를 차지했다. 그 외에도 40%가 ‘동물 복지’를 위해서라고 답변했다. 눈에 띄는 답변이 ‘최근 음식 트렌드를 따르고 싶다’(36%)와 ‘비건 다이어트’(38%)였다. 대체로 채식을 하는 이유가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서였다. 이는 베트남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슈퍼마켓의 우유 진열 공간도 비건 경쟁으로 뜨겁다. 요즘 베트남 슈퍼마켓의 진열 공간 중 비건 제품들의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은 우유 진열 공간이다. 2018년 베트남 최대 우유회사인 비나 밀크(Vina Milk)는 호두, 아몬드, 팥 우유를 출시했으며 3위 업체 TH 밀크(Milk) 역시 호두, 아몬드 우유에 추가로 마카다미아 우유를 출시하며 경쟁을 벌이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전통적으로 아침에 두유를 많이 먹는다. 유전자 콩을 사용한 두유에 대한 불신이 형성되면서 한국의 쌀음료가 두유를 대체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견과류 우유가 베트남 내에서 생산되기 시작했다. 비나 밀크의 견과류 우유는 한국으로도 수출한다. 최근에는 중국과 대만으로도 수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캐슈너트 치즈, 미래 베트남 먹거리
베트남은 한때 세계 캐슈너트 수출의 50%를 차지했을 만큼 최대 생산지다. 캐슈너트를 이용한 비건 치즈를 상품화하고 있는 스타트업도 있다. 비건 치즈는 아직 식당을 운영하면서 소규모로 온라인 판매를 하고 있지만, 베트남 거주 외국인들과 채식을 원하는 베트남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채식하는 사람 중에는 건강을 위해서보다는 환경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이들도 있다. 지구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56%가 소를 키우면서 발생한다 해서 지구온난화 방지 목적으로 유럽에서 비건 치즈가 인기를 끈다. 스위스 공영방송 스위스인포(Swissinfo.ch)는 ‘미래의 스위스 치즈는 견과류로 만들어진다(The Swiss cheese of the future is made from nuts)’라는 기사에서 캐슈너트로 만든 다양한 치즈와 스위스를 상징하는 퐁듀를 만드는 방법까지 소개했다. 일반 치즈를 생산하는 데 16ℓ의 우유가 필요하지만 비건 치즈는 1㎏의 캐슈너트와 0.5ℓ의 물만 필요하기 때문에 상당히 친환경적이다. 베트남은 비건 치즈를 제조하기 위한 필수 원료인 캐슈너트의 주요 원산지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쟁력 있는 비용으로 더욱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 유럽으로 수출할 기회도 많다.
개성 넘치는 한국의 비건 푸드 기업들이 베트남을 새로운 시장으로 바라보고 진입해도 좋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베트남의 비건 상품 개발이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각광받기 위해서는 세심한 디자인과 상품기획력이 필요하므로 한국 기업과 식품 개발 인력들에게 좋은 기회다. 떠오르는 비건 푸드 소비시장으로서도, 세계 여러 나라로 수출하기 위한 생산기지로서도 베트남은 비건 푸드의 떠오르는 성지다.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