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시대 자원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기준에 따라 다른 순위가 매겨질 수 있겠지만, 현시점에서 생산량과 시가총액기준으로 전 세계 최대 석유기업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다. 아람코의 시가 총액은 2022년 7월 11일 기준으로 2조2000억달러가 넘는다. 그 뒤를 이어 쉘과 엑손 모빌 등 글로벌 석유 메이저 기업이 자리하고 있다. 생산량 기준으로 보면 중동의 석유기업이나 브라질의 페트로브라스와 함께 아세안 지역의 회사도 눈에 띈다. 바로 페트로나스(Petronas)와 퍼르타미나(Pertamina)다. 페트로나스라는 기업의 이름은 말레이시아 글로벌 원유 및 가스 브랜드 파워에서도 8위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세계시장에서 그 존재감이 묵직하다. 페트로나스는 말레이시아 최대 국영기업이다. 이 회사는 알지 못할지라도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일명 쌍둥이 빌딩, 직접 방문해보지 않아도 한 번쯤은 화면으로 봤을 그 건물이 바로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다. 두 건물 중 하나를 한국의 삼성물산(구 삼성건설)이 지었다. 이 건물을 본사로 사용하는 페트로나스는 말레이시아에서 매출액 기준으로 최대 기업이다.
단기간에 세계적인 석유회사로 도약
지금은 미국 경제지 ‘포춘’에서 선정하는 포춘 글로벌 500에 해마다 포함되는 다국적기업의 하나로 성장했지만, 페트로나스는 1974년 겨우 18명의 직원만 있던 작은 원유관리회사에 지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는 석유, 주석, 고무, 팜 등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영국의 식민지 시절 자원개발은 외국기업이 전부 담당했다. 로얄 더치 쉘이 말레이시아의 동쪽 섬에 있는 사라왁 지역에서 최초로 원유 탐사를 시작했고, 1960년대 엑손과 쉘이 개발과 생산 권리를 부여받았다. 에소(Esso)와 콘티넨털 오일도 말레이시아 반도 동쪽 해안의 연안지대 석유 탐사를 시작했다. 독립 이후에도 자원개발에 필요한 기술과 자본이 부족한 상태의 말레이시아 정부는 석유생산에 참여하지 못하고 조광권 계약을 통해 로열티를 받았다. 기술력이 부족한 산유국들은 메이저 석유회사와 조광권 계약을 맺고 석유 개발에 나서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자원개발에 따른 이익을 외국기업에 흘러가게 두기보다는 자국 내 수입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고, 자원주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여론도 형성됐다.
경제발전 전략을 추진하면서 자원개발의 가치가 중요해진 말레이시아 정부는 국가 주도로 석유기업을 설립해 직접 석유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이를 위해 1974년 석유개발법이 통과됐고, 이에 기반을 두고 설립된 회사가 바로 페트로나스다. 페트로나스는 페트롤리암 나시오날 버하드(Petroliam Nasional Berhad)의 줄임말로, 우리말로는 국영 석유회사라는 뜻이다. 사실 페트로나스 설립 모델이 되는 형태는 인도네시아의 퍼르타미나다. 1958년 설립한 퍼르미나를 계승해 1971년 퍼르타미나 인도네시아 국영 석유 및 가스 회사를 설립한 바 있다.
페트로나스 설립 당시 외국계 석유회사들은 자신의 권리를 넘기기를 거부했지만 결국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연방정부와 주정부와의 자원개발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최종적으로는 말레이시아 내 원유 및 가스의 모든 권한을 가져가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후 페트로나스는 국내 개발에 집중했고, 추가로 신규 매장량을 계속 발견했다.
페트로나스의 역사는 50년이 채 되지 않지만, 단기간에 세계적인 석유회사로 성장했다. 기본적으로는 말레이시아 내 풍부한 석유매장량이 뒷받침되기도 했지만, 회사의 성장 전략과 방향을 석유 및 가스 부문에서 통합된 글로벌 기업을 목표로 명확하게 하면서 국영기업의 색채보다는 글로벌 기업의 길을 따라갔다. 사업 포트폴리오의 구성부터 수직적·수평적 통합 전략을 세웠다. 원유 및 가스 탐사와 개발을 담당하는 업스트림 그리고 원유 정제의 다운스트림을 완성하고, 석유제품 생산과 가스 생산도 확대했다. 말레이시아 내에서만 머물지 않고 미얀마와 베트남에 진출했다. 합작법인을 통해 원유 및 가스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제는 아세안을 넘어 아프리카와 중동 등으로 글로벌 확장 전략을 공격적으로 추진하면서 기업의 규모와 위상을 향상시켰다.
수소와 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도 투자
페트로나스가 말레이시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법인세를 많이 내는 기업으로 페트로나스의 배당금과 세금이 정부 예산의 45%를 차지하기도 한다. 2010년 페트로나스 당기순이익의 55%가 주주인 정부에 배당금으로 지급됐다. 이는 국영 석유기업의 세계 평균 38%보다도 높은 수치다. 결국 법인세와 수출 부담금, 배당을 합해 657억링깃(당시 환율 211억달러)에 달했다. 정부가 100% 지분을 소유한 기업이다 보니 말레이시아 국가 재정의 손실을 방어하는 도구로 페트로나스가 이용당하는 게 아니냐 하는 의구심이나 정치권력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없지는 않다. 말레이시아 국채보다 페트로나스의 신용등급이 더 높다는 점은 말레이시아의 경제적 신뢰도보다는 페트로나스의 생산역량과 매장량 등 기업 자체 밸류가 더 높다고 시장이 냉정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말레이시아 전체 원유와 석유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유일한 기업이 페트로나스이므로 말레이시아의 전체 매장량, 그리고 일일 생산량과 정제 능력도 가치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상업적 가치가 있는 매장량은 원유는 36억~50억배럴 이상이고, 가스는 42조세제곱피트(ft³)로 추정된다. 이는 세계 석유매장량과 가스매장량 부문에서 24위의 순위다. 특히 말레이시아는 세계 4위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국이다. 생산과 정제 역량을 보자. 2021년 하루 원유 2275배럴을 생산했다. 이는 2020년 대비 3% 증가한 수치다. 하루 700킬로배럴 이상을 정제하고 있다. LNG도 연간 4700만t 생산하며 전체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수요 증가와 더불어 러시아의 공급이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원유와 LNG 가격이 뛰며 페트로나스의 전체 매출은 2480억링깃으로 전년 1787억링깃보다 39%나 증가했다. 이익은 486억링깃으로 2020년보다 100% 증가했다.
페트로나스는 화석연료에서 이제 수소와 태양광 등 신규 친환경 에너지 부문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비즈니스 분류도 업스트림, 다운스트림에 이어 가스와 신에너지(new energy) 등에 이르기까지 세 부문을 고루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향후 이 부문에서 투자와 기술개발, 매출 증대를 기대하고 있다. 외국기업과의 협업도 늘고 있다. 한국의 SK어스온과 삼성물산 등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시대에 페트로나스와 한국 기업들이 파트너십을 통해 더 큰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고영경 선웨이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