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스타트업 루트에너지 윤태환 대표
스티븐 슈나이더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생물학·환경공학 교수가 1997년에 쓴 <실험실 지구>라는 책이 있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과학지식을 소개하고,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역설한 책이다. 그 책에 이런 비유가 있다. 개구리를 서서히 차가운 물에서 끓이면 죽고, 펄펄 끓는 물에 넣으면 놀라서 펄쩍 뛰어나가 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지구온난화에 안일하게 대응하면,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경고였다.
재생에너지 분야 핀테크 스타트업 루트에너지의 윤태환 대표는 초등학교 때 이 책을 본 후 남다른 각성을 했다. 기후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게 됐다. 에너지환경 컨설턴트로 일하다 30대에 접어들어 재생에너지공학 분야전문성을 쌓고 싶어 덴마크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창업했다.
윤 대표는 기후위기 해결에 일조하겠다는 오랜 소망을 이룰 기회를 금융에서 찾았다.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에 주민이 투자할 수 있는 금융 플랫폼을 만들었다. 주민이 직접 자기 돈으로 투자해야 재생에너지의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지난 7월 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열린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비즈니스 액티비스트’ 강연에서 윤 대표가 들고 온 자료 첫 장에는 ‘디지털 기후금융 플랫폼, 탄소중립 시민들과 10년 앞당기기’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다. 이날 그가 강조한 ‘에너지 시민 육성’과 통하는 제목이다. 이날 강연을 질의응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RE100 캠페인이 콘텐츠 업계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제이슨 므라즈는 남들이 안 하던 시절(약 12년 전), 하와이에서 태양광과 바이오 에너지로만 100% 돌아가는 녹음실을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녹음한 앨범에 100% 재생에너지로 만들었다고 명기한 최초의 가수였다.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많은 사람이 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넷플릭스는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를 100% 재생에너지로 만들겠다고 밝혔고 최근 목표를 달성하였다. JYP 엔터테인먼트도 RE100을 달성했다. K팝 업계가 환경 분야의 책임을 강화하라는 팬들과 투자자들의 요구도 크게 받고 있다고 들었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핀테크의 역할은.
“에너지 분야의 스타트업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춰주는 솔루션을 만드는 게 우리 회사의 미션이다. 클라이밋(기후위기) 핀테크라고 할 수 있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재생에너지 사업, 전기차 충전사업, 농축산업의 탄소저감 활동, 그린빌딩 등 녹색분류체계를 대상으로 한 사업에 관심이 많다. 현재는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주민참여형 커뮤니티 펀드, RE100 솔루션 제공을 주로 하고 새롭게 전기차 충전 사업 등 녹색분류체계(Green Taxonomy)에 해당하는 사업들에도 투자하고 있다. 탄소신용평가 모델도 개발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이 중요한 이유는.
“기후위기의 경제적 영향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바닷물의 수온이 높아져 증발하면서 특정 지역에 많은 비가 내리고 다른 지역에는 가뭄이 생긴다. 땅이 마르면 탄소 저장 능력이 떨어지고, 동물이 이동하면서 전염병을 퍼뜨린다. 기후위기와 감염병 위기가 연쇄적으로 이어지고, 그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는 재무적으로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2020년만 자연재해로 입은 피해 규모가 420조원에 달한다. 데이터로 조사되지 않은 걸 포함하면 이보다 더 클 것이다. 기업들이 산불이 난 후 나무를 심겠다고 하지만 근본적 해결책을 먼저 내놓지 않으면 힘들다. 한국은 기후 후진국이라 할 수 있다. 많이 높아졌다지만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7년째 OECD 꼴찌에 머물고 있다.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3위다.”
-기업이 탄소중립에 나서야 하는 이유는.
“몇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는 탄소국경세다. 탄소 감축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로 전체 수익의 5% 정도를 내야 한다. 삼성전자의 경쟁자인 대만의 TSMC는 1년 매출이 75조원이다. 75조원의 5%라면 3조5000억원 넘게 탄소세로 나가게 된다. 삼성전자가 만약 지난해 매출 280조원의 5%를 낸다면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것도 우리 정부에 내는 돈이 아니다. TSMC는 매년 매출의 2%를 기후위기 대응에 써 탄소세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쉽지 않겠지만 삼성전자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또 하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상장사에 공급망까지 포함해 온실가스 배출량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에 실패한 기업들의 주식이 폭락할 가능성을 대비해 미리 리스크를 점검하자는 취지다. 애플 1차 협력사만 국내에 200여개, 2~3차 협력사를 포함하면 8000개가 넘는다. 이렇게 연결된 회사의 탄소배출 정보까지 다 공개하라는 거다. 감축 계획 수립과 탄소 배출의 체계적 관리가 중요해졌다. 국제회계기준(IFRS)도 재무정보 외에 비재무정보의 하나로 탄소배출량 검증 내용을 포함하도록 새롭게 정비했다. 1년 이내에 의무화가 될 예정이라 이것도 준비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사업에 주민이 참여할 때의 이점은.
“태양광은 기술이 발전하고 대규모로 공급되면서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풍력도 10년 전엔 발전기당 4~5MW가 최대였다면, 지금은 15~20MW까지 커졌다. 필요한 설치면적은 유사한데, 발전량은 4배 정도 커졌다. 재생에너지의 경제성도 지난 10년간 약 85% 저렴해졌다. 남은 문제는 지역 수용성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구나 소액으로도 재생에너지에 투자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최근엔 주민들은 자기 자금 투자 없이 100% 대출로 참여하여 단순 현금보상 형태의 주민참여 사업이 많아지고 있다. 지역에서는 재생에너지가 단순히 돈으로만 각인된다. 내 돈으로 직접 물건을 구매하면 더 꼼꼼하게 비교해보듯 자기 돈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재생에너지에 관심이 생기지 않고, 지속가능하게 지역수용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과거 재생에너지 사업에 지역 주민의 참여 기회가 없고, 정보도 불균형하고, 이익도 공정하게 배분되지 않았다면 지금은 10건 중 8~9건이 주민참여 사업으로 진행된다. 가평의 자전거 도로에 태양광 지붕을 씌우는 사업은 수익률 11%를 목표로 10억원을 모집하는데 2시간 만에 끝났다. 공공기관의 유휴부지에 태양광을 시민참여로 설치한 사례도 늘고 있다.”
-에너지 시민 육성을 강조했다.
“독일은 8000만 인구 중 800만명이 재생에너지 사업에 자기 돈을 직접 투자해 수익을 얻고 있다. 내 돈을 직접 투자하며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에너지는 우리가 만들어서 우리가 쓴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하게 된다. 우리도 독일처럼 재생에너지가 단순 돈덩어리가 아니라,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을 함께 만들어 가는 에너지 시민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재생에너지 수용성을 높이고, 빠르게 에너지 전환을 할 수 있다. 나무가 건강히 자라려면 실뿌리부터 영양분을 잘 빨아들여야 하듯, 우리 에너지 생태계의 가장 작은 실뿌리인 지역 주민들을 키워내야 한다. 이들이 주권을 갖고 에너지 시민이 돼야 나무가 굵어지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처음엔 힘들지만 한 지역에서 2개 사업 정도를 성공시키니깐 지역 주민들의 님비(Not In My Backyard) 현상이 (내 지역에 설치해달라는) 핌피(Please In My Front Yard) 현상으로 바뀌는 걸 봤다. 오랜 기간 지역과 밀착해 재생에너지 직접 투자기회를 드리고, 정기적으로 주민들의 통장에 돈이 들어가면 그만큼 지역에서 신뢰가 생긴다. 그 결과 안 쓰던 땅에 새로운 재생에너지가 들어서고, 공동체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