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2022.06.27

미스터리소설과 ‘독서 행위’

사실 미스터리소설은 완벽한 살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완전범죄란 불가능함을 다시금 각인시키는 이야기에 가깝다. 미스터리 비평 선집인 <죽이는 책>이 “인간 최악의 본성이 아무런 저항 없이 승리를 거두는 것을 수수방관하지 않은 선한 남녀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며 추리소설의 본질을 적시한 그대로다. 미스터리소설이 마치 범죄를 옹호한다거나 부추긴다는 식의 비난은 순전히 잘 모르는 외부인의 겉핥기에서 기인한다. 소설 속의 온갖 기상천외한 범죄는 현실을 정확히 모사한다. 처음부터 극단에 치우친 인간의 파멸을 가정하고 있다. 그러니 이 모든 혼돈을 이성으로 정돈해내는 미스터리소설의 서사는 독자에겐 극진한 오락인 동시에 스스로의 내면을 응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즉 ‘독서’ 행위의 가장 기본과 정확히 맞닿는 셈이다.

피터 스완슨의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표지 / 푸른숲

피터 스완슨의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표지 / 푸른숲

<죽여 마땅한 사람들>로 잘 알려진 피터 스완슨의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은 서구권 명작 추리소설과 이를 향유하는 팬덤을 그대로 배경 삼은 작품이다. 불가능해보이는 가공의 범죄를 실현하는 미지의 범죄자를 다룬다. 보스턴에서 추리소설 전문 서점을 운영 중인 맬컴 커쇼에게 FBI 요원이 찾아와 최근 벌어진 미결 살인 사건이 그와 연관돼 있다고 말한다. 10년 전 그가 서점 블로그에 올린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리스트에 꼽은 여덟 작품이 살인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 FBI 요원은 최근 희생된 피살자들에게서 그 리스트에 실린 작품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과 같은 공통점을 찾았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공통점은 고작 이름이다. 즉 살인범이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크리스티의 작품에서처럼 연고도 없는 2명을 더 죽여 마치 이름에 집착하는 사이코패스의 무차별 살인인 양 수사를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후 맬컴은 FBI의 자문 역을 맡는다. 각 미결 사건을 작품과 대조한다. 그러면서 과거 그 작품을 숙독하던 때를 떠올린다. 마약에 취해 운전하다 사망한 아내와의 고통스러운 기억, 중독자였던 아내에게 마약을 공급한 인간을 향한 증오가 다시금 그를 옭아맨다. 이윽고 소설 속 등장인물이었던 맬컴이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기 시작한다. 맬컴 스스로 과거 그가 직접 블로그의 리스트에 언급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작품 <열차 안의 낯선 자들>처럼 ‘교환 살인’의 당사자라는 사실을 실토한다. 아무 관계 없는 두 사람이 상대방이 지정한 사람을 죽임으로써 수사망을 피해왔다고 밝힌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추가 살인을 막아야 한다. 처음부터 많은 살인은 맬컴의 비밀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서서히 그의 목을 죄어오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맬컴은 또 한명의 살인범보다 한발 더 앞서가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고 단서를 찾아내 그 의도에 먼저 다가가야만 한다.

이 작품은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교본 삼아 구조와 주제를 그대로 따른다. 교환 살인을 저지른 맬컴의 불안과 죄책감을 부채질한다. 이와 동시에 가공의 살인을 실연하는 살인범의 기괴한 심리에 주목한다. 차츰 이 둘을 하나로 수렴한다. 여러 명작과 마주하는 즐거움이 작품 곳곳에 포진해 있다. 독서가들의 여러 행태를 그대로 미스터리로 구현한 이중삼중의 장치가 독서의 지극한 재미와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경배를 한데 아우른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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