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세르크」 재연재를 기대하며

황순욱 초영세 만화플랫폼 운영자
2022.06.20

지난해 이맘때 작가 미우라 켄타로의 부고가 올라왔다. 많은 팬이 절망했던 기억이 있다. 이것이 <베르세르크>라는 대서사의 미완성 종결이라고 생각했기에 아쉬움은 더 컸다. 며칠 전 작품을 연재하던 ‘영 애니멀’ 편집부에서 공식적으로 <베르세르크>의 연재 재개 소식을 알려왔다. 미우라 켄타로가 만들려 했던 것을 완벽히 그려내기는 불가능하겠지만, 그가 가장 친한 동료 모리 코우지 작가에게 남긴 결말까지의 이야기와 편집부에 전했던 여러 조각을 모으고, 그의 어시스턴트들이 모인 스튜디오 가가의 손길로 작품을 다시 이어가겠다는 소식이었다.

미우라 켄타로의 <베르세르크 1> 한국어판 표지 / 대원씨아이

미우라 켄타로의 <베르세르크 1> 한국어판 표지 / 대원씨아이

이전에도 작가의 사망 이후 계속 이어지는 만화가 있었다. 한국에서 <짱구는 못말려>라는 제목으로 더 유명한 애니메이션 <크레용 신짱>은 작가 우스이 요시토가 등산을 갔다가 갑작스레 사고를 당했는데, 그의 제자와 자녀들이 연재를 이어오고 있다. 캐릭터가 유명한 <도라에몽>은 1996년 작가의 사망 이후에도 후지코 프로덕션과 소속 작화가들이 이어서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 오고 있다. 나아가 작가가 현역에 있지만 참여하지 않고 이어지는 만화도 많다. <드래곤볼> 시리즈가 그러하고, <명탐정 코난>의 외전들도 그렇다. 콘텐츠의 영향력이 원작자의 물리적 한계를 훌쩍 넘어 버릴 때 벌어지는 일들이다. 만화 작품이 이미 창작자만의 것이 아닌 시대다.

만화뿐 아니라 많은 예술이 대중문화가 되고 산업이 돼버린 지금은 이런 식의 전개가 그리 낯설지 않다. 수백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가고 수천명의 스태프를 동원하는 영화산업에서 영화가 단순히 감독의 예술이 아닌 것처럼, 전 세계의 흩어진 세션들이 온라인으로 교류하고 분업해 완성하는 팝 음악이 그런 것처럼, 아니 150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지어지고 있는 가우디의 건축이 그런 것처럼 예술작품이 예술가 한명의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건 이제 당연한 사실이 됐다.

그런데도 우리는 예술에 초월적인 것을 기대하며 열광하고 싶어한다. 예술작품에는 침해받지 않은 예술가만의 무엇인가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를 기대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주문자들은 화가 이외의 다른 조수가 붓질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을 넣어 계약하기도 했다. 얼마 전 국내에서도 한 유명인의 작품이 대작 논란으로 재판까지 받았다. 오래됐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다.

미우라 켄타로의 <베르세르크>는 체계화돼 있는 일본 출판만화 시장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로 작품을 발표하는 흔치 않은 사례였다. 거기에 작가의 완벽주의와 영혼을 소모하는 고독한 작업방식은 이를 숭고한 예술로 느끼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부고는 그것을 신화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베르세르크>의 ‘갑작스러운’ 재연재 소식을 환영한다. 예상하건대 연재를 시작한 후 이것이 과연 미우라 켄타로의 <베르세르크>가 맞냐, 아니냐 하는 논쟁이 이어질 것이다. 예술을 놓고 흥미로운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황순욱 초영세 만화플랫폼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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