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석세포, 미세플라스틱 대체할 소재”
생선을 먹기 조심스러운 시대가 됐다. 미세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가 먹이사슬을 타고 우리 몸까지 들어오기 때문이다. 미세플라스틱은 크기가 5㎜ 미만인 플라스틱을 말한다. 체내에 들어온 나노 단위의 미세플라스틱은 세포벽을 넘나들면서 장기에 축적돼 오랜 기간 영향을 준다. 미세플라스틱 안의 환경호르몬이 빠져나와 유방암과 전립선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풍화작용으로 잘게 쪼개진 미세플라스틱은 원래의 플라스틱보다 중금속 흡착이 잘된다는 문제점도 있다.
세계자연기금이 2019년 6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는 이런 미세플라스틱을 일주일에 신용카드 한개 분량인 5g 정도를 먹는다. 한국인은 특히 많아 8g 정도라고 한다. 영국 맨체스터대학 연구팀이 2018년 발표한 논문을 보면 인천 해안과 낙동강 하구의 미세플라스틱 농도는 영국 머지강에 이어 세계 2·3위로 꼽힐 정도로 높다. 미세플라스틱은 생산 단계에서 의도적으로 작게 만든 1차 미세플라스틱과 플라스틱 제품이 풍화·마모되면서 생긴 2차 미세플라스틱으로 나뉜다. 풍화작용으로 생기는 미세플라스틱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1차 미세플라스틱은 최대한 사용하지 않아야 문제를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다.
루츠랩은 미세플라스틱 문제의 해법을 무해한 천연물 대체제에서 찾으려는 스타트업이다. 특히 연마 작용이 있는 배의 석(石)세포에 주목한다. 석세포를 양산할 수 있다면 치약과 세안제 등에 쓰는 미세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다. 김명원 루츠랩 대표는 지난 5월 1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열린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비즈니스 액티비스트’ 강연에서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생산할 수 있는 천연 대체제 개발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석세포를 비롯해 전복 껍데기, 닭털 등 버려지는 폐기물을 업사이클링하면서 줄인 탄소를 배출권으로 수익화하는 사업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강연과 전화 인터뷰를 종합해 질의응답 형식으로 재정리했다.
-창업의 계기가 궁금하다.
“스무 살이 된 해부터 선후배와 함께 창업하면서 사업에 관심을 가졌다. 처음엔 비닐하우스 제설 로봇에서 시작했는데 인공지능을 활용해 작물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스마트팜 사업으로 발전했다. 스마트팜은 전기세가 원가의 30%를 차지할 정도라 잉여전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한전이 있는 전남 나주로 갔다. 그때 배 연구소에 우연히 갔다가 석세포를 만났다. 석세포를 연마제로 활용하는 기술을 농촌진흥청이 개발했는데 2020년 이를 이전받아 양산에 성공하면서 사업화에 나섰다. 지금은 화장품과 식품, 반도체 소재 생산에 쓸 용도로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배의 석세포에 주목한 이유는.
“미세플라스틱 대체제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의 유해성이 알려지면서 2014년 미국 일리노이주가 처음 개인 위생용품에 미세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했다. 국내에선 2017년부터 화장품 내 사용을 금지했고, 지난해부터 생활화학제품 전반에 사용을 금지해 올해부터 시행됐다. 결국 미세플라스틱의 빈자리를 다양한 대체물이 메꿔야 한다. 여러 생분해 플라스틱이 개발됐지만 생산과정에서 대부분 수산화나트륨, 염산, 메틸알코올 등 유해 화학물질을 많이 쓴다. 파라핀 오일이나 해바라기씨유처럼 사람이 쓰기도 부족한 물질을 많이 활용한다. 환경을 파괴하는 제품의 대체제를 만든다면서 환경을 파괴하는 소재를 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연물 대체제로 석세포에 주력하고 있다.”
-석세포의 장점은.
“배의 석세포는 정약용의 <이담속찬>에 ‘배 먹고 이 닦기’라는 속담이 실릴 정도로 치석 제거에 좋다고 알려졌다. 사실 국내 배는 가장 특별한 품종이라고 할 수 있다. 해외 배는 국내 배처럼 과즙이 많거나 당도도 높지 않다. 특히 오돌토돌하게 씹히는 부위인 석세포는 해외에선 좋아하지 않아 이걸 없애는 방향으로 전부 품종을 개량했다. 그래서 사실상 해외 배에선 거의 발견되지 않고 국내 배와 중국 배 일부 품종에만 남아 있다. 중국 배는 석세포 함량이 1% 미만으로 낮고, 리그닌과 펜토산 성분도 부족해 연마 소재로 쓰기엔 완성도가 떨어진다. 한국 배처럼 나무줄기를 잡아주는 구성 성분인 리그닌이 적절히 있어야 강성이 나온다. 소재로서의 석세포 강점은 미세플라스틱보다 연마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배는 특히 알레르기 유발이 없는 과일이다. 석세포의 친환경적인 추출도 가능하다. 다만 처음 기술을 이전받은 업체가 실패할 정도로 양산이 어려웠는데 우린 효소와 미생물, 주정 알코올 기반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배는 관리가 어렵다. 특히 4~5월 냉해를 입으면 낙과와 유과가 많이 발생한다. 이렇게 버려지는 상품성 없는 배 폐기물을 수거해 새 소재로 만든다. 배 음료를 만들 때 나오는 부산물도 활용한다. 지역 농가와도 상생할 수 있다. 올해 970t 정도의 낙과·유과를 수거하면서 지역 농가에 2억이 조금 넘는 돈을 지급했다.”
-석세포의 활용처는.
“우선 화장품 업계의 연마 소재로 납품해 올해 연말쯤 선보일 예정이다. 여성용 파운데이션 등 색조 화장품의 기초 구성 성분은 활석가루(탈크)다. 유해하지 않은 정도로만 쓰지만 기본적으로 유해성이 있기 때문에 탈크를 대체하는 용도로도 주목받고 있다. 치약도 개발하고 있다. 식약처에서 의약외품 등록에 필요한 인체 적합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사실 석세포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기엔 부족한 양이다. 올해 생산량을 예측하면 약 300t 정도인데 300t을 생산하려면 1000t 정도의 폐기물이 필요하다. 충남 아산에 1600평 정도 규모로 공장을 증설할 예정이다. 6월 중순 마무리하는 대로 본격 생산에 들어간다. 생산 가능한 수량만큼 전부 납품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개발 중인 다른 대체소재는.
“게 등 갑각류 껍데기를 활용한 키토비즈가 있다. 매년 수천t의 게, 새우 껍데기가 버려지는데 이를 업사이클링한다. 키토비즈는 생체 적합성이 뛰어나 알레르기 반응이 적다. 다만 단순히 분쇄하면 날카롭기 때문에 화장품 등에 쓸 수 없다. 분쇄하지 않고 추출하는 방식으로 핵심 재료인 키토산을 얻어야 한다. 유해 물질 없이 양산하는 방안을 연구개발 중이다. 하림과 함께 닭 깃털에서 추출한 케라틴을 활용해 플라스틱 필름의 대체제를 개발하는 연구도 벌이고 있다. 케라틴은 머리털, 손톱 등의 상피구조를 형성하는 단백질이다. 새 깃털의 90%가 케라틴으로 구성된다. 이걸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만들 수 있다.”
-향후 개발 계획은.
“반도체 소재 회사와 함께 디스플레이 반도체 생산과정에서 회로에 패턴을 넣는 식각공정에 사용하는 화학물질을 석세포로 대체하는 시험을 하고 있다. 폐기물 업사이클링으로 줄인 탄소를 배출권으로 판매하는 사업도 계획 중이다. 탄소배출권 시장은 이미 해외에선 320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내년쯤 되면 국내에서도 선물거래소가 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때 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정유회사 등에 탄소배출권을 판매할 계획이다. 상당한 매출을 거둘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