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독소전쟁의 기억이 현재를 지배한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2022.06.13

<인간의 운명> vs <컴 앤 씨>

“거의 60년 동안 전 세계에 참사가 더 쌓인 뒤에도 여전히 소련인이 겪었던 고통을 그저 듣기만 해도 상상력이 마비돼 보잘것없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권위자로 꼽히는 리처드 오버리 교수의 대표작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의 한 구절이다. 우리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직접 피해를 겪었던 태평양전쟁, 그리고 대중문화로 쉽게 접하는 영·미와 독일 나치 간 서부전선이 전부다. 독소전쟁 무대인 동부전선은 전쟁사에 관심 많은 이들이 아니라면 생소하다. 독소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결정적 찰나’라는 데 역사가들은 이견이 없다. 1941년 나치독일이 시작한 전쟁은 4년 후 소련군의 베를린 함락으로 종결된다. 독일군 피해의 8할이 동부전선에서 발생했다. 소련의 피해는 독일을 초월했다. 무려 2000만~2900만명의 희생자를 냈다(당시 조선 인구가 2500만이다).

<컴 앤 씨> 스틸 / DAUM 영화

<컴 앤 씨> 스틸 / DAUM 영화

독소전쟁은 그 어떤 전쟁과도 비교를 불허하는 규모다. 우리가 아는 제2차 세계대전은 덩케르크 철수, 사막의 여우 롬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이미지다. 하지만 롬멜과 몽고메리의 사막 혈투는 몇개 사단, 아무리 잡아도 1개 ‘야전군’ 규모에 불과했다. 노르망디는 ‘지상 최대의 작전’이지만 독소전쟁에선 그에 필적하는 전투가 흔했다. 소련군은 (한국군 현역 다 합쳐 1개 나올까 말까 한) ‘집단군’을 10개나 꾸렸을 정도였다. 독일은 소련 침공을 위한 ‘바르바로사 작전’에 300만명을 투입했고, 전쟁의 향방을 결정한 쿠르스크 전투에는 독일군 90만명, 소련군 130만명이 뒤엉켰다.

이런 거대한 규모의 전쟁은 당시 세계 2위(소련) vs 3위(독일) 경제군사대국의 ‘총력전’ 양상으로 전개됐다. 전 국민이 전후방 구분 없이 동원됐다. 정치적 대가를 위한 통상적인 전쟁이 아니라 이긴 쪽이 진 쪽을 노예로 부리고 학살하는 ‘절멸전’ 형태였다. 그 결과는 ‘현세에 강림한 지옥’이었다. 나치의 전쟁범죄는 인종정책에 의해 국가 차원에서 이뤄졌다. 오직 학살을 위한 부대가 별도로 존재했다. 그 결과 특정지역에선 인간의 뼈로만 이뤄진 지층(!)이 발견될 정도의 참상이 벌어졌다. 전황이 바뀌자 소련군이 피의 보복을 시작했다.

러시아는 히틀러를 패배시킨 공로의 우선은 자신들의 희생에 있다고 믿는다(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서방은 ‘언싱커블 작전’으로 제2차 세계대전 말 소련의 뒤통수를 칠 계획을 논의했다. 이후 냉전 시기엔 소련의 공헌을 축소했다. 서방에 대한 러시아의 뿌리 깊은 불신은 나름의 근거가 있는 셈이다.

<인간의 운명> 포스터 / IMDB

<인간의 운명> 포스터 / IMDB

독소전쟁에 대한 공식평가 <인간의 운명>

소련과 그 계승국가 러시아는 독소전쟁을 ‘대조국전쟁’이라 부른다. 조국을 정복하려던 ‘파시스트’를 압도적 열세를 딛고 승리한 역사는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동시에 외세에 맞선 단결을 촉구한다. 집마다 전쟁에서 가족을 잃지 않은 이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소련을 대표하는 문호 미하일 숄로호프가 1957년 발표한 단편 ‘인간의 운명’은 당대 러시아인들의 인식을 대변한, 심금을 울리는 명작이다. 1959년 소련의 명감독 세르게이 본다르추크가 동명의 영화로 완성했다. 주인공 안드레이 소콜로프는 혁명 당시 적군에 참여했다가 백군에 의해 가족을 모두 잃는다. 하지만 역시 고아가 된 이리나와 사랑에 빠져 가족을 꾸리고 행복한 삶을 꿈꾼다.

전쟁이 터진다. 징집된 소콜로프는 포로가 된다. 수용소 정책을 비판하다 처형될 위기에 처하지만, 그의 용기에 탄복한 수용소장에 의해 생명을 건진다(이때 목숨을 건 술내기 부분이 명장면이다). 구사일생으로 탈출해 군에 복귀한 그는 고향에 가보지만 가족은 이미 폭격으로 몰살당한 뒤였다. 망연자실한 주인공은 살아남은 아들의 편지를 받고 기력을 회복한다. 아들은 장교로 임관해 훈장을 6개나 탈 만큼 출세했다. 소콜로프는 희망을 찾는다. 하지만 아들은 전쟁 막바지에 전사하고 만다.

절망한 소콜로프는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내던 중 고아 소년 바냐쉬카를 만난다. 그는 고심 끝에 실은 자신이 소년의 아버지라고 거짓말을 한다. 아빠를 만난 기쁨에 소년은 펄쩍 뛰며 좋아한다. 길손에게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부자는 길을 떠난다. 원작자의 변이 뒤를 잇는다. “단단한 의지를 가진 저 러시아 남자가 잘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 꼬마가 아버지 곁에서 잘 자라 무엇이든 견딜 수 있는 남자가 되길 기원합니다. 조국이 필요로 할 때를 대비해서 말입니다.” 현대 러시아인들의 기억 속 대조국전쟁은 이런 역사다.

<인간의 운명>은 (특히나 러시아인들에겐) 정말 심금을 울리는 명작이다. 소련 입장에서 서술됐지만 낯부끄러울 정도로 미화된 요즘 ‘국뽕’ 영화와는 비교 불허다. 애초에 전쟁이란 자체가 비극이다. 그런 시각에서 나치의 만행으로 황폐화되는 인간 내면을 묘사한 걸작이 엘렘 클리모프 감독의 1985년 영화 <컴 앤 씨>(검열 때문에 공개까지 8년이나 걸렸다). 영화는 독일 점령 하의 벨라루스를 배경으로 나치의 학살을 가공할 수준으로 재현해냈다.

<컴 앤 씨> 포스터 / DAUM 영화

<컴 앤 씨> 포스터 / DAUM 영화

전쟁의 진정한 이면 <컴 앤 씨>

소년 플로랴가 빨치산에 참여한다. 지휘관은 아직 어린 소년인 플로랴를 후방에 남기고 떠난다. 플로랴는 글로샤란 또래 소녀와 친해진다. 플로랴는 고향에 들르지만 이미 가족은 학살당했다. 소년은 복수를 위해 다시 빨치산에 합류한다. 작전 중 공격을 받아 인근 마을에 몸을 숨긴다. 나치 학살부대가 이 마을에 도착한다. 대학살이 펼쳐진다. 플로랴는 겨우 목숨을 건지지만 나이에 어울리던 얼굴은 어느새 노인처럼 주름져 있다.

감독은 이후 일절 다른 영화작업을 중단했다. 플로랴 역의 알렉세이 크레프첸코는 후유증에 고생했다고 한다. 영상으로 온전히 독소전쟁 당시의 학살 참극을 재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컴 앤 씨>는 그 불가능한 미션에 근접한 걸작이다. 나치 점령지 전역에서 자행된 학살의 결과, 인구 1000만인 벨라루스에서 200만 이상이 희생됐다. 특히 100만에 달했던 유대인 생존자는 1% 이하였다. 벨라루스의 고유한 사회와 문화는 붕괴됐다. 오죽하면 해당 지역에 서식하던 늑대가 견디다 못해 서유럽과 중앙아시아로 엑소더스를 감행했을까.

우크라이나는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훨씬 큰 규모 덕분에 정체성 상실은 면했다. 오히려 ‘홀로도모르’ 대기근과 연이은 재앙으로 소련에 대한 반감이 심화됐다. 그 결과 <컴 앤 씨>에서 나치의 학살을 돕던 극우 부역자들이 대거 창궐하기도 했다. 현재 러시아가 침략 명분으로 내세우는 ‘네오 나치’의 기원이 그들이다(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지도자 ‘스테판 반데라’는 현대 우크라이나에서 영웅 소릴 듣지만 국외에선 논란 대상이다). 우크라이나의 20세기 전반기 경험은 러시아에 대한 불신과 함께 민족·지역별로 극복하기 어려운 갈등을 쌓았다.

독소전쟁의 역사적 파급력은 여전히 초월적이다. 왜 러시아가 5월 9일 (대조국전쟁) ‘승리의 날’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가 강화되는 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해 (수용할 필요는 없지만) 주장하는 이유는 제대로 인지해야 문제의 해법도 찾아낼 수 있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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