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스타트업 식스티헤르츠 김종규 대표
반도체 세계에 무어의 법칙이 있다.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2년마다 두 배씩 늘어나는 법칙이다. 태양광발전에도 비슷한 법칙이 있다. 스완슨의 법칙으로 태양광 설치량이 2배 증가할수록 20%씩 태양광 모듈 가격이 내려간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지금껏 깨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덕분에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태양광발전은 육상 풍력과 함께 가장 값싼 에너지원으로 변했다. 재생에너지발전은 탄소 배출도 없고, 연료비도 들지 않는다. 원전처럼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나 사고 위험성을 안고 있지도 않다. 이보다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원이 없는데 경제적으로도 이익이 되는 단계에 왔다.
한국에선 에너지 정책이 정쟁화되면서 부침이 예상되지만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대세다. 다만 계절과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변동하는 재생에너지가 늘면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수많은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연결하고, 에너지저장장치 등과 연계해 에너지 공급과 수요를 예측하고 최적화하는 에너지 IT 기술이 중요한 시대가 왔다. ‘식스티헤르츠’는 이런 기회를 보고 창업한 에너지 스타트업이다. 지난 5월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열린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비즈니스 액티비스트’ 강연에서 김종규 식스티헤르츠 대표는 “과거엔 환경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쓰자고 했다면 이제는 경제적으로도 재생에너지를 설치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시대로 가고 있다”면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강연을 질의응답 형태로 재구성했다.
-태양광의 ‘그리드 패리티’ 달성 의미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이 화석연료 발전 비용보다 싸지거나 비슷해지는 시점을 그리드 패리티라고 한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태양광의 균등화 발전비용(LCOE·발전설비 수명주기 중 발생한 총비용을 수명 기간 동안 생산한 총 전력량으로 나눈 수치)은 kWh당 0.07달러로 화석연료(0.05~0.18달러)와 낮거나 비슷해졌다. 2019년 데이터라 지금은 더 낮아졌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태양광발전이 그리드 패리티를 달성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유가가 많이 올랐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쉽게 넘겨볼 수 없는 ‘뉴노멀’의 초입이라고 생각한다. 재생에너지 설치가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시대가 됐다. 한국은 2019년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로, 2040년 35%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40년 전 세계 발전 비중의 46%는 재생에너지이다. 한국도 국제적 흐름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대선에서 RE100이 화제가 됐다.
“기업 활동에서 쓰는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한다는 ‘RE100’ 캠페인에 동참하는 글로벌 기업 수가 5월 현재 371개에 달한다. 참여 여부가 소비자 선택에서 굉장히 유의미한 요소가 됐지만 더 큰 의미가 있다. IBM, 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자사에 납품하려면 재생에너지를 써야 한다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BMW라면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차 배터리를 요구하는 식이다. 삼성, LG, 현대차는 모두 수출 기업이라 이런 큰 구매자들의 요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매년 서한을 보내 탄소중립을 강조할 정도로 재생에너지 전환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명분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그렇다.”
-새 정부는 원전을 ‘그린투자목록(K택소노미)’에 넣기로 했다.
“원자력을 당장 다 꺼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20년 뒤를 봤을 때도 원전이 맞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유럽에서 원전을 ‘택소노미’에 넣었다고 하지만 확정된 건 아니다. 독일을 비롯해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유럽연합 기부금을 많이 내는 나라들이 반대하고 있다. 독일에선 원전 재가동이 진보·보수를 떠나 정치적 금기어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국민의 세금으로 낸 돈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체코와 폴란드가 원전을 짓는다면 독일 국민의 입장에선 말이 될까. 자국 내에 짓는 것과 임팩트는 비슷하면서도 자기네 관리 밖에 있으니 더 불안해할 것이다. 결국 유럽연합의 펀딩 구조를 볼 때 원전은 불가능하다. 전향적으로 원전을 확대한다기보다 사실상 하기 힘든 조건(사고 저항성 연료 확보와 폐기물 영구 처분)을 붙였다. 한국은 폐기물 영구 처분이나 사고 저항성 연료 등을 어떻게 할지 결정된 발전소가 하나도 없다. 유럽 기준에서 보면 한국 원전은 ‘그린’이 아니다.”
-가상발전소와 발전량 예측이 중요한 이유는.
“전력망은 수요·공급이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태양광과 풍력은 발전량이 날씨와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바람이 잘 불고, 태양이 쨍쨍할 경우 제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40%까지 올라간다. 선진국 사례를 미리 경험하는 것이다. 이때 전력망 안정을 위해 재생에너지 출력을 제한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소규모 분산전원이 많아 많은 수의 발전소를 관리할 기술과 서비스가 필요하다. 결국 복잡해지는 전력망 안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상발전소가 등장한다. 우버가 자동차 없이 운송업을 하듯 우리도 발전소를 소유하지 않고 발전업을 하는 셈이다. 건설하면 연료비도 제로(0)이고, 온실가스 배출도 제로인데 출력제한을 한다면 화력발전소를 꺼야지 왜 재생에너지 발전을 끄는가에 주목했다. 독일에선 같은 상황에서 재생에너지를 가장 마지막에 끈다. 발전량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고 에너지저장장치 등과 연계한다면 재생에너지 발전을 끄지 않아도 된다.”
-재생에너지 선택권을 강조했다.
“한국의 에너지 전환의 키워드는 재생에너지 선택권의 문제와 에너지 신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에너지전환 비용을 부담할 의향이 있는 국민이 상당하지만 한국에선 재생에너지만 골라 쓸 수 없다. 독일에선 태양광과 풍력, 화력 등 내가 어떤 에너지를 어떤 비율로 쓸지 선택할 수 있다. 유기농 농산물 구매를 환경에 대한 실천으로 접근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에너지 분야만 유독 ‘유기농’과 ‘화학비료로 만든 농산물’을 정부가 섞어서 하나씩 같은 가격으로 파는 셈이다. 그러니 시장이 생길 수 없고, 가능하다는 생각조차 못 한다. 기업은 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를 구매하거나 재생에너지 발전소와 직접 전력구매 계약을 맺는 식으로 (정부가) 선택권을 보장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신사업을 전망한다면.
“중앙집중 단방향에서 분산, 친환경, 양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IT 회사, 통신사, 자동차 회사 등 다양한 섹터와 커플링(동조화) 현상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실제 일본에선 통신사가 에너지 사업도 하면서 결합요금제를 내놓는다. 일론 머스크도 전기차와 태양광 등을 활용한 테슬라의 에너지 사업이 자동차 사업만큼 커질 거라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