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도 재사용 가능합니다”
자동차 엔진에서 휘발유 1ℓ를 태우면, 2.3㎏의 이산화탄소가 나온다. 집어넣은 연료보다 더 무겁다. 탄소 옆 수소의 빈자리를 훨씬 무거운 산소가 차지하기 때문이다. 전기차를 재생에너지로만 굴릴 수 있다면 자동차를 굴리는 동안 나오는 온실가스를 0으로 만들 수 있다.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가 발전량의 62%를 차지하는 지금도 전기차로 바꿀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다.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아깝지 않지만 찜찜한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전기차를 조립하고, 배터리를 만들 때 내연차의 두 배 가까운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환경 부담이 적은 방법으로 전기차를 제조해야 한다. 배터리를 재사용·재활용하고, 폐기된 배터리에서 소재를 회수하는 리사이클이 중요해진 이유다. 유럽의회는 지난 4월 27일(현지시간) ‘지속가능한 배터리법’을 통과시켜 2030년부터 원료의 일정 부분을 재활용 소재로 쓰도록 했는데 우리도 이렇게 될 확률이 높다.
배터리 업사이클링 스타트업 포엔이 집중하는 분야는 수명 주기 앞단에 있는 배터리의 재사용·재활용이다. 고장나거나 수리가 필요한 배터리를 고치고, 전기차에 쓰기 어려운 배터리를 모아 다른 용도로 재활용한다. 최성진 포엔 대표는 지난 5월 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열린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비즈니스 액티비스트’ 강연에서 배터리를 활용한 새로운 사업모델로 ‘서비스로서의 배터리(BaaS)’를 강조했다. 구매가 아닌 구독 방식으로 초기 전기차 구매 비용을 낮추고, 유지보수와 사고 시 부담을 낮추자는 주장이다. 궁극적으로는 배터리가 아닌 그 안의 에너지를 사고파는 방향으로 비즈니스가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의 강연을 질의응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창업의 계기가 궁금하다.
“2019년 현대차의 사내벤처로 출발했다. 연구소에 가득 쌓인 전기차 배터리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다. 전기차 배터리가 그냥 폐기될 경우 각종 오염물질이 누출돼 환경 피해가 심각할 수 있다. 논문을 찾아보니 휴대전화의 리튬배터리 하나를 정화하는 데 6만ℓ의 물이 필요하다고 한다. 배터리를 과충전하거나 이물질이 포함된 배터리의 경우 화재의 위험도 있다. 배터리가 그냥 버려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사용후 배터리라는 말을 강조했다.
“제주에서 가장 먼저 전기차를 판매했고, 그만큼 폐차의 시기도 가장 먼저 도래했다. 2018년쯤이었는데 그때부터 폐차된 전기차의 배터리를 폐배터리가 아닌 사용후 배터리로 바꿔 불렀다. 재사용과 재활용 등으로 가치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사용·재활용한 배터리를 팔 순 없다. 규정상 배터리만 따로 소유권을 설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전 (문재인) 정부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규제자유특구를 만든 것이다. 경북의 차세대 배터리 규제자유특구에서 2019년부터 소유권 문제없이 사용후 배터리를 이용한 사업을 할 수 있었다.”
-포엔의 사업 내용이 궁금하다.
“사용후 배터리를 분해·평가해 재제조로 안전하게 다시 쓸 수 있게 도와준다. 사용후 배터리는 환경부 산하 기관에 속한 미래 폐자원거점수거센터에 모인다. 여기서 경매로 배터리팩당 230만~350만원에 사온다. 이 배터리를 가장 작은 셀 단위로 검사한다. 잔존가치를 평가해 첫 수명을 100으로 볼 때 75까지 남은 건 팩으로 재제조해 다시 차량에 넣는다. 65 이상 75 미만은 파워뱅크(전력공급장치)나 태양광 발전과 연계한 ESS(에너지저장장치) 등으로 재사용한다. 65보다 낮으면 리사이클 업체에 보낸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대개 10년, 20만㎞를 보증한다. 하지만 과실로 파손되면 따로 보험을 들지 않는 한 본인 부담이 크다. 실제 지난해 1월 한 여성 고객이 돌에 찍혀 배터리 케이스가 깨져 찾아왔는데 서비스센터에서 교체비용이 2000만원이 든다고 했다. 우리에게 가져오면 절반 가격에 케이스까지 다 갈아서 새 걸로 준다. 약간의 수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배터리를 검사해 문제가 된 셀을 정상품으로 교체하기도 하는데 배터리 제조사 대표를 지낸 한분이 ‘장기이식’이라고도 표현했다.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서비스로서의 배터리는 어떤 개념인가.
“전기차 배터리를 리스·렌털해 사용료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2021년 7월 정부가 K배터리 발전전략을 발표했는데 이때 배터리 구독 서비스 등 다양한 사업이 제안됐다. 올해 택시와 버스를 대상으로 전기차 배터리 대여 시범사업을 벌인다. 전기차로 넘어오면서 필요 없게 되는 주유소를 배터리 스와핑(교체) 스테이션으로 활용하는 사업도 구상 중이다. 택시·버스는 연간 주행거리가 7만㎞ 정도로 길어서 3년 안에 배터리를 교체해야 한다. 전기차를 사용하는 택시기사들은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과 배터리 성능이 버틸 수 있을까를 걱정한다. 배터리를 구독하면 이런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 결국에는 배터리를 사고파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길 에너지를 사고파는 사업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와핑 스테이션이 상용화된 곳이 있나.
“아직은 중국의 니오 파워가 유일하다. 미국도 앰플이란 회사가 준비하는데 실증단계다. 배터리는 교환형과 일체형이 있는데 교환형을 탈부착할 때 4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일체형도 구독 서비스할 수 있다. 앞으로는 전기차를 살 때 배터리 구독 혹은 구매 중에서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본다. 차량 가격에서 배터리 가격을 제외해 팔면 진입장벽을 크게 낮출 수 있다. 보조금이 감소하고, 결국 없어질 텐데 그때 전기차 가격 인하 효과를 가져오려면 배터리 리스·렌털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정부도 인지하고 있다. 이런 방식이 배터리 재활용을 위한 관리에도 용이하다. 앞으론 보조금도 전기차 구매 시가 아니라 배터리 이용에 따라 줘야 한다. 중국에서 BaaS가 정착한 건 이런 방식으로 보조금을 주기 때문이다. 전기차를 많이 운행하는 운송업자에게 보조금을 많이 줌으로써 결과적으로 탄소 저감에 기여하라는 취지다.”
-테슬라는 폐배터리를 어떻게 처리하나.
“테슬라는 기본적으로 수리 정책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파우치는 모듈을 하나씩 꺼내기 쉬운데 테슬라가 택한 원통형 배터리는 셀을 뜯어내기가 어려워 수리가 쉽지 않다. 테슬라는 배터리를 본사에서 모두 수거하는데 재사용·재활용보다는 리사이클 용도로 쓰는 것 같다.”
-배터리 교환형 차량이 나와야 구독 서비스가 성장할 수 있지 않나.
“차량 제조사들이 특수목적차량(PBV)을 교환형으로 만들면서 시장이 커질 것이다. 배터리 교환 서비스를 할 경우 차량 1대당 배터리 4개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교환형으로 가면 우리가 배터리를 많이 공급할 수 있어 유리하지만 아직은 사업의 확장성을 검증해야 해서 일체형 공급에 더 주력하고 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