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걷는 만큼 숲이 만들어집니다”
교통과 운송 분야에서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 510억t의 16%가 나온다. 제조(31%), 전기생산(27%), 사육·재배(19%)에 이어 4번째로 많다. 편하고, 빠르게 이동하려는 욕망이 우리의 미래를 망치는 셈이다. 그래서 스웨덴에서는 비행기 여행을 부끄러워한다는 뜻의 ‘플뤼그스캄(flygskam)’이라는 단어까지 나왔다. 개인이 탄소중립을 실천하고 싶다면 먼 거리는 가능한 기차로 이동하고, 가까운 거리는 걷는 게 좋다.
궁극의 친환경 이동수단인 걷기를 장려하는 방법은 없을까. 2020년 소셜테크 스타트업 글루리를 창업한 이성현 대표가 고민한 지점이다. 해법은 이동에 가치를 더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글루리가 최근 선보인 서비스의 기본 방향이다. 걷는 만큼 앱(포레스텝) 안에서 식물을 키우고, 일정 목표에 도달하면 실제 식물을 보상으로 준다. 장기적으로 걷기만이 아니라 여러 이동 수단에 따른 탄소저감량을 계산해 보상을 제공하고 숲을 조성할 계획이다. 지난 5월 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열린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비즈니스 액티비스트’ 강연에서 그가 청중과 주고받은 내용을 정리했다.
-창업의 계기가 궁금하다.
“현대차에서 ‘조용한 택시’를 개발한 게 인생을 바꾼 경험이 됐다. 2017년 사내 연구·개발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았는데 ‘청각장애인을 위한 차량 주행 지원시스템’을 청각장애인이 운행하는 택시에 적용한 기술이었다. 운전자가 알아야 할 청각 정보를 시각화해 전방 표시장치로 노출했다. 조용한 택시 개발로 기술이 사람과 사회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이런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창업했다.”
-걷기에 주목한 이유는?
“우연한 기회로 지난해 구청의 텃밭을 분양받아 농사를 지었다. 초보 농부라 엉성했지만 직접 기른 상추로 쌈을 싸먹으면서 예전에 없던 경험을 했다. 그러면서 기후에 관심을 갖게 됐다. 가뭄과 집중 호우로 날씨가 너무나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게 느껴졌다. 기술발전으로 농산물 생산량 자체는 우상향하는데 이상기후로 중간중간 수확량이 큰폭으로 떨어진다. 기후가 우리 생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탄소는 사람이 이동할 때 가장 많이 발생한다. 이동은 인간의 기본적인 갈망인데 그게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소가 되면서 이걸 해결하는 게 내 고민의 종착지였다. 탄소 감축이 좋은 건 알지만 실천이 어렵다는 점에서 이를 쉽게 만드는 게 필요했다. 핵심 메시지는 버리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쉽고 단순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성인의 하루평균 걸음은 6000보 정도다. 이걸 어떻게든 늘리고, 자원화해보자는 게 아이디어의 시작이었다.”
-‘포레스텝’ 앱을 소개한다면.
“4월 말 아이폰용으로 우선 내놓았다. 사람의 모든 이동에 가치를 더하자는 목적을 갖고 만들었다. 구현한 서비스는 이동방법에 따른 탄소저감량을 계산해 보상을 주고, 외부 자본과 연계해 숲을 조성하는 걸 기본 골자로 한다. 사용자는 앱을 켜서 본인이 받고 싶은 식물을 선택한다. 사용자가 받는 보상과 선물은 식물로 구성된다. 20일간 1만보 이상 걸은 날이 10일 이상이면 식물을 집으로 보내준다. 그렇게 모은 식물을 앱 안에서 숲처럼 만들 수 있고, 실제 식물로도 키울 수 있다. 비정부기구나 기업과 협업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 나무를 심는 사업으로도 확장할 생각이다. 우리의 목적은 결국 숲 조성이다. 국민 한 사람이 앱을 통해 15그루를 심는다면, 한국에서만 7억5000만그루를 심게 된다. 500만t의 탄소를 줄일 수 있다.”
-걷기로 줄인 온실가스를 협력 기업이 자사의 감축 실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나.
“최근 기업들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내세우면서 이런 방향으로 자사를 브랜딩하는 데 관심이 많다. 앱 안에서 기업이 절제된 광고로 브랜드 스토리를 전달하고, 우린 그들의 자본으로 사용자에게 더 가치 있는 보상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탄소 감축 실적을 인정받으려면 독립기관의 인증이 필요하다. 자발적 탄소거래 플랫폼(탄소 배출량을 줄인 기업이 자신의 감축 크레딧을 다른 회사에 판매하는 시장)이 생기면 탄소가 화폐단위로 거래되는 날이 올 거라 본다. 그에 맞춰 포레스텝이 탄소 감축 마일리지 형태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길 기대하고 있다.”
-걷기 데이터를 활용하는 다른 방안도 있나.
“지역 관광과 연계할 수 있다. 자동차로 여행하지만 적어도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최대한 걷도록 유도할 수 있다. 지역상권은 늘 가는 곳만 주목받는 문제가 있다. 우리가 앱에서 지역의 기업과 상점을 알리고, 방문을 유도하면 양방향의 사용자 모두에게 긍정적이라고 본다. 소멸되는 움직임을 가치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익을 낼 수 있다고 보나.
“나무 한그루 심는 데 1만원이라면 7억5000만그루 심는 데 부대비용을 합해 2조원이 든다. 지난해 기준 한국 광고 시장 규모가 13조원이고, 그중 디지털 광고 시장만 7조원이다. 그 비용을 매년 기업이 쓰는데 이 흐름을 약간만 바꾸면 자본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우리 사업은 돈을 크게 벌지 않아야 살 수 있다. 본인의 시간과 체력을 이용해 공동의 선을 만드는데 중간 매개체인 우리 회사가 중간에 수익을 가져가면 서비스는 지속가능해도 회사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비자들은 이제 기업이 윤리적인가, 내가 믿고 소비할 만한 주체인가를 많이 본다. 그런 고객의 시선에서 살아남으려면 돈을 크게 버는 것보다 규모를 착실히 키워갈 수준 정도의 비용만 받으면서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식물 외에 다른 보상도 계획하고 있나.
“확장을 어디까지 할 것이냐의 문제다. 저탄소 산업이 성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친환경·유기농 식품을 보상으로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걷기로 발생하는 사용자 간의 상호작용을 우리만 독점할 순 없다고 본다. 금전적 보상을 다른 걷기 앱에서 받을 수 있지만, 이들이 우리 앱을 중복해 이용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걸음의 총량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 금전적 보상을 굳이 한다면 탄소저감량을 크레딧화해 거래할 수 있게 만들 수 있겠다. 기업이 개인의 걸음(탄소 감축량)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거다. 개인으로선 걸으면서 줄인 탄소를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탄소 기본소득과 연결될 수 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