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전쟁의 ‘결정적 순간’ 재조명
세르히 로즈니차라는 감독이 있다. 1964년 벨라루스에서 태어나 우크라이나에서 자란 뒤,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한 1991년부터 영화를 만들었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가리지 않고 실험을 벌이는 다작 감독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동유럽 변화상과 그 배경에 깔린 근현대사를 집요하게 보여주는 면모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 적지 않은 작품이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을 해석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국내 영화제에선 자주 소개됐지만 아쉽게도 단 1편만 개봉 기회를 얻었다. 즉 나머지 40여편은 영화제가 열리는 단 며칠 동안만 볼 수 있는 셈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그의 작품세계는 큰 화젯거리가 됐다. 특히 소련 해체 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를 극적으로 바꿔버린 유로마이단(2014) 시위를 집중 조명한 다큐멘터리 <마이단>(2014)과 이후 러시아의 배후개입으로 발생한 돈바스 전쟁의 참상을 상징화해 표현한 극영화 <돈바스>(2018)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 감독의 최신작 2편이 얼마 전 끝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 기회를 얻었다. 영화상영 외에도 감독이 방한은 못 했지만, 이번 상영작과 전반적인 그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마스터클래스’ 행사를 영화제가 마련했다.
숨은 역사를 들추다
<바비 야르 협곡>(2021)은 1941년,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에 얽힌 숨은 역사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온전히 과거 기록영상 아카이브의 조각 장면(푸티지)들을 재구성해 만들었다. 작품은 1부와 2부로 나뉜다. 초반부, 초여름 우크라이나 흑토지대와 도시들을 무적의 독일 전차군단이 흙먼지를 날리며 진격한다. 독일군은 우크라이나의 서부 대도시 리비우를 점령하고 곧이어 우크라이나의 심장, 키이우에 이른다. 연전연패에 지친 포로들의 표정, 점령군을 바라보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얼굴에 두려움과 불안이 교차한다.
우리에겐 낯선, 적지 않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독일 군대를 해방군으로 환영하는 풍경은 기이하다. 주요 건물에 히틀러 초상화가 환호 속에 내걸리고, 독일에서 파견된 총독은 의기양양하게 등장해 주민들이 친선과 우호의 표시로 건네는 꽃과 빵을 받으며 흡족해한다. 소련의 중공업 육성을 위한 노동력과 식량 강제징발은 마침 1930년대 우크라이나를 휩쓴 대기근과 스탈린의 숙청에 맞물려 파멸적 결과를 낳았다. 그 때문에 스테판 반데라를 필두로 한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자들은 나치를 환영하며 독립을 꾀한다. 자발적으로 경찰과 민병대를 꾸려 독일에 협조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현 정부를 ‘네오나치’라고 헐뜯는 주요 근거다.
장밋빛 풍경 뒤로 추악한 본색을 곧 드러낸다. 소련군의 반격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독일 점령군은 키이우 주변의 바비 야르 협곡에 유대인 3만3711명을 모아놓고 학살한다. 리비우 등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지역민의 협조로 수백년간 이웃으로 같이 살던 수십만의 유대인들이 몰살당한다. 화면에는 학살된 이들의 흔적이 넘쳐난다. 우크라이나인들의 조력이 없었다면 전문 학살부대 ‘존더코만도’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긴 어려웠다.
불과 2년 만에 전세는 뒤집히고 소련군이 키이우를 탈환한다. 승리의 함성과 함께 소련군이 귀환하고 거리를 장식한 독일어 표지와 히틀러 사진이 산산이 박살난다. 그 자리에 스탈린 초상화가 복귀한다. 포로가 된 남루한 행색과 몰골의 독일 패잔병들 모습이 보이는가 싶더니 인과응보처럼 복수가 이어진다. 2부의 시작이다.
2부는 1946년에 있었던 키이우 지역 주민학살 사건의 전범 재판 과정을 풀어간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극소수 생존자와 목격자, 가해자들의 법정 진술이 연속된다. 야만적 학살이 어떻게 자행됐는지 생생한 증언이 있는 후 전범을 공개 처형한다. 원혼으로 가득 찬 협곡은 이후 매립돼 건물이 들어선다.
영웅적 주인공 등장
<바비 야르 협곡>이 감춰진 추악한 역사를 강제 소환하는 감독의 전매특허 스타일이 살아 있다면 <미스터 란즈베르기스>(2021)는 감독의 작업 중에서도 꽤 이질적인 형태의 작품이다. 대개 평범한 이들을 다양하게 등장시켜 하나의 집단으로 형상화하는 방법 대신 1명의 ‘영웅’을 등장시킨다. 바로 리투아니아 독립 후 초대 지도자로 활약한 ‘비타우타스 란즈베르기스’다. 음대 교수에서 리투아니아 독립을 꿈꾸던 정치단체 ‘소유디스’에 참여했다가 그만 격동의 역사 속에서 정치인이 되고 만 존재다. 이제 아흔이 다 된 그에게 감독이 질문을 던진다. 그의 답변과 아카이브 기록영상이 교차하면서 삶의 주요 전환점을 조명한다.
1988년부터 1991년까지 3년간 지속된 리투아니아 독립투쟁은 국내엔 생소하지만 동유럽의 해체를 앞당긴 대사건이었다. 1989년, 발트 3국은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시작해 라트비아 수도 리가를 거쳐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로 이어지는 600㎞를 200만명이 인간 띠를 이은 ‘발트의 길’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1990년 여세를 몰아 리투아니아 최고인민회의(국회에 해당)는 란즈베르기스를 의장으로 선출하고 독립을 선포했다. 대외적으로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표방하던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가 연방 사수에 사활을 걸고 본보기로 리투아니아 탄압을 자행했다.
주둔 소련군이 무력시위를 시작하고 친(親)소련 세력이 ‘구국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쿠데타를 획책한다. 과거 동유럽 국가들의 자유화를 무력 진압했던 것처럼 소련군 탱크가 의사당과 방송국에 쳐들어간다. 이를 막던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해 대량 인명피해가 발생한다. 격동의 시간에 조국의 명운을 책임져야 했던 전직 음대 교수의 회고는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 비화(秘話)로 이보다 더 드라마틱할 수가 없다. 시련 속에서도 시민과 공감하는 대의를 놓지 않으려 했던 란즈베르기스는 리투아니아인들의 독립혼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괴로움을 감내한다. 마침내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고 소련을 계승한 국가인 러시아연방의 옐친 대통령과 독립 협상을 벌여 성공한다.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1994년, 리투아니아도 당당한 회원국이 된다. 잊고 있던 역사적 순간이다.
감독이 영웅적 주인공을 등장시킨 건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에 맞서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 시민을 격려하기 위함이다. 란즈베르기스의 회고록 제목은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250만 인구의 리투아니아가 시민의 단결과 민주주의 원칙 준수로 1 대 100의 싸움에서 지혜롭게 승리한 과정을 담았다. 전쟁을 치르다 자칫 내분이 일어나 극단화로 이어질까 우려되는 우크라이나에 바치는 감독의 헌사이자 혜안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p.s. 감독은 전쟁 발발 후 논쟁의 중심에 섰다. 무조건적인 러시아 문화예술 보이콧에 반대해 우크라이나 영화아카데미를 탈퇴했다. 러시아의 침략을 ‘전쟁’이라 표명하길 주저한 유럽영화아카데미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공개 비판을 날리기도 했다. 얼핏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깊은 숙고가 돋보이는 감독의 입장은 전쟁의 파괴적 측면 전체를 반대하는 명백한 의지 그 자체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