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없는 비건 패션 실천하고 있다”
일회용처럼 옷을 소비하는 패스트 패션이 지구를 망치고 있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 매장에서 한 디자인이 머무는 시간은 평균 3~4주에 불과하다. 패스트 패션은 옷을 쉽게 사고 버리는 소비를 부추기면서 환경부담을 키웠다. 2019년 세계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패션 업계는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10%를 차지한다. 물 소비도 많아 청바지 한벌을 만드는 데 2650ℓ의 물을 쓴다. 사람이 10년 동안 마실 양이다. 패션 산업을 지속가능하게 바꾸는 건 인류의 생존을 위한 지상과제가 됐다.
천연 소재를 사용해 환경부담을 최대한 줄이면서, 털과 가죽을 얻기 위해 동물을 학대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패션 디자이너 이옥선 오픈플랜 대표가 지속가능한 패션의 키워드로 ‘플라스틱 없는 비건 패션’을 내세운 이유다. 만 4년째 윤리적 소비에 공감하는 소비자들과 함께 싸게 대량으로 만드는 의류 산업의 문법을 조금씩 허물고 있는 그를 만났다. 식품 포장지를 잘라 뒷면에 도장을 찍어 만든 작은 명함에 시선이 갔다. 지난 4월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열린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비즈니스 액티비스트’ 강연에서 그가 청중과 주고받은 내용을 정리했다.
-창업의 계기가 궁금하다.
“중국의 왕지우량 감독의 <플라스틱 차이나>(2016)라는 다큐멘터리가 시발점이었다. 중국 산둥성 지역의 폐비닐 재활용 공장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어른들은 희망 없이 살아가고 있고, 아이들은 플라스틱 산에서 놀고 먹고 자고 있었다. 내가 쓰레기를 잘 분리배출해 버린다고 해도 결국 저렇게 처리되는구나 알 수 있었다. 열심히 정성껏 멋지고 예쁘게 만든 옷들이 저기에 쌓여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들과 별반 다르지 않겠구나 생각하니 엄청 괴로웠다. 만드는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플라스틱 프리를 강조한 이유는.
“해양 플라스틱 오염의 85% 이상이 합성섬유에서 기인한다. 5㎜ 미만의 미세플라스틱은 합성섬유 옷을 입을 때의 마찰과 세탁 과정에서 발생한다. 5㎏ 정도를 세탁하면 미세플라스틱 600만개가 나온다. 결국 (먹이사슬을 거쳐) 우리가 먹는다. 2019년 기준 일주일에 신용카드 하나 분량이다. 합성섬유는 자연 생태계를 교란하는 독이 되는데 이걸 사용해 멋져 보이는 뭔가를 만드는 게 디자이너의 역할인가 돌아보게 된다. 이브 생로랑은 ‘패션은 사라진다. 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블랙 프라이데이 때 ‘패션 레볼루션’이라는 운동 단체는 ‘패션은 사라진다. 하지만 매립된 옷은 영원하다’라고 바꿔 불렀다. 영국 환경단체 ‘멸종저항운동’은 ‘죽은 행성에 패션은 필요없다’고 외쳤다. 나 역시 플라스틱 없는 비건 패션을 하자는 단순한 생각을 실천하고 있다.”
-오픈플랜의 실천을 소개한다면.
“초기엔 작은 것부터 바꾸려고 노력했다. 처음 바꾼 건 ‘태그고리’였다. 태그를 고정할 때 쓰는 건데 플라스틱 끈과 조각을 천연섬유로 바꿨고, 라벨도 리넨 섬유로 만들었다. 리넨은 면보다 물을 덜 써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이 적다. 1~2년이 지난 후에는 합성섬유 사용을 완전히 없애고, 식물섬유 원단과 식물염색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제품에 따라 신축성이 필요한 경우 스판덱스 섬유를 쓰고, 옷의 구조를 지탱하는 심지와 폴리에스터 봉제사도 쓰는데 그 경우에도 2%를 넘지 않는다. 오픈플랜에 없는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지퍼이다. 플라스틱 사용이 불가피해 아예 다 빼고 단추를 쓰는데, 상아 야자나무 열매를 재료로 한다. 비건 100%라 캐시미어, 앙고라, 실크 같은 동물성 섬유도 쓰지 않는다. 다른 비건 브랜드는 포도껍질이나 한지 등 식물섬유에서 유래한 비건 가죽을 쓰기도 하는데 이것도 플라스틱화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버섯으로 만든 대체가죽을 사용할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
-화학염료 사용은 어떻게 대체했나.
“식물의 줄기, 과일껍질, 꽃을 염료로 사용한다. 한 예로 석류는 연한 노란 빛에서 카키색까지 표현이 가능하다. 초록색과 검정처럼 아직 천연염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색이 있다. 식물염료는 디지털 프린트기에 넣어서 사용한다. 정화를 해서 내보내긴 하지만 정화 이전에도 이미 농업용수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정도다.”
-지속가능 브랜드는 비싸다는 인식이 강하다.
“제품을 만들 때 어떻게 해야 지속가능한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를 우선 생각한다. 보통의 브랜드처럼 싸게 많이 팔려는 데 초점을 두지 않기 때문에 가격은 부차적이라고 본다. 가격이 싸다면 그건 제대로 된 가격인가 물어봐야 한다. 말도 안 되게 싼 옷도 있지만 말도 안 되게 비싼 브랜드 매장에서 줄 서서 사기도 한다. 지속가능한 패션을 이야기할 때의 기준은 달라야 한다. 우린 오가닉 섬유가 포함됐음을 인증하는 OCS보다 더 까다로운 GOTS(Global Organic Textile Standard) 인증을 받고 있다. 제품이 오가닉 섬유를 70% 이상 포함하는 것 외에도 공장의 폐기물 처리나 에너지 사용, 노동자의 대우 등 제조 과정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환경·사회적인 영향을 평가한다.”
-패션의 역할은.
“패션이 할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역할은 메신저다. 진심을 담은 긍정의 메시지를 어떻게 사람들과 나누면 좋을까 고민한다. 그 일환으로 2019년부터 패션 레볼루션이라는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2013년 4월 24일 라나플라자 붕괴 사고로 100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은 걸 계기로 시작한 운동이다. 패션이라면 화려한 조명, 멋진 모델, 멋진 문구가 적힌 옷만 생각하던 사람들이 이제 열악한 환경에서 공정하지 못한 대우를 받으면서 옷을 만드는 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깨닫고 있다. 사람들은 ‘누가 내 옷을 만드는가’라는 해시태그를 달면서 의류 브랜드의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누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재료로 옷을 만드는지 밝히는 투명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당신의 옷을 만듭니다’라는 패션 레볼루션 캠페인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실천이라면.
“패션 레볼루션의 설립자 중 한명이 이런 말을 했다. ‘가장 지속가능한 옷은 지금 네 옷장에 있는 옷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결국 양을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중요하다. 지속가능이라는 말과 매 시즌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패션을 같이 이야기하는 게 창피하지 않은가, 고민하게 된다. 앤 클라인이라는 디자이너가 ‘옷이 세상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을 입은 여자가 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난 여자 대신에 사람이라는 말로 바꾸고 싶다. 지속가능한 산업을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고, 사람이 중요하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