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장 부리바>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2022.05.02

우크라이나 민족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서

‘카자크’란 민족을 아는가. 현재 우크라이나의 민족 정체성을 언급할 때 핵심이 되는 존재다. 하지만 이들은 혈연적 민족 집단과는 거리가 멀다. ‘자유민’이라는 어원에서 유래된 이 집단은 몽골의 키이우 루스(대공국) 정복 전후 주인 없는 땅이 된 광대한 스텝 평원지대에 흘러들어온 슬라브인들이 군사집단화된 경우다. 이들은 몽골의 후예 타타르, 그리고 그들을 후원하는 오스만 터키에 맞서 기나긴 항쟁을 거듭했다.

<대장 부리바> 웹포스터 / Prime Video

<대장 부리바> 웹포스터 / Prime Video

당시 동유럽의 강대국이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이들을 이용해 유럽을 위협하던 터키에 맞서고 있었다. 당시 러시아(루스 차르국)는 아직 폴란드의 위세에 비할 바 없던 시절이다. 폴란드-카자크 동맹에 균열이 가면서 17세기 이후 유럽 판도를 뒤바꾼 대사건이자 폴란드 역사에 ‘대홍수’라 불리는 재앙이 찾아온다. 그 시작이 바로 1648년 카자크 대봉기다. 우리에겐 율 브리너의 열연으로 기억에 남은 <대장 부리바>(1962)가 바로 그 사건을 극화한 작품이다.

<대장 부리바> 포스터 / Amazon

<대장 부리바> 포스터 / Amazon

영화는 동유럽 패권국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었으나 점차 가중되는 폴란드의 차별과 예속화 시도에 봉기한 카자크의 대결을 배경으로 카자크 그 자체인 중견 지휘관 타라스 불바와 그의 아들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러시아의 대문호 고골이 쓴 동명의 중편소설이 원작이다.

우크라이나 카자크 혈통을 물려받은 고골은 상세한 고증으로 카자크들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자신의 대표작을 집필했고, 영화는 <케이프 피어>, <나바론 요새>, <혹성탈출> 오리지널 시리즈 4·5편을 만든 J. 리 톰슨 감독의 연출에 율 브리너와 토니 커티스가 주연을 맡았다. 전후로 같은 원작에 기반을 둔 영상화는 여러차례 있었지만 완성된 지 60년 된 이 영화는 여전히 웅장한 규모와 서사로 원작을 상징하고 있다.

<대장 부리바> 포스터 / Rotten Tomatoes

<대장 부리바> 포스터 / Rotten Tomatoes

폴란드 역사에 찾아온 ‘대홍수’란 재앙

영화는 광활한 우크라이나 평원을 재현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팜파스에서 촬영했다. 타라스 불바가 폴란드에 대한 봉기를 위해 동포 카자크들을 결집할 때 대평원을 질주하는 타라스와 두 아들에게 차례로 카자크 군대가 합류하는 스펙터클은 멋진 배경음악까지 어우러져 언제 봐도 가슴 떨리게 만든다. 카자크들은 합류할 때마다 말 위에서 함성을 지른다. “자포로스티!” 자포로제의 동포들이란 뜻이다. 카자크를 상징하는 이미지, 일리야 레핀의 역사화 주역, 자포로제 카자크가 바로 이들이다(영화 도입부에도 레핀의 그림이 등장한다).

이들은 오스만 터키의 동유럽 진출을 가로막아 유럽을 사수하는 방파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폴란드의 대귀족들은 비옥한 우크라이나를 탐하기 시작한다. 토지를 빼앗기고 농노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자유민 집단 카자크의 분노가 ‘대홍수’의 서막이 된다. <대장 부리바>에서 타라스 불바는 폴란드군을 거듭 격파하지만, 함께 종군했던 두 아들 중 첫째 안드레이는 유학 시절 사랑에 빠졌던 귀족 영애를 잊지 못해 폴란드 편에 서고 결국 부리바에 의해 최후를 맞는다. 영화는 여기서 끝난다. 소설에선 실제 역사에 더 근접한 뒷이야기가 이어진다. 부리바와 둘째 오스타프는 용맹을 떨치지만 전세가 기울면서 비장한 최후를 맞는다.

실제 역사는 이제 시작이다. 역사상 최강의 기병 ‘윙드 후사르’를 보유한 폴란드의 강성한 군사력에 밀리기 시작한 카자크 수령 보흐단 흐멜니츠키는 후대 역사에 거대한 분기점이 되는 결단을 내린다. 바로 이반 4세 이후 혼란에 빠져 폴란드에 우크라이나 일대를 넘겨준 뒤 권토중래를 꿈꾸던 루스 차르국에 군사지원을 받는 대신 신종하기로 맹약한 것이다. 이제 폴란드는 실지 회복을 꾀하는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치닫고, 거기에 더해 북유럽 패권국으로 폴란드와 발트해에서 부딪치던 스웨덴과도 충돌한다. 이른바 ‘삼면전쟁’에 봉착한 셈이다. 20년간 이어진 전쟁 결과 폴란드는 영토와 인구의 3분의 1을 잃고 쇠퇴기로 접어든다. 승자가 된 스웨덴과 러시아는 전성기를 누리고 속국이던 프로이센이 독립해 독일 통일로 출발한다.

<파이어&스워드> 포스터 / IMDB

<파이어&스워드> 포스터 / IMDB

역사에서 교훈을 구해야 할 때

카자크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그들은 키이우 일대에 자치 국가를 건설하고 러시아의 속국이 된다. 이후에도 카자크들은 모스크바에 복종과 반란을 거듭한다. 역사에 반란자로 남은 이반 마제파, 콘드라티 불라빈, 예멜리안 푸가초프 등이 러시아에 맞서 독립을 꾀하거나 정권을 노렸던 대표 인물들이다. 이중 푸가초프는 러시아 대문호 푸시킨이 쓴 <대위의 딸>의 진짜 주인공이기도 하다. 카자크 민족의 정체성은 이후 둘로 나뉜다. 대초원을 질주하는 낭만적 자유민 집단과 러시아 제국의 강대함을 상징하는 기병대의 상반되는 이미지는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의 우크라이나 국가에 대한 인식 차이로 연결된다.

카자크 대반란을 어떻게 평가하고 규정하는가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러시아 삼국의 역사인식이 걸린 문제로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의 정치적 명분과도 통한다. 흐멜니츠키가 루스 차르국과 맺은 맹약이 신종(臣從)인지 동맹인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해석은 상반된다. 자포로제 카자크의 자치는 이후 한세기 동안 이어졌지만, 러시아의 차르와 차리나들은 점점 자치권을 축소했고, 에카테리나 여제에 의해 종말을 맞는다(같은 시기에 폴란드도 러시아-오스트리아-프로이센 삼국분할로 사라진다). 자포로제 카자크의 역사는 곧 현대 우크라이나 국가가 모스크바와 차별화된 우크라이나 정체성의 기원으로 삼는 근원이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폴란드 입장에서 만든 대작이 존재한다. 예르지 호프만 감독의 <불과 칼로써>(1999)다. <쿠오바디스> 작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대홍수’ 3부작 중 첫 번째 소설이 원작이다.

<대장 부리바>가 카자크 족장 타라스 불바를 주인공으로 한다면 이 영화는 폴란드 청년장교 얀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폴란드인의 입장이지만 카자크에 대한 귀족들의 차별과 탄압도 온당하게 서술하고, 카자크 문화나 ‘빌런’ 격인 보흐단 흐멜니츠키에 대해서도 카리스마 있게 묘사한다. 2000년대 이후 등장한 폴란드-러시아-우크라이나 ‘국뽕’ 영화들과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의 수작이다.

현재 서방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상정하는 모델이 중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부활이란 점은 의미심장한 동시에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폴란드는 터키에 맞서 여러차례 유럽을 구했지만 폴란드를 멸망시킨 건 유럽의 강대국 간 담합이었다. 지금 우크라이나를 가장 적극적으로 돕는 나라가 폴란드라는 것만 봐도, 러시아와 서유럽 간 완충 역할을 할 동유럽 국가들의 정치·군사동맹이 이 전쟁이 어떻게 마무리되건 중요하게 논의될 게 분명하다. 17세기에 벌어졌던 합종연횡의 역사에서 다시 교훈을 구해야 할 때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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