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킴리아’ 건보 등재만으론 부족하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2022.04.25

지난 4월 1일, 건강보험 역사에서 기억할 만한 발걸음이 있었다. 약효가 명확한 신약이 있지만,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죽음을 기다리던 환자들에게 생명의 소식이다. 바로 백혈병 항암치료제 ‘킴리아’ 신약의 건강보험 적용이다. 지금까지 치료를 받으려면 약 5억원을 내야 했지만, 이제는 소득에 따라 100만~600만원만 부담하면 된다.

지난해 10월 1일 고 차은찬군 어머니 이보연씨가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킴리아의 신속한 건강보험 등재’를 호소하고 있다. 급성림프구성 백혈병과 싸우던 고 차은찬군은 킴리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지난해 6월 숨졌다. / 한국백혈병환우회 제공

지난해 10월 1일 고 차은찬군 어머니 이보연씨가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킴리아의 신속한 건강보험 등재’를 호소하고 있다. 급성림프구성 백혈병과 싸우던 고 차은찬군은 킴리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지난해 6월 숨졌다. / 한국백혈병환우회 제공

킴리아는 한국에서 제1호 첨단바이오의약품이다. 2020년에 시행된 첨단재생바이오법에 따라 환자의 세포·조직이나 유전물질 등을 원료로 한 의약품이다. 킴리아는 환자에게서 추출한 면역세포(T세포)에 환자의 암세포 정보를 인지하도록 배양한 후 다시 환자에게 주사하는 환자맞춤형 항암제다. 환자의 면역세포를 활용해 암세포만을 유도탄처럼 공격하므로 치료 효과가 탁월하다. 항암 치료에 쓰는 대부분의 약이 과거에는 부작용이 많은 화학 항암제들이었으나 글리벡과 같은 표적항암제, 환자의 몸에 존재하는 면역체계를 이용한 면역항암제가 개발됐고, 이제는 환자의 면역세포를 배양하는 개인맞춤형 항암제로까지 발전했다.

‘기적의 신약’ 킴리아

킴리아는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개발해 2017년 미국에서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다. 이후 2018년에 유럽에서, 2019년 일본에서 승인을 받았으며 현재 약 30개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킴리아가 필요한 사람은 25세 이하 재발 또는 불응성 급성림프구성 백혈병, 그리고 거대 림프종 성인 환자들이다. 이들은 다른 치료에서 효과를 거두지 못해 사실상 죽음을 앞두고 있으며 잔여수명은 3~6개월 정도다. 킴리아는 이들에게 단 1회 주사로 치료를 완료한다.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의 경우 10명 중 8명이 장기 생존할 만큼 약효가 입증됐다. 환자들에게 ‘기적의 신약’으로 불릴 만하다.

문제는 초고가 비용이다. 1회 주사 치료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의약품 가격이 약 4억6000만원, 치료비용까지 합치면 5억원이다. 개인맞춤형 치료제여서 기존 합성화학품과 달리 대량으로 생산하기 어렵고, 한국에는 시설이 없어 환자의 혈액을 미국에서 배양하는 공정까지 거쳐야 한다. 여기에 특허 신약에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제약회사의 이해까지 결합해 가격이 초고가로 책정됐다. 이러니 사실상 약은 있으나 환자와 가족들은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이어졌다.

건강보험은 국민이 매월 보험료를 내고 아팠을 때 병원비를 함께 해결하자고 만든 사회보험이다. 그런데 킴리아 가격이 워낙 초고가여서 건강보험 등재 길이 험난했다. 보통 신약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으려면 식품의약처 허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의, 제약회사와 약가 협상,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 과정 등을 거친다. 건강보험 적용의 적절성을 점검하는 과정이라지만 기간이 너무 길다. 킴리아의 경우도 환자 가족과 단체들의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한국노바티스 앞 1인 시위, 청와대 국민청원, 기자회견 등 수많은 활동을 벌였음에도 식품의약처 허가 이후 건강보험이 적용되기까지 1년 1개월이 걸렸다. 해당 약을 기다리는 환자의 잔여수명을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식품의약처가 허가했다는 건 해당 신약이 의약적으로 효과가 있음을 의미한다. 식약처 허가 의약품은 환자가 전액 본인부담하면 치료를 받을 수 있다. 5억원을 마련하면 말이다. 결국 대부분 환자는 건강보험 등재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버티다 끝내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킴리아 건강보험 적용에 걸린 1년 1개월이 너무도 야속하고 애통하다.

킴리아만이 아니다. 개인맞춤형 바이오신약으로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졸겐스마’, 유전성 망막질환 치료제 ‘럭스터나’ 등이 식품의약처 허가를 받았으나 아직 건강보험에 등재되지 못해 환자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앞으로도 첨단바이오신약들이 연이어 선보일 것이다. 인류가 이뤄낸 성과이자 생명의 신약이라면 마땅히 환자에게 즉시 제공해야 한다.

‘반쪽’ 건강보험 완성할 때

‘생명과 직결된 신약의 건강보험 신속등재.’ 환자단체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요구다. 이는 킴리아처럼 생명을 다투는 환자에게 약의 효과가 입증됐으며, 다른 대체 의약품이 없는 신약은 식품의약처 허가와 동시에 건강보험에 우선 등재하는 제도다. 환자 생명과 직결된 신약은 먼저 건강보험을 적용해 환자를 살리고 나중에 공식 약가 등을 확정하자는 제안이다. 신약 개발, 건강보험의 존재 이유가 환자 치료라는 점을 생각하면 조속히 도입해야 할 제도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1월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생명과 직결된 신약에 대해서는 식약처와 심평원이 동시에 심사·결정을 하여 식약처 허가 후 신약이 시판되는 즉시 해당 환자의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임시적인 약값으로 우선 치료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마련하라”는 의견을 냈다. 이어 킴리아가 건강보험에 등재되자 “이 사례를 교훈 삼아 ‘생명과 직결된 신약의 건강보험 신속등재제도’ 도입을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하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에도 비슷한 내용이 담겨 있다. “고가의 항암제, 중증·희귀질환 신약에 대해 신속등재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제목만 보면 공약집은 환자들의 바람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하지만 세부 서술을 보면 식품의약처 허가와 동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보다는 “등재 일수를 대폭 감소”하는 절차 축소 정도로 이해된다. 이미 식품의약처 허가가 나왔다면 이후 과정이 생명을 앞설 수는 없다. 과감하게 식약처의 허가 즉시 건강보험을 적용해 한사람의 목숨이라도 더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신속등재가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풀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 기적의 신약은 환영할 일이지만 지나친 약가는 사회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제약회사는 의약품이 지닌 공공성을 감안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준수해야 한다. 킴리아의 건강보험 등재 지연에는 생명을 다루는 신약에서 지나친 이익을 추구하는 제약회사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앞으로 신속등재제도를 도입하면서 국제적 등재가격을 최소가로 조정해 임시 약가를 정하는 규칙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특정 질환을 넘어 환자의 병원비 총부담에 상한을 두는 제도가 시급하다. 환자가 직면하는 질병은 복합적인데 병원비는 수술, 재활, 약제 등 다양한 항목에서 발생한다. 의학적 비급여까지 모두 포함해 환자가 연간 100만원만 부담하는 ‘병원비 100만원 상한제’를 도입하자. 서구의 무상의료가 사실상 비슷한 금액의 상한제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제 ‘반쪽’ 건강보험을 온전히 완성해 ‘병원비 걱정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자.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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