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통령의 공약은 지켜져야 한다

양선묵 전 민주당 국제관계위원장
2022.04.04

1992년부터 무려 5명의 대통령이 광화문 집무실로 이전(4번), 세종시로 이전 또는 구조개선을 공약으로 삼았고, 윤석열 당선인 또한 후보 시절 청와대 이전 공약을 내놓았다.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는 어렵게 됐지만 대신 용산 국방부청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계획대로라면 무려 30년 만에 집무실을 옮기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지는 셈이다. 문제는 잔여임기를 50일가량 남겨둔 문재인 대통령의 반대다. 정부산하단체 기관들의 인사 강행에 이어 안보 공백 우려를 근거로 예비비 심의를 거부한 채 당선인과의 회동도 연기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지난 30년간 대선후보들은 툭하면 청와대 이전을 단골 인기공약 메뉴로 남발했다. 국민은 ‘그러면 그렇지’ 여기며 빌 공(空)자 공약에 연이어 실망하고 불신해왔다. 이번엔 다를 수 있을까. 현재로선 윤석열 당선인의 강행 의지가 만만치 않은 듯 보이기는 한다. 그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 집무실은 용산의 현 국방부청사로 옮기고 국민에게 청와대 개방과 공원화 약속도 100% 지키겠다고 공언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 2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청사 이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 2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청사 이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이를 두고 찬반양론이 분분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에 찬성한다. 용산은 한반도의 중심인 서울에서도 남산과 한강의 배산임수로 최적의 전략적 요새 지형을 이루고 있다. 고려말 몽골군이 병참기지로 활용한 이래 700여년간 간헐적이기는 하나 오늘날까지 외국군대의 조차지처럼 쓰였다. 역사가 보여주듯 용산은 몽골, 명, 청, 일본, 미국의 군대가 주둔하며 동아시아의 전략적 피벗(pivot·중심축) 기능을 수행했다. 주변 열강이 이 요새를 확보하려고 각축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안정은 물론 각국의 해양 및 대륙 영토확장과 세력균형 구도가 큰 영향을 받았다.

젊은 시절, 용산기지에서 2년쯤 군복무를 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떠난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게 19991년 말이었다. 그 무렵, 이곳을 다시 찾아 차로 돌고 또는 걸으면서 이 일대의 중요성을 다시금 음미했던 기억이 난다. 1998년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 당직자를 시작으로 주한외교단, 외신기자단 관련 업무를 보면서 동빙고동, 서빙고동, 이태원동, 보광동, 후암동, 동부이촌동, 한남동, 용산동 등 용산 일대에 산재한 각국 대사관저, 외교관 주택, 외신기자 숙소, 주한 외국 기업인 주택들을 본격적으로 걸어다녔다.

아마도 한번쯤 유엔 빌리지 언덕 쪽을 걸어본 사람들이라면 뭔가 묘한 이질감을 느꼈으리라. 차도만 있을 뿐 인도가 따로 없는 길도 많으니까. 한 2년쯤 전에는 걷기 동행 친구들과 함께 금호동, 옥수동, 이촌동, 용산동, 원효로를 거쳐 마포로 걷기도 하고 한글지명 작명으로 유명한 배우리 선생님의 안내로 효창공원부터 용산성당 일대를 답사하기도 했다. 국운 융성이니 용의 기운이니 하는 미사여구 없이도 걸을 때마다 용산은 경관이 빼어나면서도 전략적 요충지란 느낌을 강하게 받곤 했다. 비록 용산기지 터가 과거 둔지미 공동묘지 터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해도 그렇다. 서울의 어디가 안 그런 곳이 있는가. 심지어 지키고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들을 헐고 밀어버린 곳은 또 얼마나 많은가.

기왕 칼을 빼들었으니 윤석열 정부가 이곳 용산에 터를 잡고 한반도 역사 ‘최초로’ 자주적인 주권독립국가의 기초를 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보동맹 외교와 주변국 견제 등을 통해 진정한 동북아 시대에 걸맞은 중심적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 이를 계기로 국민 화합까지 이뤄낼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양선묵 전 민주당 국제관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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