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성들은 강인하다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의 저자
2022.03.21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이 되면 베트남 도로 곳곳은 꽃을 파는 상인들과 사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빵집은 아침 일찍부터 사무실에서 열리는 여성의 날 기념식을 위해 케이크를 구매하려는 직장인들로 문전성시다. 회사 CEO가 영화 캐릭터 모습으로 분장해 여직원들을 즐겁게 해주는가 하면 여직원 모두에게 장미꽃을 주기도 한다. 점심시간 식당가는 여성의 날 기념 회식을 하려고 몰려드는 회사원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쇼핑몰과 백화점에서는 여성 고객들에게 장미꽃을 선물하고 각종 할인 행사와 구매 금액에 따른 상품권 지급과 같은 프로모션도 한창이다. 이처럼 3월 8일은 베트남 유통업계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대목이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세계여성의 날이 단순하게 여성들에게 선물을 사주는 소비 천국의 날만은 아니다.

베트남 여성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쯩 짝 쯩 니 자매 영웅 설화 그림 / 유영국 제공

베트남 여성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쯩 짝 쯩 니 자매 영웅 설화 그림 / 유영국 제공

베트남의 여성 영웅들

베트남이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 근거 중 하나로 언급되는 것이 바로 ‘베트남 여성’들이다. 베트남 역사에는 강인한 생활력으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간 수많은 여성 영웅이 존재한다. 중국 후한을 상대로 민중 봉기를 일으켜 베트남 최초의 독립 국가를 건국한 영웅은 쯩 짝(Trung Trac), 쯩 니(Trung Nhi) 자매다. 이 두 여성이 역사적 거사를 일으켰을 때 이들을 도와 중국군과 싸웠던 영웅호걸은 36명의 여성 장수와 백발백중으로 적들을 벌벌 떨게 했다는 여성 궁수 부대였다. ‘두 명의 쯩’ 여사라는 뜻의 하이 바 쯩(Hai Ba Trung)이라는 명칭이 베트남 전국 대도시 곳곳의 도로 이름에 붙어 있다. 단순히 모계사회 국가의 전설로 치부할 수 없는 두 여성 영웅을 일상에서 기리기 위해서다.

베트남에는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여성 영웅들이 있다. 프랑스와의 독립 전쟁 중에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응우옌 티 민 카이(Nguyen Thi Minh Kay), 유관순 열사와 비슷한 시기에 17세의 나이로 무장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보 티 사우(Vo Thi Sau), 국가 부주석까지 올랐던 응우옌 티 딘(Nguyen Thi Dinh) 등이다. 이들의 이름을 딴 학교와 도로가 베트남의 전국 곳곳에 있다.

호찌민 1군 M Plaza 앞에서 꽃을 사는 베트남 남성 / 유영국 제공

호찌민 1군 M Plaza 앞에서 꽃을 사는 베트남 남성 / 유영국 제공

호찌민 7군 크렌센트몰에서 여성 고객들에게 꽃을 주는 쇼핑몰 직원

호찌민 7군 크렌센트몰에서 여성 고객들에게 꽃을 주는 쇼핑몰 직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여성과 아이들이다. 여성이 전쟁에 참여하더라도 물품을 공급하고 지원해주는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다. 베트남 여성들은 남성 군인들과 함께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베트남박물관에 진열 중인 전쟁 기록물을 보면 남성 군인들과 나란히 총을 겨누고 있는 여성 군인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하노이 전쟁박물관에 가면 추락한 미군 전투기 잔해를 포획한 사냥감처럼 끌고 가는 여성 전사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베트남 여성들의 강인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베트남 민족의 영웅 호찌민 주석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1945년 9월 2일 하노이 바딘광장에서 베트남 민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이때 바딘광장에서 첫 국기 게양식을 하는데 여성 2명과 남성 2명으로 하여금 국기를 게양하게 했다. 평소 호찌민 주석은 “여성은 혁명을 함께 이뤄낸 동지이며 남성과 여성의 권리는 동등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소신을 전 세계에 상징적으로 보여준 모습이었다. 호찌민 주석은 일찍이 프랑스와의 독립 항전 중인 1930년 10월 20일 베트남여성연맹 창립을 지원했다. 이날을 여성들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여성의 존재 가치를 존중하는 국가 기념일로 선포했다. 그래서 베트남은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과 10월 20일 ‘베트남 여성의 날’ 이렇게 두 번의 여성의 날을 국가 전체가 기념한다.

여성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려면

하노이 전쟁박물관 / 유영국 제공

하노이 전쟁박물관 / 유영국 제공

전쟁이 끝나고 베트남 여성들은 생활 전선에서 독립적이고 주도적으로 삶을 이끌어 나갔다. 2021년 국제노동기구(ILO)가 내놓은 ‘베트남의 성과 노동시장’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생산가능 인구에 속하는 베트남 여성의 70.9%가 경제활동인구다. 이는 글로벌 평균인 47.2%보다 월등하게 높은 수치다. 베트남 기업들의 여성 임원 비율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2021년 시장 조사기관 아이프라이스(iPrice)가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동남아 주요 6개국 전자상거래 기업들의 임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베트남은 여성 임원 비율이 46%로 1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회계 컨설팅 기업 그랜트 손튼(Grant Thornton)이 해마다 발간하는 「Women in Business 2021」에서도 베트남 기업 최고재무책임자들의 60%, 인사 임원들의 59%, 최고마케팅책임자들의 34%가 여성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 따르면 베트남 기업들의 여성 임원 비율은 세계 3위였다.

[우리가 모르는 베트남]베트남 여성들은 강인하다

베트남은 1인당 국민소득이 2020년 기준 3000달러가 채 안 되지만 여성들의 사회적 참여율이 높다.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 개진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베트남 여성들은 가족 소비의 주체가 됐다. 미중 갈등으로 베트남이 중국을 대신할 시장으로 떠오르면서 안정적이고 빠른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 만큼 베트남 여성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베트남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들은 이 베트남 여성 소비자들을 어떻게 붙잡아야 할까.

사회공헌활동을 할 때 여성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해볼 수 있겠다. 여성들이 질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고, 여성들만을 위한 장학금 수여도 여성 소비자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이다. 어떠한 홍보를 하고 어떤 사회공헌활동을 하더라도 단순한 도움이 아니라 ‘강인한 베트남 여성’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지원해주는 게 중요하다.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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