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리포그룹의 변신, 또 한 번 날아오를까

고영경 선웨이대학교 겸임교수
2022.01.10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서쪽으로 23㎞ 떨어진 곳에 카라와치라는 거대 신도시가 있다. 인구가 집중된 자카르타의 위성도시로 개발된 카라와치는 18홀 규모의 골프장과 고급주택, 고층 아파트, 마트와 상가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명 ‘리포빌리지’라고 불린다. 여기서 리포는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거대기업집단 리포그룹의 이름에서 따왔다.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기업 가운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리포그룹은 최대 부동산 개발 사업자이면서 유통, 레저, 교육, 미디어, 통신, 금융 등 10여개 사업 분야에 계열사를 두고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과 헬스케어 분야 투자를 키우며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리포몰 / 고영경 제공

인도네시아에 있는 리포몰 / 고영경 제공

목타르 리아디는 리에 몬 티에(Lie Mon Tie), 한자로 이문정(李文正)이라는 이름을 가진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이다. 리아디는 자바섬 태생이지만 아버지의 고향 중국 푸젠성에서 잠시 살기도 했다. 리아디 가족은 인도네시아 말랑에 정착했는데, 이 지역에는 1만~2만명의 화교가 거주하고 있어 리아디는 화교학교에 다니고 중국어를 썼다. 네덜란드에 맞서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을 지지했던 리아디는 구속을 피해 중국으로 피신해 난징에서 대학에 다녔다. 그러나 이마저도 국공내전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홍콩을 거쳐 인도네시아로 돌아왔다.

인도네시아 최초 ATM 도입

25세에 처음 사업을 시작한 리아디는 자전거와 부품 판매 그리고 전자제품 수입에 뛰어들었다. 여기서 작은 성공을 거둔 그는 직접 해외 운송으로 사업을 확장했는데 작은 배 1척으로 시작해 17척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이 사업은 수카르노의 화폐개혁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이후 은행업에 눈을 돌린 리아디는 파산 직전의 끄막무란은행(Bank Kemakmuran)을 인수해 재정건전성을 회복시키고 이를 다시 매각했다. 이후 수하르토가 집권을 시작한 1960년대 중반 은행 구조조정 업무에 러브콜을 받은 리아디는 3개의 은행을 통합해 파닌은행(Panin Bank)을 탄생시키고 인도네시아 최대 재벌 살림그룹 산하 아시아 중앙은행(BCA·Bank Central Asia)에 들어가 국내외 시장에서 입지를 확장하는 데 주력했다.

인도네시아 금융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리아디는 홍콩의 부호 리카싱을 통해 부동산과 은행 매각 거래를 통해 부를 축적했고, 마침내 본드 센터를 사들여 ‘리포센터’라는 이름을 붙였다. 리포라는 이름은 중국어로 힘(Li)과 보물(po)이라는 뜻으로 돈의 원천을 의미한다. 홍콩 기반의 리포와 인도네시아 BCA를 이끌며 여러 대규모 플랜트 프로젝트에 투자했고, 특히 중국과 싱가포르 등 해외시장에 주력했다. 1980년대까지 자본시장 발달이 뒤처진 중국과 동남아에서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던 리아디가 사업기회를 포착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인도네시아 은행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BCA와 리포은행은 각각 150개, 100개지점을 목표로 확장을 거듭했고, 인도네시아 최초로 ATM을 들여왔다. BCA는 인도네시아 최대 상업은행으로 성장했고, 살림그룹은 막강한 재벌로 등극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의 발판에는 수하르토와 수도노 살림(살림그룹 창업자) 사이의 단단한 관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정치권과의 밀착관계에 부담을 느낀 리아디는 BCA를 떠나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한다. 물론 리아디 역시 정경유착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후에 리포그룹의 관계자들이 부패문제로 고발되기도 하나 최소한 거리 두기를 시도한 것만은 분명하다.

홍콩 리포센터 / 고영경 제공

홍콩 리포센터 / 고영경 제공

리아디가 이끄는 리포는 금융에 이어 부동산으로 눈을 돌린다. 카라와치와 찌카랑을 주택단지와 산업단지로 개발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수하르토 대통령의 아들들이 진행하는 개발사업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무조사를 당하는 등 각종 곤욕을 겪기도 했다. 곧이어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인도네시아를 강타했다. 루피아는 폭락했고, 시위가 이어지는 혼란 속에서 수하르토 대통령이 결국 권좌에서 물러났다. 1999년 리포그룹도 리포생명의 지분 70%를 AIG에 매각하고 리포은행은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의 관리대상에 포함됐다. 금융에서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리아디는 2004년 리포은행 등 금융사업을 매각하고 부동산 개발과 정보통신 분야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2006년 리포는 만다린호텔을 운영하는 싱가포르의 오버시즈 유니언 엔터프라이스(OUE·Overseas Union Enterprise)를 인수하고, 상업용 부동산 개발과 리모델링에 전력을 쏟았다.

디지털 시대 성공적 사업구조로 전환

리포그룹은 정보통신과 미디어, 디지털, 헬스케어를 주력사업으로 바꿔나갔다. 부동산 개발사업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시장 환경이 변하면서 신사업 분야의 매출과 기업가치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기반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한 리포그룹은 리아디의 세 아들과 손자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 진두지휘하고 있다. 디지털 페이먼트 오보(Ovo)와 패션 커머스 마타하리몰 등 디지털 사업과 리포 카라와치는 손자 존 리아디가 이끌고 있다. 오보는 인도네시아 1위 온라인 결제 사업자이며 기업가치 10억달러가 넘는 유니콘이다. 또 다른 손자 브라이언 리아디는 싱가포르 OUE와 헬스케어 사업을 맡고 있다. 2018년에 소프트뱅크는 리포그룹의 링크넷(Link Net)과 사물인터넷 기술개발 제휴를 체결했으며, 이토추와 함께 헬스케어 사업 확장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리포그룹 로고 / 고영경 제공

리포그룹 로고 / 고영경 제공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여러 그룹 가운데서도 리포그룹은 디지털 시대에 성공적으로 사업구조를 전환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동남아 최대 시장인 인도네시아의 디지털 경제 규모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는데다 오포와 마타하리몰 등 디지털 분야의 성장세가 팬데믹을 거치며 더 가파르게 상승한 덕분이다.

리포그룹은 또다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2021년 오보의 지분 90%를 그랩에 매각하고 디지털 분야 투자에 집중하는 한편 부동산 개발에 다시 전력을 기울이려는 모양새다. 오보 인수대금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오보의 가치가 20억달러로 평가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 5억달러에서 10억달러로 추정된다. 존 리아디는 인터뷰에서 40개 이상의 인도네시아 테크기업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병원과 교육, 리테일 사업에 대한 투자도 지속하고 있지만 이 역시 부동산 개발과 맞물려 있다. 주택단지와 산업단지 개발에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지난 60년 동안 가족중심 경영이 흔들림 없이 지속됐지만, 창업주 3세들의 능력이 앞으로 어떤 성과를 낼 것인지 또 한 번의 기로에 놓여 있다.

<고영경 선웨이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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