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찌빠를 보내며

박병률 편집장
2021.12.13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는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국민화가’로 추앙받지만, 생전의 박수근은 ‘붓과 팔레트’밖에 없는 가난한 화가였습니다. 아내 김복순은 남편의 작품이 하나 팔리면 쌀통부터 채웠다고 합니다. 다음 작품이 언제 팔릴지 몰라 자식들을 굶기는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편집실에서]로봇 찌빠를 보내며

박수근과 함께 양대 거목으로 불리는 이중섭의 삶은 더 어려웠습니다. 정신이상과 영양실조에 시달리다 나이 사십에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은지화(담뱃갑 속의 은지에다 송곳으로 눌러 그린 일종의 선각화)는 생전 그의 생활고를 대변합니다. 한국사회는 두 거목을 생전에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습니다.

<로봇 찌빠>, <도깨비 감투>를 그린 신문수 화백이 지난 11월 30일 소천했습니다. 신 화백은 주간경향과도 인연이 깊습니다. 1424호의 표지를 그렸습니다. 그의 부고에 안타까워하는 댓글들이 많이 달리더군요. 지금의 4050이라면 그의 만화에 빚을 안 진 사람이 없을 겁니다. 척박했던 한국만화의 초기를 지켰다는 점에서 한국 대중문화에 기여한 바도 큽니다.

하지만 생전 신 화백은 우리 만화가 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을 속상해했습니다. 공짜로 그려주면 좋아하지만, 제값을 주고 사가겠다는 사람들은 드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겠죠. 원로만화가 중에 넉넉한 분들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신 화백은 한국명랑만화를 이끌었던 5인방(길창덕·신문수·윤승운·이정문·박수동)의 기념관을 마련하고 싶어했습니다. 이들이 창조한 캐릭터와 기록을 제대로 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증을 바라는 곳은 많아도 돈을 들여 저작물을 구입하고, 제대로 된 기념관을 짓겠다는 곳은 없었습니다.

한국만화 캐릭터들은 저자의 사망과 함께 같이 땅에 묻힙니다. 이상무 화백과 함께 독고탁이, 길창덕 화백과 함께 꺼벙이가 사라졌습니다.

미국은 다릅니다. 지구상 최고의 시리즈인 마블시리즈는 새롭게 창조된 게 아닙니다. 아이언맨은 1963년, 캡틴 아메리카는 1941년, 헐크와 스파이더맨은 1962년 첫선을 보인 캐릭터입니다. 마블은 올드 캐릭터들을 모아 <어벤져스>를 만들었습니다.

한국만화 캐릭터가 유독 단명하는 것은 저자의 개성이 강한 탓도 있지만, 저작권 개념이 서 있지 않아 상업화에 더딘 것도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원로작가들이 창조해낸 캐릭터는 개인의 성과물이지만 동시에 한국 문화의 자산이기도 합니다.

한달 전 신 화백과 카톡으로 대화를 했습니다. 신 화백이 남긴 마지막 문장은 “한국만화 파이팅”이었습니다. 그의 뜻대로 한국만화가 튼튼한 뿌리를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원로 만화가들이 한분씩 우리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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