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사진 한장 구경하세요.” 지난해 6월 한 지역 인터넷신문이 게시한 사진이다. 제목은 이렇다. ‘경부고속도로 개설을 반대하던 김영삼과 김대중의 시위 사진’, 글엔 이렇게 부연이 돼 있다. “정치한다는 자들은 이처럼 귀한 사진을 교과서에 싣자는 소리 한마디 없는가. 유치원부터 노인대학 교재에까지 싣고 가가호호 벽에 붙여 길이길이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사진은 인터넷에서 꽤 유명한 사진이다.
기자는 지난 2010년 경부고속도로를 둘러싼 논란을 다룬 연중기획 시리즈 글에서 이 사진의 진위를 검증했고, 다시 2015년 한 주간지의 연재기사가 같은 주장을 내놓자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비서 역할을 했던 권노갑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의 증언 등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 건설 반대 시위를 한 적이 없음을 이 코너에서 밝혔다.
그런데 팩트체크가 완전할 수 없었던 것은 조작 사진의 원본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오마이뉴스는 기자의 기사를 인용하는 한편, 사진 속 등장하는 굴착기의 위험경고 표지나 유압배열을 보면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의 굴착기가 아니라 2000년 전후에 두산에서 출시된 140W 모델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생각보다 그리 오래된 사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추론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실체가 밝혀졌다. 국제뉴스통신사 AFP가 운영하는 팩트체크의 아시아태평양판에서 지난 4월 27일 이 사진의 실체를 다뤘다. AFP 팩트체크에 따르면 원본은 뉴시스가 2007년 10월 24일 보도한 사진이라는 것이다. 사실일까. 실제 AFP가 제시한 링크를 통해 원본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매립 절대 안 돼!’라는 제목의 뉴시스 2007년 10월 24일자 보도다. 보도에 따르면 이 사진은 충북 진천·음성군의 폐기물종합처리장 추가시설 조성에 반대해 맹동면 통동리 등 인근 주민들이 굴착기를 동원해 매립장 설치 반대 시위 사흘째를 담은 것이다.
“저희가 통신 기사를 송고할 때 1메가 이하로 화소수를 낮춰 보냅니다. 원본파일이었다면 피켓 내용만 봐도 사실이 아닌 것을 알 텐데….” 11월 24일 기자와 통화한 당시 해당기사를 쓴 연종영 기자의 말이다. 그는 현재 뉴시스 충북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다. 자신이 찍은 사진이 10년 넘도록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한 DJ·YS의 연좌시위’ 가짜뉴스에 동원됐다는 것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이튿날 음성군청 측에 확인한 연 본부장이 DJ·YS로 지목된 두 사람의 인적사항에 대한 추가정보를 알려왔다. “상의 흰색을 입은 분은 김찬O씨이고, 손을 치켜든 분은 김선O씨라고 합니다. 두분 모두 지금은 작고하셨고요.” 기자와 통화한 음성군청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두분 다 통동리 분들인데, 그 동네가 경주김씨 집성촌이거든요. 동네 사람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물어봤어요. 뭣 때문인지는 이야기 안 했습니다. 사실 누워계시는 분 중 한분이 제 동창 아버지인데….”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가짜뉴스라는 게 이렇게 나오는 거군요.”
사실 11년 전 첫 팩트체크를 했지만 조작된 사진의 생명력은 끈질겼다. 지금도 포털 검색엔진에 ‘김대중’, ‘경부고속도로’라는 검색어를 넣고 검색하면 흑백으로 변조하고 피켓 내용을 지워 ‘고속도로 반대’를 조잡하게 써놓은 위 조작 사진이 최근까지도 역사적 사실을 담은 사진처럼 유통되고 있다.
정리하자.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막기 위해 DJ·YS가 연좌시위를 하고 있는 장면을 찍었다는 사진은 조작된 것이다. 원본은 2007년 10월 24일 충북 음성군 맹동면 통동리 주민들이 폐기물종합처리장 추가시설 조성에 반대해 벌인 시위 3일차에 찍은 사진으로 최종확인됐다. 11년 전 시작한 사진 진위에 대한 팩트체크는 이걸로 진짜 마무리.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