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들의 저서에 의하면, 설득을 잘하려면 겉으로 내세우는 주장이나 요구사항을 액면 그대로 보지 말고 그 뒤에 숨겨진 욕구(desire)를 파악하라고 한다. 예를 들어, 11년간 타결되지 않던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의 평화협정 체결 또한 욕구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시나이반도를 100% 반환하라는 이집트와 일부만 반환하겠다는 이스라엘 사이에서 양적으로 ‘반반 합의’를 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이집트의 경우, 일부 반환을 수용할 경우 패전으로 상처 입은 국민이 정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고, 이스라엘의 경우 시나이반도 일부가 완충지대가 되지 않으면 국경에 군사적 긴장이 높아진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러한 우려를 고려해 양국은 ‘반반 합의’가 아니라 시나이반도를 100% 반환하되 유엔평화유지군이 상시 주둔해 완충지 역할을 하는 내용의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이렇게 욕구를 파악해 합의하는 데 11년이 걸렸다.
‘퇴행’ 말고 다른 길 있나요?
최근 특정 대선후보에게 열광하는 20대 남성들을 보면서 20대 남성들의 요구사항에 집중하는 모습을 본다. 20대 남성들이 학력고사 부활이나 사법시험 부활이라는 공약을 선호한다는 등 그들의 요구사항이 무엇인가에 관심이 쏠리는 듯하다.
물론 최악의 반응은 20대 남성들이 느끼는 불만은 잘못됐다고 가르치려는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면서 그냥 참으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최악이다. 정치인들이 20대 남성들을 가르치려만 하고, 뒤에 숨겨진 욕구를 알려고 하지 않는 모습에 얼마나 절망과 좌절을 느꼈으면, 20대 남성들이 자주 가는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 올리고, 댓글 달아준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정치인’이라고 느끼겠는가. 20대 남성들 또한 우리의 주권자이고, 우리 국민이고, 우리의 정치인과 소통하고 싶은데, 소통할 정치인조차 없다고 느낀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20대 남성들이 대선 2번이면 30대 남성이 되고, 다시 대선 2번이면 40대 남성이 된다. 정치인들은 20대 남성들도 우리의 미래이고, 우리 정치의 미래라는 점을 모르고 있는가? 정치의 영역에서 20대 남성들의 다양한 욕구가 수용되지 못한다면, 20대 남성들이 ‘퇴행’이라는 선택을 하는 것도, 그 결과 우리 모두가 ‘퇴행’하는 것도 필연이 될지 모른다. 마치 군국주의로 퇴행하는 일본처럼.
반대로 최선의 반응은 20대 남성들의 주장이나 요구사항 뒤에 숨겨진 욕구를 이해하는 것이다. 20대 남성들의 욕구를 파악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가령 필자가 다니는 교회에서만 봐도 대기업 또는 공기업 정규직 등 직장이나 재력을 갖추지 못하면 ‘교회 오빠’가 아니라 ‘투명인간’이다. 우리 법제도상 양산된 일자리가 ‘투명인간’을 만들고 있고, 그것이 20대 남성들에게 극복할 수 없는 좌절감을 주고 있다. 우리 정치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찾으려 하는가. 이런 부분에 대한 해답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투명인간’이 되지 않기 위한 ‘경쟁’에서 답을 찾으려 하고, 그나마 그들에게 공정하다고 느껴지는 학력고사, 사법시험 부활이라는 퇴행적 선택이라도 하려는 것이 아닌가? 20대 남성들은 보수가 아니라 ‘퇴행’밖에 답이 없다고 느낀다. 이것을 해소하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김윤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