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후보

박병률 편집장
2021.10.18

<정직한 후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라미란씨가 3선 국회의원 역을 맡았는데요, 그는 거짓말을 달고 삽니다. 20평 좁은 집에 산다는 것도,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엑스포 유치에 나섰다는 것도, 서민을 위해 일한다는 것도 다 거짓입니다. 보다 못한 할머니가 천지신명께 빕니다. 손녀가 제발 거짓말 좀 하지 않게 해달라고.

[편집실에서]정직한 후보

대선 경선 정국에서 제기된 의혹들을 지켜보는 국민의 심정이 딱 이렇습니다. 정치인들은 열심히 해명하는데 당최 믿음이 안 갑니다.

고발사주 의혹의 중심에 선 국민의힘 김웅 의원. “기억이 안 난다”고 했지요. 하지만 복구된 녹음파일에는 “우리가 고발장을 써서 보내줄 테니까 남부지검에 접수하라”고 말한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대장동 개발 의혹의 핵심인 화천대유에 아들이 근무한 곽상도 의원. 처음엔 “제 아들은 월 250만원 받는 말단 직원”이라고 했지요. 퇴직금으로 50억원을 받았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250만원 월급은 아는데, 50억원 퇴직금은 몰랐다?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TV토론에 나온 윤석열 전 검찰총장. 캠프의 해명은 “(윤 전 총장은) 손가락 위주로 (손을) 씻는 것 같다”입니다. 처음엔 5차 토론회 때만 그랬다고 했는데 실은 3차와 4차 토론회 때도 손바닥에는 왕자가 있었답니다. 동네 할머니들이 이 글씨들을 써줬다는데, 글쎄요.

대장동 개발사업 인허가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경기도지사. 구속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 대해 “측근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를 측근으로 묶는 데 대해서는 “일종의 트랩(덫)”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까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친구”라고 합니다.

어디 이들뿐이겠습니까.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7년 전 아버지가 제주에 산 땅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윤희숙 전 의원도 아버지가 보유한 세종시 땅 3000평에 대해 “26년 전 결혼할 때 호적을 분리한 이후 아버지의 경제활동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에 진실을 말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억울하겠지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원체 앞뒤가 맞지 않아 신뢰가 가지 않으니 말입니다.

여론도 다르지 않습니다. 경향신문의 창간기획 여론조사에서 대장동 의혹에 대해 이재명 후보 책임이 더 크다는 답변이 50%나 됐습니다. 고발사주 의혹에 대해서는 윤석열 후보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답변이 45%로 가장 많았습니다(10월 3~4일, 남녀 1012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정말 천지신명께 빌고 싶습니다. 정치인들이 거짓말하지 못하게 해달라고요. ‘정직한 후보’의 답변도 과연 똑같을까요.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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