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러닝 코치 비플렉스의 정창근 대표
달리기가 선사하는 ‘러너스 하이(행복감)’의 뒤편에는 ‘러너스 니(무릎 부위 통증)’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부상은 때로 달리기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달리기는 접근성이 뛰어나고 그 자체로도 좋은 운동이지만, ‘올바른 자세로’ 할 때만 그렇다. 잘못된 자세로 지속적인 충격이 가해질 경우 발목염좌나 족저근막염, 무릎 부상이 따라온다. 달릴 때 무릎에 가해지는 충격은 체중의 약 3배다.
‘혼뛰’를 즐기는 러너나 초보 러너일 경우 자신의 자세를 점검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제대로 뛰고 있는 것일까’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때 실시간 러닝 코치의 도움을 받는다면 어떨까. 귀에다 대고 ‘충격이 너무 큽니다. 더 살살 착지해주세요’, ‘상하 움직임이 큽니다’, ‘왼쪽 다리가 약합니다. 좌우 균형에 주의하세요’를 알려주는 웨어러블 기기가 나왔다. 올해부터 판매 중인 무선 이어폰 ‘비플렉스 코치’다.
비플렉스 코치를 탄생시킨 아이디어에는 ‘기본의 재발견’이 있다. 카이스트에서 생체역학을 공부하던 정창근 대표(34)·정주호 이사(33)와 과학기술정책을 전공한 박대인 이사(33)는 인체의 움직임이란 결국 머리와 연동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들은 기존 웨어러블 기기가 제공하지 못하는 정보에서 사업 가능성을 찾았고, 2016년 비플렉스를 창업했다. 이후 한동안은 머리 움직임만으로 동작 분석에 필요한 100여가지 정보를 수집하는 ‘바이오멕 엔진’ 구축에 주력했다. 바이오멕 엔진이 바로 비플렉스 코치의 핵심 기술이다. 비플렉스 창업 멤버 정창근 대표를 지난 9월 2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만나 동작 분석 기술이 구현해낼 부상 없는 운동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비플렉스 멤버는 어떻게 구성됐나.
“나와 정주호 이사가 카이스트 생체역학 연구실에 있었다. 걷고 뛰는 원리를 연구하는 곳이다. 원래는 사람처럼 걷는 로봇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로봇을 공부했는데, 그러려면 사람이 걷는 원리부터 알아야겠다 싶어 관심을 갖게 됐다. 정주호 이사와 박대인 이사는 기숙사 룸메이트였다. 기존 웨어러블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쪽에서 사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땐 우리가 전문요원으로 복무 중이어서 밤마다 모여 공부하다가, 2016년 복무가 끝나자마자 시작했다. 현재 비플렉스는 총 15명으로 대부분 카이스트 출신의 연구자와 개발자로 구성돼 있다.”
-기존 웨어러블의 부족함이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보완했나.
“기존 웨어러블은 ‘얼마나 운동을 많이 했는가’를 수집했다. 걸음수, 운동시간, 이동거리 등이다. 반면 바이오멕 엔진은 ‘어떻게 운동을 했는가’란 운동의 질적인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 사람의 보폭이 어떤지, 다리에 가해진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움직임의 일관성은 어떤지를 알 수 있다. 일상적인 걷기, 뛰기와 같은 동작에는 많은 건강 데이터가 들어 있기 때문에 움직임을 분석하면 어떤 이상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사실 사람의 동작은 뇌와 척수로 이뤄진 중추신경계와 뼈와 근육으로 이뤄진 근골격계가 매우 정교하게 맞물린 결과물이다. 여기에 한 부분이라도 이상이 발생한다면 바로 동작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문제를 미리 감지해 부상 위험과 질병을 낮추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비플렉스를 착용한 뒤 부상 위험성이 감소하는지를 살펴보는 임상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올해 말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크라우드 펀딩으로 소비자를 만났다. 그간의 성과를 소개해 달라.
“2016년 설립 이래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신한벤처투자 등에서 투자금을 유치했다. 지난해엔 중소기업벤처부가 선정한 빅3 분야 13개사에 최종 선정되기도 했다. 처음엔 바이오멕 엔진을 JVC 등 글로벌 이어폰 회사에 공급하는 B2B로 시작했고 올해 자사몰을 열고 비플렉스 코치를 정식 출시했다. 현재 국내 특허는 등록 13건 및 출원 3건, 해외 특허는 등록 4건 및 출원 6건이 있다.”
-바이오멕 엔진은 달리기에만 적용할 수 있나. 요즘 홈트가 보편적인데 이 기술을 어떤 운동에까지 활용할 수 있나.
“웨어러블이다 보니 홈트나 필라테스 같은 실내 운동보다는 아웃도어 운동에 강점이 있다. 다이내믹하고 반복적인 운동에 특화돼 있다. 사이클과 등산도 준비하고 있다. 등산 같은 경우는 오르고 내릴 때 충격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칩으로 펌웨어 업데이트를 하는 방식으로 내년 중순쯤 추가할 계획이다.”
-정확한 데이터 수집을 위해 소비자들이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
“(원리상으로) 칩이 머리에 잘 고정만 돼 있으면 된다. 그래서 사실은 이어폰 형태도 될 수 있고 안경, 선글라스, 보청기 형태가 될 수도 있다. 비플렉스 코치가 머리에서 달랑거리지만 않으면 된다.”
-소비자 리뷰를 보면, GPS가 휴대폰이랑 연동돼 있어 정확하게 측정하려면 결국 휴대폰을 손에 들고 뛰어야 해 아쉽다는 반응이 있다. 향후 개선될 여지가 있나.
“휴대폰 없이 뛰려면 스마트워치를 사용하면 된다는 점을 감안해 워치와 비플렉스 코치를 연동할 수 있도록 앱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쯤으로 본다.”
-가민이나 애플워치 같은 기기가 경쟁 대상인가.
“비플렉스 코치가 제공하는 기능은 워치에선 애초에 할 수가 없다. 부상이나 효율에 관련된 시간·역학 파라미터들은 손목에서는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어폰으로서 비플렉스 코치의 특장점은 실시간으로 자세 코칭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인데, 이 또한 워치에선 불가능하다. 사실 워치와는 상생이 가능한 상호보완적인 관계라고 생각한다. 워치는 자세한 코칭과 데이터를 줄 수 없고 음악을 들을 수 없는 반면, 비플렉스 코치는 제공한다. 반대로 비플렉스 코치엔 GPS 기능이 없다.”
-판매 실적과 향후 다른 나라로 진출할 계획은.
“초도물량은 다 나갔다. 오프라인 판매도 준비하고 있다. 일본에는 이미 진출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엔 유럽과 미국 쪽으로도 갈 계획이다. 개인 운동 인구가 많은 지역이 아무래도 유리하다. 시장 규모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10~20배 정도다.”
-애플은 애플워치를 통해 점점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헬스케어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비플렉스도 노년층이나 중장년층을 타겟으로 하나.
“바이오멕 엔진을 처음 적용한 것이 스포츠 웨어러블이었던 것이고, 올해부터는 디지털 헬스케어도 시작하려고 한다. 노년층에 발병하는 근감소증의 경우 치료제가 아직 없고 운동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다. 원격으로 우리 장비를 이용해 재활운동을 돕고 신체기능평가를 할 수 있게끔 할 방침이다. 비플렉스 코치 착용만으로 신체나이를 평가하고 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비즈니스를 준비 중이다. 이를 위해 이어폰만으로 신체기능평가 프로토콜(SPPB) 검사 기술을 개발했고, 노인을 대상으로 국내 대학병원과 함께 연구 임상을 마쳐 국제 저널에 결과 보고를 준비 중이다. 향후 파킨슨병 같은 신경계 질환의 평가, 진단, 재활까지 가능케 하는 것이 목표다.”
-어떤 반응을 접했을 때 가장 뿌듯한가.
“우리 칩이 탑재된 이어폰을 사용한 네덜란드 소비자가 직접
e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제대로 뛰고 있는데 자꾸 한쪽으로 기울었다는 메시지가 나온다. 고장난 것이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살펴보니 데이터에는 문제가 없어 주의를 해보시라고 답했는데, 몇주 뒤 ‘부상을 당해 물리치료사를 만나러 간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 제품의 효용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스타트업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
“대기업에 비해 문제 정의를 공격적으로 할 수 있고, 단기간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는 곳이 스타트업 아닐까. 더 명확한 미션, 더 공격적인 사명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 같다. 그런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스타트업의 목적이다.”
-비플렉스는 어떤 기업을 지향하는가. 비전을 소개한다면.
“예전에는 신체 동작 분석이 연구실에서만 가능했다. 장비와 비용도 비쌌고 대량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우리는 신체 동작 분석을 연구실 밖으로, 실생활로 가져올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자세교정과 보행재학습을 가능하게 해 더 많은 사람이 부상과 질환을 예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