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해고엔 ‘왜’가 필요하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2021.10.11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인사위원회에서

위원장 징계대상자, 소명해보세요.

징계대상자 저는….

나(징계대상자의 변호사) 잠시만요, 일단 징계 혐의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려줘야 대상자가 그것에 대해 소명할 것 아닙니까.

위원장 혐의는 검찰처분(기소유예)입니다.

몇날 며칠 몇시에 어떤 행위가 징계 대상으로 특정되는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간사 (자료를 보며 기소유예 처분서를 읽음)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읽은 내용 중에 어느 부분이 혐의란 말씀인지요?

간사 폭행과 기소유예 처분입니다.

폭행이라는 두루뭉술한 말씀 말고,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 행위를 특정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위원 쌍방폭행 아닙니까?

이 사건은 동료 A씨가 다른 동료들 앞에서 B씨를 마구 욕하고 발로 차며 폭행하자, B씨가 소극적으로 저항하면서 옷을 1회 잡아끈 사건입니다. 쌍방폭행과 성격을 달리합니다. 기소유예 처분에 불복해 헌법소원을 청구했습니다.

위원장 그렇습니까? (잠시 논의한 뒤) 기소유예 불복수단은 헌법소원입니까? 그리고 기소유예는 형벌 아닌가요?

네. 유일한 방법입니다. 기소유예는 형벌이 아닙니다.

위원장 그러면 일단 오늘 징계위원회를 없던 것으로 하고, 헌법소원 결과를 지켜보겠습니다.

‘징계 혐의’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회사가 징계를 하려면 혐의에 관해 시간, 장소, 목적, 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징계 혐의를 통보한 뒤 소명하게 해야 순서에 맞습니다. “당신도 다 아는 사실 아니냐”라고 하면 부당해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인 양 회사가 일단 징계를 확신하고 디테일을 살리지 않으면 위와 같은 사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간이 특정되지 않은 사례에는 ‘2001년 4월 1일부터 2018년 7월경까지’ 추행했다는 이유로 징계한 사건이 있습니다. “기간이 너무 포괄적이고 개략적인 특정조차 되지 않아 원고의 실질적인 방어권 행사에 지장을 초래했다”는 판결(춘천지방법원 2019구합52780)이 나왔습니다. 사유가 특정되지 않은 사례도 보입니다. 불륜과 이를 둘러싼 언론보도를 실제 이유로 하면서도 ‘품위유지의무 위반’이라는 사유만을 형식적으로 기재했다면 “추상적이면서도 막연한 내용인 ‘품위유지 등 위반’의 구체적 사실 또는 비위 내용은 전혀 기재돼 있지 않다”고 보았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19나2034266). 다수의 징계대상자라면 한명씩 특정해야 합니다. 여러명의 노동자가 “사원총회를 개최하고, 안건을 의결했다”는 것에 더해 어떻게 관여해 어떠한 징계 사유가 발생했는지 알 수 없다면, 징계처분에는 징계 사유가 특정되지 아니해 무효라고 보기도 했습니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18가합111886).

다만 ‘징계 사유’의 특정은 엄격하게 특정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당시 당사자가 징계과정을 충분히 알 수 있어 징계결과에 불복해 구제 절차로 나아가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면 큰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0구합53729).

영화 <인 디 에어>에 ‘해고통보전문가’라는 직업이 나옵니다. 영화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제시한 것이 ‘영상통화를 통한 해고’이고, 왠지 코로나19 시대의 비대면 현실과 어울리는데 우리 노동법에서는 허용될까요?

줌으로 해고를 알려도 될까요?

우리 법상 회사가 노동자를 해고하려면 ‘해고 사유’와 ‘해고 시기’를 서면(종이)으로 통지해야 유효합니다(근로기준법 제27조). 이 법이 없는 때는 사용자가 일시적인 감정으로 홧김에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라고 노동자를 해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고 구두로 통보하면 무슨 징계 사유로 해고했는지 양측에 증거가 없어 부당해고와 관련된 분쟁 해결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①사용자가 해고를 신중하게 하고 ②사후에 (소송의 증거로) 분쟁이 해결될 수 있도록 하고 ③노동자에게도 해고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취지로 법이 생겼습니다. 이 법에 따라 회사는 노동자의 처지에서 해고 사유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하고, 구체적 사실 또는 비위 내용을 기재해야 합니다(대법원 2014다76434).

그런데 2007년에 신설된 근로기준법 제27조에 위반된 부당해고는 자주 눈에 띕니다. 먼저 결론만 통지해서는 안 됩니다. 대법원은 2021년, 회사가 근로자에게 계약종료통지서를 교부하면서 계약종료의 사유나 별도의 근거 규정을 기재하지 않은 사안에서 “갑에 대한 해고 통지서에 해당하는 계약종료 통지서에 해고 사유가 ‘전혀’ 기재돼 있지 않으므로 근로기준법 제27조를 위반한 통지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대법원 2021년 2월 25일 선고 2017다226605 판결).

해고 통보를 하더라도 적시에 해야 합니다. 전화로 “일을 그만했으면 좋겠다”라고 해고 통보를 했고, 최초 통보 후 30일이 지난 시점에서 참가인에게 해고 통보서를 발송한 사건도 있습니다. 30일 늦게 해고 통보서를 보낸 것은 보내지 않은 것과 같아 부당해고라는 것이 판결입니다(서울행정법원 2017구합73662).

최근 법원은 해당 노동자가 해고의 내용을 알고 있을 때는 ‘어느 정도’ 축약 기재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해고 대상자가 이미 해고 사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고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해고 통보서에 징계 사유를 축약해 기재하는 등 징계 사유를 상세하게 기재하지 않았더라도 위 조항에 위반한 해고 통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대법원 2012다81609). ‘회의록’ 형식으로 작성됐다고 하더라도 위 서면에 의한 해고 통보가 근로기준법 제27조를 위반한 것으로 보기 어렵습니다(대법원 2021두36103). 즉 문서의 제목이나 형식보다는 실질적으로 노동자가 내용을 잘 인지하고 충분히 방어할 수 있게 회사가 충분히 배려했는지가 중요합니다.

결론적으로 근로기준법상 줌을 통한 영상통화 해고는 불가합니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전화도, 문자도, 원칙적으로 e메일(예외 있음)도 안 되고 서면에 구체적인 사유를 특정해 적어줘야 합니다. 부당한 해고를 피하기 위해 회사는 해고 이유를 종이로 알려줘야 하고, 노동자는 알려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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