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거리 두기 4단계’에서 보내는 감옥의 시간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2021.08.23

이른 아침, 청소를 시작하다 ‘거리 두기 4단계’가 다시 연장된다는 속보를 들었습니다. 한달 전, 휴게실에서 들뜬 마음으로 연인과 접견을 기다리다 접한 소식처럼 가슴을 덜컥 내려앉더군요. 직원이 코로나19에 확진된데다 거리 두기 4단계 시행이 발표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들. 그날부로 접견과 전화가 모두 금지됐습니다. 간신히 딛고 있던 반대편 세계와 연결된 발판이 무너졌습니다. 때맞춰 언론이 먹고사는 문제에서 절벽에 봉착한 사람을 다루는 동안, 방안의 거울은 먹고 싸는 문제에 매몰된 짐승을 비춥니다. 이 세계에 들어온 이후 내내 외면했던 현실을 마주합니다. 애써 과거와 미래의 나를 현재와 단절시키려는 노력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전보다 시간은 무거워졌고 말은 날카로워졌습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나는 양심수이고 저들과 다르다는 생각이 잠시 멈춥니다. 폭염에 진이 빠져 나뒹구는 모습은 예외가 없습니다. 살기 위해 끌어안은 얼음물이 체온으로 덥혀 서서히 녹는 과정에 야속해하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제야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을 보고, 듣고, 이해하려 마음을 다잡습니다. 어설프게 동화된 채 접한 죄수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기구합니다. 한동안 살을 맞대야만 하는 그들은 경제사범이라 그런지, 잘나갈 때는 ‘억’ 소리 나는 소비를 즐겼고 한두 다리만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답니다. 한때의 실수로 성공 가도에서 추락했을 뿐인데, 수사기관과 법원은 자신의 억울함을 동정하지 않고 회복 불능의 쐐기를 박은 것이라 여깁니다. 그중에서도 불운이 극심한 사람은 실형을 선고받은 후 수갑을 차고 다시 법정에 출두하는 굴욕을 겪습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서로를 동정하며 의지하는 관계를 지켜보면 수많은 감정이 교차합니다.

그러다 나와 다른 사람을 경계 짓는 결정적 차이를 확인하며 안심합니다. 나처럼 피해자 없는 범죄 혐의로 구속된 사람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여러명의 피해자와 연결돼 있고, 영악한 가해자는 합의를 통해 형량을 줄입니다. 대부분 특정 시점으로 시간을 되돌린다면 지금과 다른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시간을 아무리 먼 곳까지 되감아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걸 알기에 그저 빨리감기만을 고대할 뿐입니다. 자랑할 만한 성매매 무용담이나 음주운전 이력이 없는 것 또한 내가 섞일 수 없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어쭙잖은 도덕적 우월감으로 매일 함께 일하고, 먹고, 자는 사람을 멸시하는 자신을 마주하는 건 커다란 고통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되풀이되는 가해자의 서사에 무감각해지지 않으려면 원하지 않는 미움을 품게 됩니다.

벗어날 수 없는 아픔을 나누고 연대할 만한 존재는 지금 이 세계에서는 찾기 어렵습니다. 한없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바깥세상에서 감옥과 다름없는 상황에 갇힌 이들을 그립니다. 코로나19로 병동에서 치료받는 사람, 점차 가중되는 방역 업무에 시달리는 사람, 타의에 의해 생활시설에 갇힌 사람, 돌봄의 무게에 짓눌려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 감옥의 의미를 모든 감각으로 체험 중인 사람으로서 ‘감옥 같은’ 삶에 갇힌 모든 이에게 외로움의 인사를 전합니다. 누군가 감옥에서는 하루를 무탈하게 보내는 것만으로 성공한 셈이라 치라더군요. 이제야 그 의미를 깨닫습니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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