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세법 개정안이 7월 26일 발표됐다.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을 경쟁적으로 추진해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킨 미국·영국 등 주요국과 달리, 상대적으로 반응은 잠잠했다. 내년 3월 임기 종료를 앞둔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세법 개정안인 것을 감안해도 전문가들은 “내용이 없다”고 혹평했다.
이 같은 평가는 올해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대기업과 대주주, 고소득자, 자산소득자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이른바 ‘부자 증세’ 방침을 공식화했다. 100년을 이어갈 개혁 로드맵을 제시하겠다며 전문가와 각계각층 대표인사들로 구성되는 ‘재정개혁 특별위원회’를 꾸리기도 했다. 그러나 특위는 경유세 인상, 고가 1주택자 세제 혜택 축소, 상속세 과세체계 개편 등 방향만 제시하는 데 그쳐 용두사미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후 내놓은 세법개정에서도 평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17년 첫 세제 개편에서 정부는 과세표준 5억원 초과구간에 적용되는 소득세 최고세율을 40%에서 42%로 2%포인트 높이는 데 그쳤다. 2020년에도 과세표준 10억원 초과구간을 신설하고 최고세율을 45%로 끌어올리는데 머물렀다. 2018년 기준, 약 1만6000명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세수 효과도 9000억원에 그치는 소규모 개편안이었다.
금융·부동산 세제 후퇴… 핀셋 증세만
자산 관련 세제 개혁은 오히려 후퇴했다. 금융투자소득 기본공제액 상향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당초 2023년부터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전면 시행하면서 2000만원까지 공제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자본시장 활성화라는 여론에 밀려 5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요건 완화도 무산됐다. 정부는 올해 4월부터 종목별 보유액이 3억원 이상이면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과세할 예정이었지만 연말 매도 물량이 쏟아져 시장변동성이 커지고, 소액 투자자가 손해볼 것이라는 반대 여론에 밀려 양도세 부과 기준을 현행(10억원)대로 유지했다.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조세 저항이 거세지자 ‘보유세는 높이고 거래세는 낮게’라는 당초 정부의 방침과 달리, 공시지가 6억~9억원 구간에 있는 주택의 재산세율도 0.40%에서 0.35%로 낮췄다. 종합부동산세마저 납부 대상자를 공시지가 상위 2%로 제한했다. 실효세율을 몇%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과세 인원을 일정 비율로 제한하겠다는 징벌적 성격의 세제 개편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진보 정부가 증세에 적극적이라는 고정관념과는 어긋난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가 세입 기반을 늘리는 데 더 적극적이었다. 당시 ‘증세 없는 복지’를 표방한 박근혜 정부는 명목세율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최저한세율을 올리고 투자세액공제율을 축소함에 따라 대기업의 실질적 세금 부담은 늘어났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 결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감면액 비중은 2015년 59.7%에서 2017년에는 41.0%로 하락했다. 수입금액(매출) 상위 10대 법인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2013년 15.6%에서 2016년에는 19.0%로 뛰었다.
이자소득과 배당소득을 합한 금융소득 비과세 기준도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낮췄다. 당초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비과세 기준을 낮추는 안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던 문재인 정부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교육비나 의료비 공제도 더 받을 수 있는 소득공제 방식에서 세액공제로 바뀐 점도 고소득자의 세 부담을 무겁게 했다. 정부는 ‘세제 합리화’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부자 증세’를 추진한 것이다. 여기에 한갑에 2500원이던 담배가격이 4500원으로 80%나 오르면서 세원 기반은 더 넓어졌다.
진보 정부는 증세, 보수 정부는 감세?
덕분에 문재인 정부의 세수 여건은 상대적으로 넉넉했다. 임기 첫해인 2017년부터 예산 편성 당시 전망치(251조1000억원)보다 14조3000억원이나 세수가 더 걷혔다. 2018년에도 세수 호황은 이어졌다. 당시 국세 수입(293조6000억원)이 당초 예측한 예상치(268조1000억원)보다 25조4000억원이나 많았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2013년과 2014년 2년 연속 세수결손이 발생한 영향으로 정부가 보수적으로 세수 추계를 한데다 세입 기반 확충 노력까지 더해지면서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세수가 예상보다 더 걷혔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가 과세 기반을 확대하는 것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데는 경기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세율을 올리거나 과표구간을 조정하지 않아도 경기가 호황이면 세수는 자연스레 더 걷힌다. 올해 초과세수가 31조5000억원에 달하는 점도 예상보다 빠른 경기 회복속도에 힘입어 법인세와 소득세 등이 더 걷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곧 경기가 다시 나빠지면 세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의미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대규모 세수결손이 발생한 것도 예상보다 빠르게 경기가 꺾인 영향이 컸다.
마냥 국채 발행에만 기댈 수도 없다. 2020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8.4%로 선진국 평균(125.5%)을 크게 밑돌고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재정 여력은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 대응 등 일시적인 재정 소요는 국채 발행을 통해 마련할 수 있지만, 저출산·고령화 대응 등 지속적인 재정 소요에 대해서는 증세를 통해 안정적으로 조달해야 한다. 세수 여건에 따라 복지서비스를 줄이고 늘리기는 어렵다.
코로나19로 재정의 역할이 더욱 부각되면서 사회안전망에 대한 요구는 더욱 커졌다. 경쟁적으로 인하에 나섰던 주요국이 다시 법인세율을 올리고 폐지했던 부유세 카드를 다시 꺼내드는 이유다. 반면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며 재정 지출 확대에 대한 위험성을 줄곧 강조해온 정부는 조용하다. 재난지원금 지급 논쟁이 있을 때마다 재정건전성 악화를 이유로 직을 여러차례 걸기도 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작 재정건전성과 직결되는 증세 논의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우선이라며 매번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미진했던 세입 기반 확충 노력은 고스란히 차기 정부에 부담으로 이어진다. 예상보다 빠르게 경기가 얼어붙어 세입이 덜 걷히게 될 경우, 재정의 역할은 더욱 위축될 수 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7월 27일 ‘경제·사회 위기 대응과 미래세대를 위한 조세개혁 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법은 단순히 재정 확보를 넘어 국가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백년지대계의 정책수단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법개정은 100년은커녕 1년도 채 내다볼까 말까이고, 그나마도 원칙 없이 그때그때의 현안을 쫓는 데만 급급하다.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세법개정을 반복하면서 명확성을 핵심으로 하는 조세법률주의의 원칙은 누더기가 됐다.”
<박상영 경제부 기자 s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