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

다시 #미안해하라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2021.07.19

앞다투어 사죄했다. 정치인들은 죄다 SNS에 인증샷을 올리고 #미안해 해시태그를 달았다. 불과 6개월 전의 일이다. 지난 1월 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지난해 10월 일어났던 서울 양천구 입양아동 학대 사망 사건을 보도했다. 너무도 생생하게 재현된 생후 16개월 유아의 참혹한 삶과 죽음 국민은 분노했다. 방송 직후 여론은 들끓었고, 국회가 여론을 의식한 듯 방송 일주일 만에 아동학대 관련 법안만 수십건을 쏟아냈다.

[오늘을 생각한다]다시 #미안해하라

어린이집과 인근 소아과에서 무려 세차례나 아동학대 의심신고를 했으나, 국가의 아동보호 체계는 작동하지 않았고, 피해아동을 폭력의 소굴로 번번이 되돌려보냈다. 처벌강화만으로 재발방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양천 사건을 통해 드러났지만, 일주일 만에 만들어진 졸속 법안들은 사건의 본질을 피해갔다. 다행히 지난 2월 5일 아동학대 문제에 천착한 시민단체·전문가들이 요구해온 ‘아동학대진상조사특별법’을 김상의 부의장이 대표발의(국회의원 139명 공동발의)했고, 영국의 ‘클림비 보고서’나 미국의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국가전략보고서’와 같은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가 이뤄지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 4·7 재보궐선거가 도래하자 정치권은 급속히 냉각했다. 국회가 망각한 사이에도 죽음의 행렬은 계속됐지만, 고인의 얼굴과 이름이 공개되지 않아서인지 국민적 공분이 일지도 않았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법을 무조건 통과시켜달라는 게 아니다. 법안을 폐기하더라도 무려 139명이 공동발의한 법안이라면 심의는 제대로 해야 하지 않나. 아동학대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사람으로서 반대 이유를 알아야 항변을 하든, 납득을 하든 할 게 아닌가.

2월 5일 발의된 특별법은 2월 19일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고, 2월 25일 열린 복지위 제1법안소위에는 상정되지 않았다. 3월에는 법안소위가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4월 28일 1소위에 드디어 상정(81개 법안 중 71번)됐지만, 쟁점 법안이던 사회서비스원법에 밀려 논의되지 못했다. 당일 1소위 회의시간은 총 6시간 17분이었다. 다시 한달을 기다려 5월 21일 1소위에 재상정이 됐고, 특별법이 최초로 논의되었다. 결론은 ‘법 제정에는 여야 없이 동의하니 정부나 여야가 머리를 맞대 좋은 법안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차후 논의를 이어나가자’였다. 이날 총 회의시간은 2시간 51분이었다. 또 한달을 기다려 6월 23일 1소위에 계속심사안건으로 상정되리라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23일 회의시간은 3시간 15분에 불과했으니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렇듯 입법기관의 회의시간이 한달 3~6시간에 불과하다. 내가 일했던 19대 국회 때 발의 법안은 1만7822건이었고, 이중 9809건이 임기만료폐기됐다. 20대 때는 2만4075건이 발의됐고, 이 가운데 폐기된 법안은 1만5256건(63.3%)으로 역대 최악이었다. 그 죽음을 막지 못해 미안하다던 정치인들, 법안심사 안 하는 것도 #미안해하라.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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