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어공’은 왜 실패했나

박상영 경제부 기자
2021.06.14

임기 말 내각의 관료 비율 늘어… 기재부 출신의 약진 두드러져

“정권 말은 관료의 시간이다. 개혁과제를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정권 초기가 정치의 시간이었다면 정권 말은 리스크 관리를 하게 된다. 산에서 내려갈 때 급하게 가다 보면 다칠 수 있지 않나.”

세종시 기획재정부 전경 / 기획재정부 제공

세종시 기획재정부 전경 / 기획재정부 제공

경제부처 한 고위 관료는 정권 말을 이같이 표현했다. 실제 문재인 정권의 경우, 임기 말이 다가올수록 내각에서 관료 비율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 초기만 해도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는 인원(부처 17곳+경제수석) 중 관료 출신은 3명에 불과했다. 이명박 정부(6명), 박근혜 정부(8명)에 비교해 확연히 낮은 비율이다. 보수 정부가 관료 출신을 선호한 것과 달리 문재인 정부는 개혁 성향의 시민단체와 학계 출신을 적극적으로 등용한 결과였다.

집권 마지막 해에 접어들면서 관료 숫자는 9명으로 증가했다. 지난 4월 지방자치단체장 재보궐 선거 직후, 학계 출신인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사퇴하고 관료 출신인 노형욱 전 국무조정실장이 국토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관료 비율은 늘어났다. 청문회 과정에서 박준영 전 해양수산부 차관이 낙마하지 않았다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개각 당시(10명)와 같은 규모다.

경제부처 관료 비율 3→9명으로 껑충

기재부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경제관계장관회의 참석자 중 기재부 출신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필두로 구윤철 국무조정실장, 노형욱 국토부 장관, 은성수 금융위원장, 안일환 경제수석 등 5명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기재부 출신이 4명, 박근혜 정부에서는 5명이었다. 최근 청와대 정책실장에 기재부 차관을 지냈던 이호승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임명되면서 청와대·행정부 주요 정책 결정자는 모두 기재부 출신으로 채워졌다.

관료들은 문재인 정부가 관료에 의존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한다. 경제부처 한 관계자는 “수십년 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관료사회에 오게 되면 장관이더라도 절대 조직을 장악할 수 없다” “업무 파악만 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결국 정권 초 추진했던 개혁과제 추진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조직 장악력이 뛰어난 관료를 선호하게 됐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한 전직 고위관료는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처럼 장관이 되기 전부터 개혁과제를 연도별로 꼼꼼하게 준비한 사람도 막상 실무진이 보고할 때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지시를 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좁은 인재 후보군도 관료에 대한 의존도만 높였다. 경제부처 한 고위관료는 “현 정부는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후보군으로 먼저 정한 뒤, 자리가 비면 그 후보군에서 뽑는 방식이었다”며 “어느 자리는 후보군이 넘치는 반면, 어떤 자리는 후보군이 없어 연관성이 별로 없는 분야에서 일한 분이 선출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여당 한 중진 의원도 “자기 사람들로만 돌려막기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관료만 남게 됐다”며 권력 기반을 스스로 악화시켰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야당일 때도 당내 경제전문가가 없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있었는데 집권 4년차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집권 당시 여당 의원을 기재부 장관에 등용했던 보수정부와 달리 민주당은 관료 출신만 기용했다. 지금도 야당인 국민의힘에 경제전문가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포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상영의 Re:코노미]문재인 정부 ‘어공’은 왜 실패했나

기재부 출신이 약진하는 것에 대해 관료사회에서도 경계하는 목소리가 있다. 의사결정 과정은 빨라질 수 있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는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는 것이다. 경제부처 한 관료는 “한진해운 건만 해도 구조조정 주도권을 기재부가 갖다 보니 금융 논리만 반영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정부 내에서도 제기됐다”며 “대규모 실업과 지역경제 위축 등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됐으면 달라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협소한 인재풀… 결국 관료에 의존

대안은 무엇일까. 관료들은 실무 단계부터 우수한 외부 인사를 적극적으로 채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제부처 과장급 한 인사는 “진보 정부의 약점은 인재풀이 협소하다는 것”이라며 “인재풀을 넓히기 위해 시민단체나 학계 출신을 과장급 단계부터 선발해 실무경험을 쌓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나중에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이들이 우수한 장관 후보군이 되지 않겠냐”며 “관료를 견제하려면 우수한 인재를 육성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도 부처별로 외부 인사를 채용할 수 있도록 개방직을 두고 있지만, 대부분 핵심 업무에서 배제되고 임기도 대개 3년으로 한정됐다. 이마저도 사실상 공무원 재취업 자리로 이용되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5년간 부처별 개방형 직위 임용현황’ 자료를 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개방형 직위를 통해 채용한 경력자 1731명 가운데 880명(51%)이 공무원이었다. ‘개방형 직위’는 공직 내·외부에서 적격자를 임용할 수 있어 공무원 임용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조직에 적절한 자극과 활력을 불어넣자는 제도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관료사회의 정체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인사혁신처도 역량을 갖춘 민간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헤드헌팅’ 제도를 도입했지만, 지난 5년 동안 영입된 인원은 53명에 그친다. 이 때문에 임기 제한을 없애거나 다른 공무원처럼 고위직으로 승진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개방직으로 채용된 한 관료는 “분야는 점점 전문화·세분화 되는데 중앙부처는 1년 단위로 인사가 나기 때문에 전문성을 쌓기 어려운 구조”다. “경쟁력을 쌓기 위해서는 전문성 있는 외부 인사를 적극적으로 채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부처에서는 외부 인사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뽑지 않으려고 한다”며 “결국 인사혁신처 등에서 의지를 갖고 압박하지 않으면 외부 수혈이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상영 경제부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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