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더 라스트 챕터

정용인 기자
2021.05.24

‘긴 머리 풀어헤친 흰옷 여자’가 사다코라고?

제목 링: 더 라스트 챕터 (The Perilous Internet Ring)

제작연도 2020

제작국 중국

상영시간 91분

장르 미스터리

감독 츠루타 노리오

출연 부맹백, 손이함

개봉 2021년 5월 12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BoXoo엔터테인먼트

BoXoo엔터테인먼트

아아. 이건 사다코가 아니야. 영화 시작 5분이나 흘렀을까, 최초의 희생자가 나오는 시점부터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차 밝힌 것처럼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사 측이 제공한 보도자료 같은 걸 확인하진 않는다. 막연하게 <링: 더 라스트 챕터>라고 하니 20세기 말 시작된 <링> 시리즈의 최종완결판 영화라고 생각했다. 감독도 시리즈의 프리퀄을 다룬 <링 0-버스데이> (2000)의 츠루타 노리오 감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주연배우들이야 중국 배우들인 건 알고 있었는데, 이미 ‘J호러 붐’의 기원이 된 <링> 시리즈는 영미판으로 번역돼 리메이크된 적 있다.

그 ‘크리처’가 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사다코가 아니라고 한 건 이 흰옷 입고 긴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희생자에게만 들리는 환청으로 이름을 속삭이기 때문이었다.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주인공이자 죽음이 예정돼 있는 남녀들이 사다코와 소통한 적이 있던가. 나름 지레짐작으로 사다코의 원한을 짚어 해원을 통해 비디오의 저주에서 벗어나려던 주인공들은 여지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온 사다코에 의해 희생된다. ‘여자’에 따옴표를 붙였는데, 영화의 주인공들 입을 빌린 여자라는 규정은 다시 시리즈를 관통하는 규칙에 위배된다. 아직까지 영화화된 적 없는 스즈키 코지의 원작 3부에서 사다코는 어떤 존재인가가 규정된다.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니다. 그저 괴물이다. 여귀(女鬼)의 형상을 하긴 했지만.

‘J호러 붐’ 시작 알린 공포영화 <링>

영화 이야기를 하자. 제목의 ‘라스트 챕터’가 주요한 소재인 것은 맞다.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만난 남녀 청춘들이 있다. 이들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잔성루>라는 제목의 공포 웹소설을 공동창작 중이었다. 소설을 쓴 끝에 오프모임이 있었고, 거기서 모종의 사건이 벌어지면서 소설의 최종장(라스트 챕터)은 쓰여지지 않은 채 프로젝트는 중단된다. 어느 날, 팀의 일원이었던 여학생 탕징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메신저로 링크를 받는다. ‘라스트 챕터’라는 비번을 치고 들어가면 완성되지 않은 <잔성루>의 마지막 장이 기술돼 있다. 탕징이 받은 소설의 결말은 소설 속의 분신, 자신의 캐릭터가 비참하게 목숨을 잃는 것이었다. 그 대목을 읽는 순간, 이들은 앞서 ‘흰옷의 긴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의 환영을 본다. 끊임없이 날카롭게 웃으며 이름을 부르며 따라오는 이 여자를 피해 달아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또다시 <링> 시리즈에서 이탈. 주인공 사다코는 공포장르의 전형적인 클리세에 따라 저렇게 히스테리컬하게 웃지 않는다(눈을 희번득 부라린다면 또 모를까, 시리즈 전체에 걸쳐 괴물 사다코가 웃은 적이 있었던가?).

<링> 시리즈는 고어영화가 아니다

탕징은 스스로 목을 두 번 긋는데, 유혈이 낭자한 고어를 영화는 묘사하고 있다. 이 역시 <링> 시리즈와 맞지 않는다. 공포영화 하위장르로서 고어영화의 전통이 <살아난 시체들의 밤>(1968)부터 시작한다면, 시리즈의 기원이 된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영화 <링> (1998)은 고어영화가 묘사하는 시각적 공포가 아니라 등골이 오싹한(eerie) 공포의 감정을 가져다줬다.

아무튼 탕징을 필두로 공동창작에 참여한 청춘들이 그렇게 한명씩 죽어가면서, 탕징의 도움 요청을 거절했다는 죄의식을 안고 있는 탕징의 사촌여동생 주샤누와 귀신과 같은 초자연현상에 관심이 있는 마밍이 이 의문의 연쇄자살을 추적한다는 이야기가 영화의 골격이다. 뒤늦게 영화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니 영화는 <그녀는 QQ에서 죽었다>라는 제목의 중국소설이 원작이다. 그러면 그렇지. <링> 시리즈와 처음부터 무관한 작품이었다.

사실 인트로 부분의 대학교 심리학 교수의 최면 강의도 그렇지만, 웹소설 창작에 참여한 ‘AI를 연구하는 천재 장애인 청년’을 찾아와 ‘무언가를 얹었다’(이건 핵심 스토리에 해당하므로 일단 이렇게만 적어두자)는 건 너무 어이가 없어 입이 벌어진다. 사건을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두 남녀 방구석 탐정들이 아니라 가죽점퍼를 걸치고 체격 좋은 중국 공안들인데, 주인공 남녀는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야지!”라고 점잖게 충고하는 공안 형사에게 거수경례를 붙인다. 지난해 워낙 악평을 받아 보기조차 두려워지는 중국 코로나19 극복 국뽕영화 <최미역행>(2020)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링> 시리즈 주인공도 ‘모에화’를 피해갈 수 없었다

사진/유튜브 캡처

사진/유튜브 캡처

지금도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영화 <링>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링>은 국내에 조금 늦게 수입됐는데, 1990년대 말 대학가 여기저기 있던 영상카페에서 처음으로 접했다. 자막도 없는 영화였지만, 공포의 비디오를 접한 중학생 소녀의 죽음을 다루는 오프닝부터 사람의 마음을 공포로 휘어잡는, 그런 연출력을 영화는 뿜어내고 있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야마무라 사다코가 TV 화면에서 기어나오는 장면은 이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 <비디오드롬>(1983) 같은 영화에서 구현된 아이디어였으나 확실한 오리지널리티가 있었다.

<링>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수많은 후속작품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제목만 보고 ‘어차피 인터넷 시대이니 사다코도 네트를 통해 전파되겠지’라며 ‘라스트 챕터’라는 중국판 리부트를 기대했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링> 시리즈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숱하게 많은 <링> 시리즈 중 한 작품을 연출한 일본 감독이 중국 각본을 바탕으로 중국 배우들 앞에서 메가폰을 잡았을 뿐.

확실히 사다코는 무시무시한 캐릭터였지만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일본 특유의 문화현상, 모에화 경향이 나타난다. 일찍이 <고지라>(1954) 이후부터 시리즈에서 나타난 경향이었다. 도쿄만에서 출몰해 빌딩과 도로 등 인간문명을 때려부수던 ‘고지라’가 시리즈를 거듭하면서는 또 달리 나타난 괴물들로부터 인간들을 지킨다. 사다코의 모에화가 가장 절정을 이룬 건 스즈키 코지 소설 <에스(S)>를 바탕으로 제작된 <사다코 3D: 죽음의 동영상>(2012)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프로야구 시구를 하는 사다코(사진), 마쿠도나루도(맥도널드)에서 서빙하는 사다코 등의 영상이 바다 건너 한국에서도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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