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키코 공동대책위원장 조붕구 코막중공업 대표“중장비 팔아 커피원두 벌어옵니다”

반기웅 기자
2021.03.15

“이번에 커피를 배웠어요. 일단 커피 맛을 알게 되면 아무 커피나 못 마시죠. 요즘은 아프리카로 좋은 커피원두를 찾아다닙니다.” 키코(KIKO) 공동대책위원장에서 물러난 조붕구 코막중공업 대표가 난데없이 커피 예찬론을 펼쳤다. 10년 넘게 일선에 섰던 키코 투쟁을 내려놓고 회사 살리기에 전념하겠다던 그였다. 새 거래처를 물색할 시기에 왜 커피를 찾아다닐까.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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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에서 주문이 들어왔어요. 중장비가 많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외환 사정이 안 좋아 대금 지급할 달러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금이나 다이아몬드 있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들한테는 아주 좋은 커피원두가 있다고 하더군요. 달러 대신 커피를 주면 안 되겠냐고 묻길래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예가체프 원두를 들여오고 있어요”

중장비 1대당 받는 커피원두는 컨테이너 1대 분량 정도다. 에티오피아로부터 받은 커피 원두는 다시 국내 식품 대기업에 판매한다. 커피 품질이 뛰어나다 보니 수요도 꾸준하다. 매월 컨테이너 10대, 연간 120대 분량은 무리없이 거래가 가능한 정도다. 조 대표는 “에티오피아뿐만 아니라 케냐처럼 좋은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들과도 ‘에티오피아 모델’로 거래할 생각”이라며 “한국 커피시장이 고급화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2008년 키코 사태로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를 맞았던 조 대표의 회사는 정상화 과정을 밟고 있다. 다만 여전히 정상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조 대표의 회사는 70개국에 자체 설계한 브랜드 장비를 수출하던 건실한 중소기업이었다. 전 세계에 사업장 13개를 두고 확장하던 시기에 키코 사태를 맞고 고꾸라졌다. “회사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매출도 오르고 실적도 회복되고 있어요. 그런데 코로나19 여파로 회복 속도가 더딥니다. 노력에 비해 성과가 안 나고 있죠. 그래도 전반적으로 나쁘지는 않아요. 선방하고 있습니다.”

조 대표는 지난해 키코 투쟁을 정리한 책 <은행은 당신의 주머니를 노린다>를 출간했다. 책을 통해 금융 모피아의 횡포와 약탈 행위를 비판했는데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금융 환경이 전과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 대표는 “모피아와 핵심 금융지주들이 금융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다”며 “그들의 카르텔에 끼지 못하면 사업이든 금융이든 업 자체를 해나갈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은행에 대한 비판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조 대표는 할 말은 하겠다고 강조했다. 지금 ‘구김살’을 펴지 않으면 누군가 나처럼 넘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금융이 약탈적인 구조인 사회에서는 누구든 언제든 무너질 수 있어요. 신뢰사회를 구축하려면 자신의 피해를 복구했다고 싸움을 끝내서는 안 됩니다. 키코 사태를 제대로 다뤘다면 라임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잘못을 저지른 금융 수장들은 강력하게 처벌해 최소한 다음 정권에서 금융 개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합니다. 적어도 촛불 혁명 정부라면 모피아의 뿌리는 뽑지 못해도 썩은 가지는 잘라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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