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장 “「아르미안의 네 딸들」레트로판 나왔어요”

김태훈 기자
2021.03.01

만화가 신일숙(59)이 데뷔한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순정만화라고 하면 여리여리한 여자 주인공이 말 그대로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내용이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독립적이고 저항적인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1986년작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만화계를 넘어 대중문화 전반에 충격을 준 작품이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이 자리 잡은 중근동 지역을 배경으로 한 이 역사 판타지 만화는 여성 독자들뿐 아니라 남성 팬층도 만들어낼 정도로 고른 인기를 끌었다. 이후 이른바 ‘대본소’로 불리는 만화방 시절을 지나 잡지 연재가 만화계의 주된 흐름으로 자리 잡자 신 작가는 <리니지>로 또 한 번 주목을 끌었다. 동명의 게임이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원작의 힘에 바탕을 뒀던 셈이다. 그리고 출판만화에서 웹툰으로 또 한 번 바뀐 흐름 속에서도 신 작가는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카카오페이지에 <카야>를 연재하면서 동시에 여성 작가로선 처음으로 한국만화가협회장이 되어 만화계를 대표하는 역할도 맡고 있는 그를 2월 9일 만나 자신의 작품세계와 만화계의 실정에 관해 들어봤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과 「리니지」 등의 작품을 낸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이 2월 9일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 김태훈 기자

「아르미안의 네 딸들」과 「리니지」 등의 작품을 낸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이 2월 9일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 김태훈 기자

-올해 연초 <아르미안의 네 딸들> 레트로판이 복간됐다.

“이전에 복간본이 나오긴 했는데 오래돼서 다 품절된 상태였다. 이번에 찍은 레트로판은 옛날 독자들이 대본소에서 빌려보던 만화 표지와 판형을 그대로 따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래도 얼마나 팔릴지 몰라 수요를 확보해 놔야겠다는 생각에 독자들로부터 북펀딩을 받았는데 1억2500만원을 넘었다. 알라딘 서점에서 지금까지 한 북펀딩 액수로는 최고액이었다.”

-<아르미안…>도 그렇고 <리니지>도 그렇고 가상의 왕국과 인물들이 나오지만,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장편 스토리를 탄탄하게 끌어간다는 평을 받았다.

“나는 연재를 시작하기 전 처음부터 결말까지 큰 틀을 짜놓고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 스타일이다. 뼈대를 최대한 유지하고 가지를 너무 많이 뻗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야 길게 연재를 이어가도 탄탄하게 이어갈 수 있더라. 단편은 대부분 구체적인 지점까지 잡아놓고, 장편도 큰 역할을 맡은 인물들은 미리 정해놓고 유지한다. <리니지>만 봐도 구상할 때부터 한 세대, 한 인물의 뛰어난 힘을 능가하는 몇대에 걸친 혈통의 힘을 강조하는 것이 주제라 독자들의 반응에 따라 내용과 결말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여담이지만 <리니지> 때문에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돌던데.

“원작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서 소송까지 하고서야 돈을 받았다는 건 다들 알 거다. 그런데 그때 한 번 받고 끝이었다. 수수료처럼 계속 지급받는 돈은 없다. 오해가 있나 보다(웃음).”

-초기 문하생 시절을 거쳤지만 비교적 빠르게 데뷔해서 인기를 끌었는데 그 비결도 미리 촘촘하게 짜둔 스토리 덕이었나.

“내가 문하생하던 시절은 과도기였다. 그때 선생님은 옛날 만화에 머물러 있었고, 새로운 바람이 부니까 그 감성을 못 따라가 뒤처졌다. 나는 배우러 왔는데 오히려 새로운 세대의 감성을 자기 작품 안에 넣기를 바라더라. 들어가자마자 바로 데생을 할 정도였고, 얼마 안 가니 스토리도 내가 쓴 걸로 쓰고…. 그래서 당시엔 문하생이 자기 스토리나 아이디어 써준다고 고마워하던 시절이었는데 나는 ‘사실 내가 그림도 그리고 스토리도 다 썼으니 이름만 선생이 걸고 실제론 내 작품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1년 반 뒤에 독립했다.”

-그렇게 시작한 만화 인생이 만화방 시절과 잡지 연재 시절 그리고 지금의 웹툰 시절까지 줄곧 성공적이었던 거의 유일한 작가다.

“나도 슬럼프가 있었다. 지금 웹툰 형식으로 <카야>를 연재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편의점을 통해 유통할 목적으로 창간된 잡지에 연재가 됐다. 그런데 그 잡지가 실패하면서 연재가 중단되고 그 무렵에 교통사고로 왼팔을 다쳐서 1년 동안 재활을 해야 했다. 한창 일할 때에 한쪽 팔 인대가 끊어져 다시 붙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오른팔로 그림을 그려도 왼팔이 몸을 받쳐줘야 하는데 못 그러니까 아예 작품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때는 또 만화계 전체가 슬럼프에 빠진 시기이기도 했다.”

-<카야>는 출판만화 형식에서 웹툰 형식으로 바꾼 셈인데 그리는 방식도 바꿨나.

“나는 지금도 펜으로 종이에 그린다. 그리고 나서 스캔을 한다. 태블릿으로 바로 그리는 것도 가능하고 시도도 해봤는데 조명이 아래에서 눈을 향해 비춰지니 눈이 피로해 오래 작업하기에 안 좋더라. 채색은 직접 하지 않고 외부에 맡긴 뒤 마지막에 내가 수정하는 식으로 한다. 다만 배경은 직접 세밀한 배경을 그릴 때도 있지만 어시스턴트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잘 써서 인물과 어울리게 자연스러운 느낌의 배경을 넣으니 괜찮더라.”

-그리는 방식 말고 내용상의 차이점도 있나.

“출판만화는 페이지가 한정돼 있으니 알뜰하게 공간을 써서 채워넣어야 한다. 규칙적으로 넘어가는 페이지에 맞게 시각적으로 리듬감이 느껴지게 하거나, 만화를 영화처럼 볼 수 있게 하는 연출도 필요하다. 반면 웹툰은 마우스 스크롤을 내려서 보는 방식 아닌가. <카야>에서 그런 형식에 맞게 처음 변화를 시도했다. 웹툰은 공간을 아낄 필요도 없고 자잘한 연출도 필요 없어 편한 점이 있다. 따로 머리를 안 써도 되니까. 그래도 어느 형식이든 궁극적으로는 독자들이 편하게 보기 위한 연출을 고민해야 한다. 모험심이 강한 작가는 스크롤을 써서 화려한 연출도 하는데 나는 그냥 정석대로 가는 게 맞다고 본다.”

올해 초 레트로판으로 복간된 「아르미안의 네 딸들」 표지와 작품 속 한 장면 / 거북이북스

올해 초 레트로판으로 복간된 「아르미안의 네 딸들」 표지와 작품 속 한 장면 / 거북이북스

-순정만화의 대표 작가로 불리지만 사실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로 보면 역사만화나 SF만화가 더 잘 맞는다.

“내가 관심 있었던 분야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를 비롯해 지중해 일대의 문명권 이야기다. 자료를 찾기 위해 책을 읽다 보면 그 시대 옛날 사람들의 삶은 현대인과 다른 점도 있지만, 생각을 보면 현대보다 더 나은 면이 있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오히려 현대보다 더 자유로운 면이 있고, 이후 중세에 와서 분위기가 달라진 것과는 달리 왕실에서도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고. 한 곳에 묶이지 않고 흥미로운 상상력이 발현되던 시대라 내 관심이 그쪽으로 집중됐다.”

-작품 출간 당시인 1980년대엔 흔치 않던 독립적인 여성상을 제시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나.

“남성 위주 사회에 반감이 있긴 했다. 내 어린 시절은 태아 성감별을 하며 여아는 낙태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우리 집만 해도 남동생이 안 태어났으면…. 생활 자체가 ‘왜 내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자인 동생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더 잘할 수 있는데 왜 나한테는 기회가 안 주어지지’ 같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사회 전체 분위기가 다 그런 때였다. 그러니까 다르게 어떻게 이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지는 잘 몰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대중예술에서나마 조금씩 표현해보자고 한 거다. 그렇다고 너무 극단적인 여성 중심 방향으로 가자는 건 아니고, 여자건 남자건 평등하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만화가협회 회장이 된 것도 평소 지론을 실현하려는 생각에서였나.

“사실 딱히 여자라서 회장이 된 건 아니다. 내가 속한 세대가 앞선 원로급 작가들과 우리 다음 세대인 웹툰작가 세대 사이 중간에 있는 미묘한 세대다. 이 나이대에 걸친 남자 작가들이 거의 없다. 여자라서 회장으로 밀어줬다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물론 앞으로는 남녀 상관없이 누구나 능력 있으면 회장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고. 작년이 회장이 된 첫해였는데 코로나19 사정도 있고, 연재도 하고 있어서 열심히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웠지만 올 5~6월쯤 <카야> 연재 마무리가 되면 좀더 협회 일에 나설 생각이다.”

-만협 회장이 되어 파악한 만화계의 가장 시급한 문제점은 뭔가.

“우선 작가의 건강문제다. 연재 일정이 과도하게 촉박한 상태로 굴러간다. 이대로는 작가의 수명까지 짧아질 정도로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수명이 짧아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또 하나는 웹툰과 웹소설 간의 장르 구분 정리가 안 돼 있어 작가의 몫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문제다. 작가 권익문제를 두고 따지면 신인들의 노예계약이 아직도 근절되지 않은 문제도 여전하다.”

-웹툰산업이 커지면서 플랫폼이나 관련 산업에서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 있다.

“만협은 기본적으로 작가들의 권익을 위한 단체고, 다른 협회들은 산업 차원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활동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작가의 권익이 보장돼야 만화의 미래도 있다는 생각이지만 산업 전체가 성장하기 위해 서로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할 것은 양보하는 정리가 필요하다는 데도 공감한다. 다만 만협은 현역으로 만화 그리는 작가들이고, 또 다들 프리랜서다 보니 서로 뾰족하게 찌르는 부분이 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회장이라도 1표일 뿐이라 민주적일 수밖에 없다는 장점도 있고.”

-후배 작가들이나 지망생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은.

“만화를 그리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선생에게 배워도 가르침을 그대로 다 흡수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요즘은 대학에서도 배우지만 선생들이 다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결국 자기가 원하는 연출은 선생님에게서건 다른 작품에서건 잘 ‘훔치는’ 게 중요하다. 누구의 장점이든 자기가 잘 배워놔야 써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론 어떤 작가의 강점을 보고 아무리 좋다고 생각해도 자기가 흡수할 수 없는 건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나도 워낙 다른 작가의 만화 보는 걸 즐겼고, 중요성을 깊이 인식해 겨우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원로 작가 중에서도 아직 현역인 분들도 있지만, 꾸준히 웹툰 시대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드물다. 긴 생명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현대물을 한 분들은 빨리 잊혔다. 역사적인 만화는 반면 좋은 작품이면 수명이 길다. <아르미안…> 그릴 때 10년 후에도 읽히는 만화를 그려야지 했는데 30년이 지났다. 한편으로는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화를 그리던 시절 순정만화는 그 흐름을 피해가 오히려 오래 갈 수 있었다. 대신 그때는 젊은 열정으로 거의 다 했지. 지금은 나이가 들어 아무리 노력해도 그만한 열정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기술도 늘었고 보는 눈도 늘었다.”

-차기작이나 향후 계획 중인 작품활동은.

“작품화하지 못한 스토리는 쌓여 있는데 체력이 어떻게 갈지 모르겠다. <카야> 연재도 초기 2년까지는 잘했는데 이제 자꾸만 마감이 힘에 부친다. 작품이 길든 짧든 좀더 체력을 붙이고 해야겠다. 그리고 웹소설은 혼자서 글만 쓰면 되니까 한번 시도해볼까 생각해 봤다. 그밖에 <메디아>처럼 연재는 했는데 책으로 안 묶인 작품들을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작업도 벌써 나와야 했는데 늦어져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한국만화가협회 공동기획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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