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이음은 지난해 12월 문을 닫았다. 3개월째 오프라인 영업은 안 하고 있다. 일시적 폐점인 셈이다. 많은 서점이 방문 독자의 감소, 임대료와 인건비 부담으로 연속해 폐업하고 있다. 그렇다고 폐업을 할 수는 없었다. 비용을 최소화해 서점의 명맥을 잇고자 이전을 결정했다.
먼저 이사할 공간을 찾아나섰다.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고 공실이 많이 나왔으니 공간 찾기가 수월할 줄 알았다. 그러나 불황에도 부동산 시세는 그다지 내려가지 않았다. 지금 있는 동네 곳곳의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찾아 역세권의 1층 시세를 알아보았다. 지하철역 200m 거리의 1층 35평. 패션 옷가게 자리다. 보증금 1억원에 월세가 700만원이다. 지난해까지는 월세 850만원이었다는데, 옷을 팔아서 어떻게 그 금액을 감당했나 싶다. 100m 더 들어간 곳의 1층 13평. 식당을 운영하던 곳이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가 250만원이라고 한다.
동네책방의 최소 조건은
2곳 모두 지금 있는 공간보다 조건도, 건물의 상태도 좋지 않다. 역에서 500m 이상 멀어지니 보증금과 월세가 낮아진다. 그래도 평균 월세는 150만원대다. 책방 문을 닫으면서 임대료 부담의 상한선을 월세 100만원으로 잡았다. 그런 가게는 찾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수십곳을 살펴보아도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근처 시민단체에서 책방이음의 소식을 듣고 연락을 해왔다. 내부 공간을 공유해 쓰면 어떠냐는 것이었다. 좋은 제안이었지만 몇차례 만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한 결과, 두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시민단체를 찾는 사람들이 책을 공유 물품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서점이 필요한 최소한의 독립된 자리를 보장받기 어려웠다.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사적이 공간이 없다는 시민단체 특성상 책방으로서 적합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동네책방의 최소 조건을 새삼 되새기게 되었다. 일단 서로 만나 소통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 공간이 너무 개방돼서도 안 되고 완전히 폐쇄적이어서도 안 된다는 것. 책 놓을 적절한 공간이 필요하고 사람들이 와서 편안히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팬데믹 상황이 새롭게 알려준 점도 있다. 더는 공간의 크기가 매출을 결정하지 않는다. 많은 책이 놓여 있다는 것이 많은 판매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작은 공간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활동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 작지만 지속가능한 공간을 빠르게 찾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작은 공간으로 옮기기 위해 남겨진 책 대부분을 처분하기로 했다. 그런데 2017년 이후 반품 상황이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폐점을 한 번도 상정한 적이 없기에, 이 점을 그동안 잊고 있었다. 2017년 이전에는 책 대부분을 도매상 송인서적(현 인터파크송인서적)에서 구매했다. 그때는 모든 책이 반품 가능했다. 책을 주문해 열심히 팔고, 팔리지 않는 책은 반품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물론 이따금 반품할 수 없는 책이 있었지만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2017년 1월 송인서적이 부도난 이후, 도매상으로 반품하는 것이 출판계에 끼치는 악영향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책방에서 반품하는 책은 최종적으로 출판사로 되돌아간다. 반품된 책은 대체로 유통 과정에서 훼손된다. 판매의 시기를 넘기기도 한다. 이런 책을 출판사에서 받아도 달리 팔 수 없는 점이 문제다. 그래서 책방이음은 2017년 이후, 도서를 직접 구매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래도 한숨, 저래도 한숨
이런 방식의 장점도 있다. 책이 서점에 남아 있는 동안 독자가 직접 와서 살펴보고 구매할 수 있었고, 오래된 책도 두고 판매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독자가 찾아오지 않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구매한 모든 책은 판로를 잃어버렸다. 헌책방이 활성화돼 있다면 그곳으로 보낼 텐데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고 이 책을 들고 온라인 중고서점으로 가서 팔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저런 방안을 고민해 보지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출판사에서 위탁받아 판매하는 책을 반품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출판사로 반품하면 해결될 것 아닌가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런 책들을 죄다 반품하면 출판사가 온전히 떠안아야 한다. 출간한 지 오래됐고, 일부는 훼손돼 다시 판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출간된 지 수년 지난 책을 반길 출판사는 없다. 몇 번이나 망설이면서 연락을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그렇다고 재정난으로 폐점하는 책방이 이 책들을 싸안고 있을 수도 없다. 이래도 한숨, 저래도 한숨이다.
오프라인 서점의 규모를 현저히 줄일 수밖에 없는데 책장이며 책과 관련한 물품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예년 같으면 인수자를 찾아 넘기면 된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폐점하는 책방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누가 이런 것을 필요로 할지 의문이다. 오히려 돈을 들여 폐기물로 처리해야 한다. 책방 공간에 있는 모든 것을 권리금을 받고 넘기는 통상적인 절차조차 지금은 불가능하다. 수많은 동네책방이 폐점·폐업 과정에서 손실을 온전히 감수하고 있다.
지금까지 동네책방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그래서 다른 책방도 이런 어려움을 알래야 알기 어려웠다. 서점단체 역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방안을 낸 적도, 알려준 적도 없다. 법령에도 폐업 또는 폐점하는 서점의 도서 처리를 비롯한 관련 내용은 전혀 없다. 지방자치단체는 새로 생기는 동네책방을 지원하는 데만 몰두했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수많은 동네책방이 문을 닫고 있다. 지역 책방이 우리 동네의 문화거점이라고 홍보만 할 게 아니라 이제라도 폐업·폐점하는 동네책방을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폐점 앞에서 어떤 지원이 가능할까. 어떻게 하면 폐점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 책더미 앞에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길을 잃고 있다. 동네책방, 폐점도 쉽지 않다.
<조진석 책방이음 대표·전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사무국장>